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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줄 넘어가요~", "못줄 넘어가요~"
"심어요~", "심어요~!"
"모 나가신다~", "던져요~"
6월 6일, 경기도 고양시의 외딴 논에 10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현충일의 사이렌 소리에도 허리 펼 틈도 없이 바쁘게 청년들은 푸릇푸릇한 모를 심었다. 비라도 쏟아질 듯 가득한 먹구름이 따가운 봄 햇살을 막아주어 논에서 일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날씨였다.
 
 경기도 고양시의 <우보농장>.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농업을 살리기 위한 공간이다.
 경기도 고양시의 <우보농장>.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농업을 살리기 위한 공간이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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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청년들은 반나절만에 1300평 모내기를 마쳤다.
 일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청년들은 반나절만에 1300평 모내기를 마쳤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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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 케이크 같은 1300평 다랑이 논에는 층마다 30여 명씩 청년들이 패를 이루고 섰다. 들판으로 번져 나가는 일꾼들의 메아리를 따라서 텅 빈 논이 금세 연둣빛으로 물들어 갔다. 이날 모인 100여명의 참가자 대부분은 2, 30대 청년으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 건너왔다. 생전 처음 모를 잡아보는 사람도 많아서 정강이까지 쑥 빠지는 뻘에서 서 있기도 버거워 보이더니 이내 적응을 마치고는 한 땀 한 땀 못줄을 채워갔다.

단순한 농촌봉사활동은 아닐 텐데, 이 많은 청년들은 어쩌다 농촌을 찾아온 것일까.
  
"농촌에 왜 왔냐면요..."

청년들에게 농촌이란 어떤 공간일까? 이들은 왜 소중한 휴일에 굳이 힘든 농사일을 하러 온 것일까? 그 이유를 참가자 6인에게 물어보았다.

#1. 서울 핸드메이드 작가, '자야'
"저는 귀농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해요. 지금까지 모심기는 3번 정도 해봤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토종벼 종자를 280가지나 심을 수 있어요. 정말 특별하죠.

#2. 서울에서 온 청년, '아름'
도시에서 사는 건 자꾸 미래, 내일을 생각하라고 하잖아요.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집만 사면... 그러면서 정작 현재는 밀려나죠. 하지만 저는 현재를 돌보고 오늘에 만족하고 싶어요.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 같은 '도시 촌놈'들은 자본주의속에서만 살아와서 쇼핑할 줄만 알지 뭘 만들 줄 모르잖아요. 저는 김치 담그는 법도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봐야 하거든요. 이러다 우리가 전통을 잊으면, 그 삶의 흐름이 끊기는 건 아닐까 두렵네요.

#3. 직업군인, '비트'
"저는 자급하는 삶을 살면서, 필요한 기술과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어요. 행사를 주최한 <비전화공방>은 전기나 화학물질에 의지하지 않고도 만족하는 삶을 알려주면서, 자급이 곧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정신이 좋아서 왔습니다."

#4. 서울 성북문화재단 제철과일팀, 윤영섭
저는 서양 레스토랑 요리사였어요. 좋은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은 거죠. 좋은 음식을 먹기 직전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것인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 사실 4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그때도 이곳 담당자는 토종벼 재래농법을 살리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하셨는데, 그 결실이 궁금해서 다시 왔죠. 그리고 그 결실은 이 많은 참가자들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든 사람이 많을수록 즐겁잖아요.

#5. 부천시 청년, '주'
다른 존재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고 싶지 않아요. 도시에 살면 동물, 다른 약자들을 착취해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려면 우선은 농사를 해서 먹거리 자립을 해야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 시골로 내려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부터 천천히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생활하려면 최소한의 돈은 벌어야 하니까, 제가 가진 목공술을 더 가다듬어서 필요한 만큼만 벌고 싶어요.

