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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가에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면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지금이야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해도 지방자치제가 있어 그쪽 길을 찾기도 하지만 90년대까지 총선에서 낙선하면 낭인이거나 정치 건달이 되기 일쑤였다.

노회찬은 낭인이나 건달이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정치와 국회의원은 '직업'이 아니고 '운동'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가 직업으로서 국회의원을 탐했으면 거대 정당에서 손짓할 때 이적했으면 손쉽게 '정치귀족'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에게 진보정당과 국회의원은 노동자 등 민중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하여 여전히 할 일이 많고 갈 길은 멀었다.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례대표 지지율 역시 2.94%로 3%에 미달해 당선자가 없었다.

노회찬과 함께 당선이 유력시됐던 진보신당의 주역인 심상정 후보 역시 민주당과의 단일화 협상이 무산된 상태에서 재선에 실패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의 지지율이 2% 선을 넘기면서 정당등록 취소를 면할 수 있었고, 정부의 정당보조금 일부분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권영길ㆍ강기갑이 지역구에서, 곽정숙ㆍ홍의덕ㆍ이정희가 비례대표로 각각 당선되어 5석으로 원내정당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잔류파가 승리하고 탈당파가 패배한 형국으로 나타났다.
  
 진보신당 대표 경선에 단독출마, 새 당 대표로 사실상 결정된 노회찬 상임대표가 9일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원내에 강력한 교두보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진보신당 대표 경선에 단독출마, 새 당 대표로 사실상 결정된 노회찬 상임대표가 9일 여의도 당사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원내에 강력한 교두보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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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선거 참패로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당을 추스르고 재건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다. 당원들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2009년 3월 1일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정기전당대회에서 현행 공동대표체제를 임기 2년의 단독대표체제로 전환하는 조직개편과 당 강령 개정, 재보궐선거 예비후보 선출 등이 결의되었다.

이에 따라 3월 23일부터 5일간 당원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 3월 29일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정기 당대회 2차 대회에서 (심상정은 불출마를 선언) 단독 출마한 노회찬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노회찬은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헌법 제1조항은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이다."로 이미 수정되었음을 확인합니다. 헌법 제1조 2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은 상위 1%에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과 그의 형으로부터 나온다"로 수정되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더욱 강하게 키움으로써 사슴과 토끼도 잘살 수 있다는 이명박 정부의 말에 속아 넘어갈 순 없습니다.

호랑이와 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시장과 경쟁 만능주의 노선 앞에 수많은 사슴과 토끼가 희생양이 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인간의 왕국으로" 바꿔놓는 일. 이것이 저의 출마 이유이며 목표이고 노선입니다. (주석 1)


노회찬은 비록 원외의 초라한 정당이지만, 2000년 민주노동당에 참여한 이래 9년여 만에 진보정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책임이 무거워졌다. 윤난실ㆍ이용길ㆍ정종권ㆍ박김영희가 부대표로 선출되어 진보신당은 새 체제를 갖추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김창현 후보,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 노회찬 대표(왼쪽부터)가 23일 오후 5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단일화 합의를 발표한 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김창현 후보,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 노회찬 대표(왼쪽부터)가 23일 오후 5시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단일화 합의를 발표한 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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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ㆍ29 재보선을 앞두고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 그 결과 울산 북구에 조승수, 전주 덕진에 염경석 후보를 내세웠다. 투표결과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고, 염경석 후보는 낙선했다. 이로써 진보신당은 간신히 원내정당에 턱걸이를 하게 되었으나 당세는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국회 활동은 모든 의원의 머릿수로 결정되지만 시민운동은 이슈의 선점과 투쟁 방식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회찬의 퍼스낼리티는 의회주의자로서도 재능을 보이지만 '운동'의 측면에서도 적합한 편이다.
 
퇴로 없는 옥상에서 불길을 피하고 있는 철거민들 용산 참사에 대해 우리는 국가가 어떻게 철거민들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박탈할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 자행된 어떠한 철거계획이나 진압작전도 위법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를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 퇴로 없는 옥상에서 불길을 피하고 있는 철거민들 용산 참사에 대해 우리는 국가가 어떻게 철거민들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박탈할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 자행된 어떠한 철거계획이나 진압작전도 위법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를 주의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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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일어났다. 노회찬과 진보신당은 기민하게 대처하였다.

2009년 1월 28일 재개발에 반대하여 건물 옥상에 올라가 농성하던 영세 세입자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용산참사가 발생하였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2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했던 시민 수천명이 31일 밤 서울 명동 입구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2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했던 시민 수천명이 31일 밤 서울 명동 입구에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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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당원 중심의 미디어공동체인 칼라TV는 농성이 시작된 1월 19일부터 농성 거점지의 맞은편 빌딩에서 경찰과 용역의 불법 진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참사가 발생한 날에는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촬영하여 시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도 하였다.

참사 이후, 진보신당은 다른 야당들과 공조하여 검찰수사기록 공개 거부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진상규명운동을 벌였으며, 원외에서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3보 1배'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주석 2)

  
 쌍용자동차 사측이 출근 강행을 통해 평택공장 진입시도를 예고한 가운데 16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해고자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파업을 벌이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측이 출근 강행을 통해 평택공장 진입시도를 예고한 가운데 16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해고자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파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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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은 용산참사 사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이어서 같은 해 5월에 발생한, 이명박 정권의 쌍용차 노동자 탄압에 맞서면서 노동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2009년 5월 21일 쌍용차 노조는 부분 파업에 이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총파업 투쟁을 결의하게 된다. 이에 2009년 5월 31일에 사측이 경찰을 동원해 직장폐쇄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자, 조합원들은 해고노동자와 비해고노동자, 정규직(원청업체 노동자)과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의 구분없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평택에 위치한 공장을 점거하고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박종태 열사투쟁 승리 및 쌍용차 구조조정 분쇄 결의대회'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수건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박종태 열사투쟁 승리 및 쌍용차 구조조정 분쇄 결의대회"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수건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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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조는 "함께 살자, 정리해고 반대!", "일자리는 생명이다!", "원ㆍ하청(정규직과 비정규직) 단결투쟁!" 등의 구호를 통해 이번 총파업이 계급투쟁임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과 경찰은 노조원들에 대한 식수 반입과 조합원들의 지병을 돌보기 위한 의료진 투입을 막았다. 또한, 헬기로 최루액과 가스를 비닐에 담아 도장공장에 뿌리고, 순간 전기충격기인 '테이저건'을 발사하는 등 지나친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 경찰의 진압이 계속되자 진보신당을 비롯한 야 3당과 원외정당인 사회당 등은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서 '살인 진압 규탄대회' 등을 벌이며 함께 행동에 나섰다. (주석 3)



주석
1> 『노회찬과 함께 꾸는 꿈』, 70쪽.
2> 『WIKIPEDIA』, 「진보신당」.
3>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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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