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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이 사랑했던 "진격의 발동선, 송도 해수욕장"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과 유일의 해상 다이빙대
19.06.21 00:3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1867년 초량왜관이 전관거류지로 되면서 왜인들에게는 남빈(현 자갈치)해수욕장이 턱없이 부족한 해수욕장이었다.

그 당시 송도는 송림이 우거져 있고, 송림공원에 소나무가 많고, 거북섬이 있었기에 일본인들에게 왜관과 가까운 곳이라 하여 일본 3대 명승지 중 하나인 센다이 마쓰나마(松島)를 인용하여 채택하였다고 한다.

또 옛 바닷길은 1925년 이케다 본점에서 운영된 송도 운행발동선으로 1시간 간격으로 송도선착장에서 대정공원(현 충무로타리)과 남빈어시장(현 남포동 건어물 시장입구)으로 오가는 노선이었다.

이 발동선의 단골 손님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고 천상병 시인이셨다. 가난이 직업이자 천벌이었던 고 천상병 시인은 통통배가 출발할때 항상 "진격"을 외쳤다고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이처럼 순수함이 늘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던 시인의 번쩍 든 손과 함께 통통거리며 움직였을 통통배가 아직도 송도 바닷가 어디쯤엔가 있을듯하다.

이렇듯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송도 해수욕장의 전성시대는 1964년 부산 최초로 거북섬에 케이블카가 개설 운영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부산 인구가 140만명정도였는데,여름 한 철 약 350만 인파가 찾아들었고, 6-70년대에는 우리나라 신혼 여행지의 최고로 뽑힐 정도로 사랑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게 신혼 여행지로 유명하였기에 최초의 직업관광사진사도 송도에서 시작되어, 영도다리를 잠시 거쳐 용두산 공원으로 변천되어 간다.

신혼 여행 변천사를 잠시 살펴보면 6-70년대 송도 해수욕장 . 7-80년대 해운대 해수욕장,8-90년대 제주도, 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년대에는 해외로 달라진다.

 지금의 송도 해수욕장에 오면 국내 최초의 구름다리 산책로가 있다. 지금의 모습은 2002년 철거후 다시  조성되어서 총 길이 365m로 1년 365일 건강과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더해져있다. 건강과 복을 상징하는 거북이 등에 올라타서 좋은 기운을 받으며 사진을 찍어도 좋다.

또  고래 조형물과 등대는 2007년 디자인 공모작으로 당첨된 제목이다. "해몽(海夢)으로 무지개를 몰고 온 고래이야기"에서 귀신고래의 머리와 꼬리, 무지개를 타는 고래 조형물등 송도 바닷가을 빛내주고 있다.

그리고 송도 해수욕장은 야경이 아름답다.
앞바다에 총총히 떠 있는 배들이 정박하고 있는 곳을 "묘박지"라 하는데 은하수를 "별들이 고향"이라 하듯이 여기 배들이 있는 곳을 "배들이 고향"이라 부르기도 한다.이들의 배는 다른 항으로 이동시 필요한 선용품을 공급받기도 하고,지정 항구에 정박키 위해 대기중인 선박들이다. 그 배들이 밤에는 불을 밝히고 있어서 야경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해가 끝나는 12월 31일 자정이면 한해를 마감하는 "뱃고동"을 울리며 마무리와 새해에 대한 기원을 담아 바다너머로  울려 퍼진다

그 뱃고동 소리를 들으면 ,웬지 진격을 외치며 발동선을 타셨던 시인의 모습을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곧 무더위가 시작되는데 ,올 여름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송도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나면 어떨까!!
 
첨부파일
송도해수욕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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