#6. 서울 고등학생, '인희'
점점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는 힘들겠지만 마을을 이루고 조금씩 도우면서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옛날 분들은 다 그렇게 살아왔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만 알고 살았는데, 계절이 더 있대요. 하지 동지 이런 절기들마다 땅이 다르고 공기도 미세하게 다르대요. 그것도 느껴보고 싶어요.

  
 참가자들이 모내기하느라 뻐근한 허리를 풀고 있다.
 참가자들이 모내기하느라 뻐근한 허리를 풀고 있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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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의 소박한 꿈들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이날 행사인 '토종 벼 심기'를 기획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에 일찍이 도전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비전화공방 서울>의 맴버, '단디'. 그 또한 자급자족하는 귀농의 삶을 계속 준비 중이다. (비전화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비전화공방 서울>의 맴버, "단디". 그 또한 자급자족하는 귀농의 삶을 계속 준비 중이다. (비전화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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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공방>의 운영진, '단디'
저는 예전에 혼자서 4년 정도 귀촌을 했어요.. 그런데 청년 혼자 지낸다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마을에서는 그나마 젊다는 분들도 40~50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어울리기엔 문화적 한계가 있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뜻이 맞는 동료를 만들어서 함께 내려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시다니 대단히 좋네요. 참가자들이 좋은 동료도 만나고, 말과 책으로는 접하기 어려운 것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가시길 응원합니다. 물론 귀농은 쉽지 않아요. <비전화공방>의 교육의 1기, 2기 졸업생 중에도 바로 귀농하신 분은 없는 것으로 알아요. 그렇지만 그날을 위해서 지금부터 기술을 배우고 준비하는 것이에요.
  
   
 20년 동안 280여가지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방식을 지켜온 농부 '우보'.
 20년 동안 280여가지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방식을 지켜온 농부 "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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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모내기 행사 기획자, 농부 '우보'
청년들이 원하는 자급하는 삶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 제일 중요한 게 주식인 쌀일 겁니다. 물론 힘들고 어렵지만,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구성해서 재배해본다면 자신감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다양하게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중요해요. 그래봐야 자급자족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오전 9:00~11:30, 모내기 교육과 실습

농부 우보가 모내기 강의를 시작했다. 토종벼 보존을 위해 20여 년을 애써온 그는 지금까지 280여 개의 토종 벼 종자를 모았고, 소중한 종자를 위해 땅을 다치게 하는 비료나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다고 한다. 투박하지만, 마냥 딱딱하지만은 않은 중년의 농부는 100명의 청년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안에 1300평을 끝내야 돼요. 만약 못하면 나 혼자 다 심어야 되거든요."
"그러긴 싫어요. 그래서 굉장히 요령 있게 할 겁니다. 지금부터 조를 나눠드릴게요." 
 이날 현장에는 수십 가지 토종벼 모가 준비되어 있었다. 농부 우보가 수십 년 동안 전국에서 모아온 것들이다. 종자가 섞이지 않도록 일일이 푯말을 준비해둔 모습.
 이날 현장에는 수십 가지 토종벼 모가 준비되어 있었다. 농부 우보가 수십 년 동안 전국에서 모아온 것들이다. 종자가 섞이지 않도록 일일이 푯말을 준비해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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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 우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전통농업'을 고집한다.
 농부 우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전통농업"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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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찌'가 모를 나누면서 전체 진행상황을 살피고 있다. 모내기 한 패는 모를 찢으며 현장을 인솔하는 '모찌', 양끝에서 기준선을 잡아주는 '못줄잡이', 그리고 모를 심는 수십 명의 '모내기꾼'으로 구성된다.
 "모찌"가 모를 나누면서 전체 진행상황을 살피고 있다. 모내기 한 패는 모를 찢으며 현장을 인솔하는 "모찌", 양끝에서 기준선을 잡아주는 "못줄잡이", 그리고 모를 심는 수십 명의 "모내기꾼"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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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개 조가 편성되었는데, 각 조는 '모찌'와 '못줄잡이', 그리고 다수의 '모내기'로 구성된다. 먼저 ▶'모찌'는 '모를 찢어 나눠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각 조의 지휘자 역할을 한다. 모찌는 20여 명의 일꾼들에게 적절하게 나눠주고, 전체 작업속도를 조율하며, 무엇보다 모 품종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므로 경험 많은 고참이 맡게 된다.

