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6일 검은옷행진에서 투신 자살한 량링제씨를 추모하는 헌화 꽃 위에 놓여진 포스터 '앞으로 남은 길은 우리가 가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16일 검은옷행진에서 투신 자살한 량링제씨를 추모하는 헌화 꽃 위에 놓여진 포스터 "앞으로 남은 길은 우리가 가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김현석

관련사진보기

☞ [참가기 ①] '1980년 광주' 닮은 홍콩, 나는 곧장 비행기에 올랐다

'검은 옷 행진'을 시작한 지 5시간이 지났다. 정부청사 건물 앞에서 경찰들과 시민들의 대치는 1시간 이상 계속됐다. 일방적으로 시민들이 경찰들을 비난하고 경찰은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자리를 피해 근처 티머 공원(Tamar Park)로 향했다. 이곳 잔디 광장에는 시민들이 각각 둘러앉아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여기서 세 명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브라이언(Brion), 리키(Ricky Chung), 캐시(Katy Wong)가 도착하자 우리 여섯 명도 한켠에 자리 잡고 앉아 이번 시위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이어갔다.

어떻게 보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은 정치인이나 활동가들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이번에 경찰이 병원에 가서,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잡으려고 했어요. 만약 송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국 정부가 요청하는대로 언제든 사람들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는 거죠." 신디(Sindy)가 곧바로 대답했다.

"무엇이 나를 시위 현장으로 이끌었나"
 

지금까지 반대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의 대응, 경찰의 폭력, 35세 청년 량링제의 투신자살 등 일련의 일들이 발생했다. 무엇이 가장 화났고,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송환법 때문에 나도 붙잡혀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 (캐시, Katy Wong & 리키, Ricky Chung)

"이번 시위가 '폭동'이라고 규정한 경찰과 캐시 람 행정장관의 말 때문이다. 나는 폭도가 아니다." (브라이언, Brion)

"6월 12일에 있었던 경찰 진압 영상을 보고 화나서 오늘 나왔다. 이때는 경찰이 기자들한테도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디, Sindy)

"나는 지금까지 모든 상황들이 다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와 경찰 대응 때문에 100만, 200만 시민이 분노하는 거다." (시니, Shnnie)


"홍콩, 중국으로부터 전혀 존중받고 있지 않아"

송환법과 별개로 기본적으로 시위가 이렇게 폭발적인 것은 중국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강한 반발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일국양제' 체제이고 홍콩은 자치를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의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 정부가 홍콩 시민을 존중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베이징 정부가 홍콩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신디, Sindy)

"과거에는 영국식 교육을 받았는데 요즘은 국민교육 관점으로 교육을 시킨다. 초등학교에서 (홍콩인들이 주로 쓰는) 광둥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초등학생들 만나보면 광둥어가 아닌 보통어를 사용한다." (시니, Shnnie)


나를 제외한 5명은 모두 27살 젊은 나이였다. 젊은 청년들이 이런 시위에 참여를 한 경험이 있을까. 신디와 시니, 캐시는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처음이었다. 반면 브라이언과 리키는 지난 2014년 우산혁명 때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우산혁명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

그렇다면 청년들 스스로도 실패했다고 규정한 2014년 우산혁명 당시와 지금의 송환법 반대시위를 이들은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고 있을까.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는 경찰이 최루탄을 150발 이상 발포했다. 우산혁명 때보다 배는 더 많은 수치다. 고무탄도 30발 넘게 쐈는데, 우산혁명 때는 고무탄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확실히 경찰은 지금 더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고, 시민들은 지금 더 분노하고 있다." (시니, Shnnie)

"우산혁명 때는 이슈가 복합적이었다. 당시에는 행정장관 임명 문제와 함께 교육, 복지 등 주장이 다층적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혁명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목적이 명확하다. 범죄인 인도 개정 법안 폐지!" (신디, Sindy)

"우산혁명 당시에는 리더 3명이 시위를 이끌었다. 조슈아 웡(데모시스토당 비서장), 네이선 로(데모시스토 주석), 알렉스 차우(홍콩전상학생연회 비서장)이다. 반면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는 지도부 없이 완전히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다." (브라이언, Brion)

"사실 홍콩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지 않는다. 우산혁명 때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그때는 시위 경험도 없고 어떻게 시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대가 텔레그램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리키, Ricky Chung)


"송환법 반대 시위, 세대의 문제 아냐"

오늘 '검은 옷 행진'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의 남녀 모두가 참여한 것 같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나 중국 정부에서는 이번 시위대의 주장이 홍콩인들 전부의 목소리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오늘 시위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나도 TV만 보다가 경찰이 폭력 쓰는 모습을 보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아버지만 제외하고 나와 어머니는 시위에 나왔다." (신디, Sindy)

"오늘 꽃을 사려고 돈을 주려고 했더니, (나이 든) 꽃가게 주인이 자기는 꽃을 팔지 않겠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세대의 문제가 아니에요." (시니, Shnnie)

"60대와 70대 윗 세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지금 우리가 고통 받고 있다고 많이들 생각해요. 그러니 이번 송환법 시위에 대해 이견을 낼 수 있겠죠." (리키, Ricky Chung)


"왜 행정장관 직접 선출은 주장하지 않는가"

나는 문득 왜 이들이 행정장관 퇴진과 송환법 개정안 폐지만 주장하는지 궁금했다. 애초에 분리독립을 요구하거나 행정장관 직접 선출을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애초부터 주장하지 않는 거예요. 일국양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홍콩인이 누리는 자유는 보장된다고 봅니다. 더구나 군인도, 행정도 모두 종속되있기 때문에 (분리독립이나 장관 직접 선출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요."

하루 종일 행진을 함께 한 신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8시간 넘게 이어졌던 '검은 옷 행진'과 토론을 마치고 여섯 명은 첫 출발지였던 홍콩역으로 함께 걸었다. 오후에 진행됐던 행진과 물과 음료를 나누고,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비극적으로 투신한 량링제를 추모하는 물결을 다시 상기하면서 나는 "원래 홍콩 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들 한목소리로 답했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홍콩 시민들은 더 따뜻해질 것이고 옆 사람을 더 돌보게 될 것"이라고.
 
16일 도널드Donald씨는 8살, 9살 아이들을 데리고 '검은옷행진'에 참여했다
▲ 아이들과 함께 검은옷행진에 나선 홍콩 시민 16일 도널드Donald씨는 8살, 9살 아이들을 데리고 "검은옷행진"에 참여했다
ⓒ 김현석

관련사진보기

 

태그:#홍콩 청년들과 대화, #송환법 개정 반대 시위, #우산혁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