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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장> 포스터.
 <주전장> 포스터.
ⓒ 노맨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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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관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위안부 막말의 무풍지대에라도 사는 듯 망언을 마구 내뱉는 이들이다. 일본 우익 및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는 7월말 개봉하는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 영화 <주전장>에는 이런 막말까지 나온다.
 
"당시 미군 부대가 위안부를 취재했던 주요 문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문서들에서 그들은 그저 매춘부에 불과했고 보수도 상당히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 주둔지를 점령한 미군이 위안부를 인터뷰한 결과를 소개하는 발언이다. 일본군 성노예 실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군 병사들이 상대방이 성노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 여성들과의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로부터 성노예(sexual slavery)란 영어 단어를 듣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성노예로 인식케 할 수 있는 보디 랭귀지를 그들에게서 기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위안부를 인터뷰하는 미군.
 위안부를 인터뷰하는 미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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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김화선 할머니는 '8·15 직후 곧바로 귀국하지 못한 것은 돈이 없어서였다'고 말한 뒤, 일본군이 준 전표(군표)를 쓸 수 없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편찬한 위안부 증언록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에 나오는 답변이다.
 
"표는 그거는, 이제 군인들 주욱 세워놓고 차례로 들어가는 표지, 돈 주는 표가 아니란 말이여. 전표. 저거가 몇 번에 가서 데리고 논다 그 줄이지, 전표를 팔아서 이런 여자들 돈 주는 거 아니여."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 뒤편에서 찍은 김화선 할머니의 비석.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 뒤편에서 찍은 김화선 할머니의 비석.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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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들이 받은 군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것은 일제 패망과 함께 휴짓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미군 병사들이 위안부한테서 군표를 발견했다면, 위안부들이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휴짓조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화선 할머니가 위의 답변을 영어로 술술 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미군 병사들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선입견을 갖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일제 패망 얼마 뒤에 미국이 중국공산당 견제를 목적으로 일본과 동맹을 체결했으니, 일본군에 불리한 증언을 미군 병사들한테 듣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전후사정도 감안하지 않고 '매춘부에 불과했고 상당한 보수도 받았다'는 망언을 내뱉은 인물은 <주전장>의 등장인물인 켄트 길버트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다. 부업으로 일본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미국인인 그는 일본 극우의 주장에 동조해 위안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퍼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켄트 길버트처럼 피해자나 약자의 상처를 마구 후벼 파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켄트 길버트(사진 중앙). <주전장> 스틸컷.
 켄트 길버트(사진 중앙). <주전장> 스틸컷.
ⓒ 노맨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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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중·일의 국제 여론전이 활발해짐에 따라 공감을 표시해주는 제3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인들과 동조해 막말을 하는 제3국인들도 있다. 켄트 길버트는 후자에 속한다.

후자 쪽의 미국인들만 <주전장>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는 미국인들도 등장한다. 일례로, 프랭크 퀸테로 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권유린"이라면서 "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에게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가 더 이상 묵살되지 않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게 내게는 너무도 명백"하다고 말한다.

위안부를 다루는 여타의 다큐 영화들과 달리, <주전장>은 위안부에 관한 논쟁을 상당히 잘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이 문제 당사자인 한국인·일본인과 더불어 제3자인 미국인들도 대거 등장한다. 영화의 무대도 이 3국이다. 3국 인물들이 출연해 저마다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의 토론 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위안부들이 정말로 성노예였는지, 본인의 의사가 무시된 채 강제동원됐는지, 정말로 많은 수의 여성들이 동원됐는지다. 세 나라의 등장인물들은 전문적 식견을 갖고 혹은 주관적 느낌을 근거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한다. 주관적 느낌이라 하여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느낌도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의견에서 미진한 부분은 해설에 의해 보충하는 방법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주전장(主戰場)은 영어로 'main battleground'다. 영화에서 말하는 주전장은 미국이다. 이 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중국과 일본이지만, 논쟁의 주 무대가 미국으로 바뀌어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사용된 제목으로 보인다.
 