둘째로 ▶못줄잡이는 마치 종이에 자를 대고 줄을 그리듯 논에다 기준선을 잡는 역할을 한다. 못줄잡이는 40m 길이의 줄 양 끝을 꼭 붙잡고 있을 두 명이 필요한데, 모내기꾼들이 반듯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특히 한 줄 다 심고, 다음 줄로 넘어갈 때 '못줄 넘어가요'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 못줄잡이의 중요한 임무이다.

일꾼들을 보내기 전에, 농부 우보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손 느리다고 부담 갖지 마세요. 빠르다고 밥 더 안 줍니다."
"정확한 게 더 중요해요. 3~5 포기씩 떼서 뿌리가 흙 속으로 박히도록, 손을 쑥 넣는 겁니다."  
 모의 뿌리가 단단하게 박히도록, 손가락을 바닥 깊숙이 넣어야 한다.
 모의 뿌리가 단단하게 박히도록, 손가락을 바닥 깊숙이 넣어야 한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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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14:30, 푸짐한 새참과 점심

논일을 하다보면 금세 허기가 찾아온다. 특히 허리 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날이면 배고픔은 더할 것이다. 곳곳에서 허리를 두들기며 '새참 언제 나오냐'는 일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새참 들고 하세요~" 
구수한 미숫가루 향이 솔솔 풍겨온다. 이어서 농부 우보가 기른 쌀로 직접 담근 막걸리에다 갓 빚은 떡, 두부가 안주로 차려졌다. 잠시 찾아온 달콤한 휴식시간에서야 청년들은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막걸리 항아리는 순식간에 텅 비었고, 일꾼들은 '원래 이렇게 금방 취하는 거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참가자들은 모내기 틈틈이 푸짐한 새참을 즐길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모내기 틈틈이 푸짐한 새참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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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간격으로 새참을 즐기며 모내기를 하는 참가자들
 2시간 간격으로 새참을 즐기며 모내기를 하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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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이 솟았는지 일꾼들의 일손이 분주해졌다. 새참 먹고 1시간 쯤 지났을까, 일꾼들은 8시간 걸릴 일을 5시간 만에 단숨에 끝내버렸다. 농부 우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들 아주 열심히 해주었다"며 흐뭇해했다. 

16:00, 자급자족의 꿈을 품고, 안녕

남은 마지기(약 150평)를 마무리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보는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벼 3~5포기면 밥 한 그릇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은 허리질 한 번에 밥 한 공기씩 심으신 셈이에요. 남은 모는 몇 포기씩이라도 집에서 돌보세요. 여름 되면 예쁜 벼꽃이 핍니다."  
물론 자급자족 농업은 고되고, 끊임없이 도전에 부딪친다. 하지만 자급자족이 품고 있는 친환경과 공동체정신, 비전화(非電化) 등 삶의 방식에 공감하기에 청년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나절 만에 모내기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반나절 만에 모내기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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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자급자족하는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느낀점'을 청년들에게 물어보았다.

인천 직장인, '헤이'
오늘도 이렇게 많이 오셨잖아요. 농업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정말 든든하네요.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 공부도 체험도 더 많이 할 거에요. 내년 3월까지 귀농하는 걸 목표로 잡은 방장이 있는 단톡방도 들어갔는데, 벌써 20명 넘게 계시더라고요.

성북문화재단, 윤영섭
자급자족이 가능하냐 아니냐, 묻는 건 좋은 질문이 아니에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손으로 모내기 힘들어서 못하겠어, 기계로 심는 게 낫겠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기계농업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이렇듯 단번에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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