'주전장'이란 단어는, 소녀상 설립을 저지하고자 일본 우익이 선전전을 전개하는 주된 표적이 미국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위안부 문제의 확산을 저지하려 하는 일본 우익의 전략을 고발할 목적으로 채택된 제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익단체 '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동맹'의 호소야 기요시는 <주전장>에서 이런 말을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앞으로는 미국이 주전장이 될 거라는 겁니다. 중국도 미국을 공략하고 있으며 미일관계 균열을 바라고 있죠. 한번 세뇌당한 사람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중략) 큰 선전을 일으켜 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주전장을 향한 이 같은 선전전의 결과로 '포섭'된 인물 중 하나가 켄트 길버트 변호사다. 이런 미국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본 우익이 퍼트리는 각종 주장이 <주전장>에 생생히 소개된다. 이 영화에 꽤 많이 등장하는 스키타 미오 자유민주당(자민당) 의원은 이런 논리를 편다.
 
"자칭 위안부라는 할머니들의 증언밖에 없어요. 지금 와서 보면,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증언들조차 계속해서 번복되고 있어요."
  
 스키타 미오. <주전장> 스틸컷.
 스키타 미오. <주전장>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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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동원에 일본 정부가 개입했음을 증명하는 공문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12년 일본 방위청 사료실에서 발견된 1942년 6월 13일자 육군성 비밀문서에는 '육군성이 타이완(대만) 주둔 일본군의 요청에 따라 위안부 70명을 보르네오 섬에 파견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위안부에 관한 국제 여론전에 참여하는 스기타 미오 같은 인물이 그런 문서의 존재를 모를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증언밖에 없다'는 그의 말은, 피해자들이 내놓는 게 증언밖에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증언밖에 내놓지 못하는 데다가 그 증언마저 바뀌는 일이 있으니 위안부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실, 위안부들이 자신에 관한 강제동원을 증명할 문서를 갖고 있었을 리 없다. 또 수십 년 전의 일이라 기억의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기본적 사항도 감안하지 않고 스기타 미오 같은 자민당 의원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허술한 논리가 돈독한 미일관계에 힘입어 미국에 전파되고 있으며, 영화 중간에 나오는 미국 남성 청년의 진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일부 미국인들의 동조까지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 불과하긴 하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내부에서 일본 우익에 대한 동조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스기타 미오는 '위안부 문제를 확산시키는 진짜 주범은 중국이며, 중국이 한국을 앞세워 이 문제를 퍼트리는 것은 일본 기업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는 주장까지 편다. 일본 경제를 추월할 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도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녀상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배후의 중국입니다. 돈을 대고 있는 것도 중국이죠."

"목적은 한마디로 돈이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중국과 한국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일본을 능가하는 훌륭한 기술을 얻을 수 없지요.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 산업도 그렇죠.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수출에서 그들이 일본을 앞서려면 일본을 능가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들의 기술력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선전이라는 수법을 써서 일본을 위협하는 동시에 일본 제품 불매를 종용하는 손쉬운 방법을 쓰는 거죠."

위안부 인권 활동에 참여하는 한국인들이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며, 중국이 돈을 대는 것은 일본의 이미지를 약화시켜 세계 전자시장이나 자동차 시장을 장악할 목적에서라는 것이다. '위안부들한테는 증언밖에 없다'는 그의 말마따나, 그 역시 이에 관해 '증언'밖에 제시하지 못했다. 근거를 갖고 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고자 일본인들이 구사하는 선전 방법에는 꽤 유치한 것도 적지 않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나오는 대목은 압권이다.
 
<주전장>에 소개된 일본 우익들의 주장은 이 외에도 많다.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거나 피해자 규모가 과장됐다는 등의 주장이 나온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거의 없다. 피해자 규모가 과장됐다는 주장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 규모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은 일본 정부가 공문서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추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의 과장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또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기 마련이다. 열악한 심리적 상황에 놓이면, 자신의 처지를 과대 인식하기 마련이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에 비례해, 일본 우익의 주장에 호응하는 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이며 미국이 개입할 사안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세계 여론을 주도하고 있으므로 그런 현상에 대해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주전장>은 미국과 세계를 상대로 한 일본 우익의 선전전을 상세히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귀중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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