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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1990년대 등장한 용어이지만,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30년 넘게 그 위치성과 내포된 의미를 변주하며 한국 사회 주요 '코호트(cohort)'로 호명되어 왔다. 최근에는 진보인사의 잇따른 부동산 논란, '20대 남성'의 기성세대 혐오 ,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당선 등의 맥락에서 재호명된 바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86세대'가 갖는 위치와 의미는 무엇이며 87년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구축을 위한 이들의 역할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세대갈등이 아닌 세대간 협력과 연대의 관점에서 오늘날 '86세대'를 들여다보고, 관행과 관습에 대한 작별인사이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반가움의 '안녕'을 건넨다.  - 참여사회

 
 안녕, 86세대
 안녕, 86세대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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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종 생략되기도 하는 386세대의 앞자리 숫자 3은, 세대갈등의 담론이 팽배해진 현 시점에서 특별한 환기 효과를 가진다. 그것은 이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부상하던 시기가 30대라는, 당시로써는 꽤나 이른 나이였다는 것이다.

대략 2000년을 전후해 구태의연한 현실정치의 '젊은 피'로, IMF 파고 이후 벤처열풍의 주역으로 명명되었던 이들은 약 2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한국 사회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노동시장의 진입조차 쉽지 않은 현재의 청년 세대가 처한 곤경과 대비되며, 386세대는 세대 간 불평등의 기득권자로 위치 지어지고, 이러한 상황은 다시 '진보적' 정치세대의 표상에 비추어 '자기기만'의 행태로 평가되기도 한다. 

교육 성공 신화와 10년의 성공

그러나 386세대의 사회적 부상과 함께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이러한 도덕적 평가에 안주하기 전에, 우리는 이 세대가 단지 진보적 정치세대일 뿐 아니라 교육 성공 신화의 주역이며, 또한 그 부침과 함께 역동적인 생애를 주조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86세대의 교육 성공 신화는 확대된 교육기회와 대학졸업장에 유리했던 노동시장의 규칙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호황 국면에 힘입어 구축되었다. 특히, 경제적 호황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는데, 이는 대학 정원이 산업수요와 무관하게 확대된 탓에 이들의 대학졸업과 함께 대졸자의 '그레이칼라화'(혹은 '블루칼라화')로 현실화될 정도로, 높은 학력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수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도래한 3저 호황 그리고 그 여파로서 약 10여 년간 지속된 호황 국면 속에서 이러한 '예견된' 위험은 상당부분 상쇄되었다. 경제성장의 결과로서 임금이 상승하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가운데 특히 고임금 화이트칼라 직종이 대거 창출되면서 이들은 성공적으로 노동시장에 안착했으며, 이를 토대로 중산층의 진입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객관적인 성과와 더불어, 이들의 교육 성공 신화에 특징적인 점은, 그 성과의 정당성이 담보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교육에 부착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들의 교육경쟁의 조건이 어느 시기보다 공정했다는 사실은 그 효과를 증폭시켰다.

'과외금지조치'로 상징되며 '가난한 수재'의 성공 담론을 가능케 했던 이들의 교육경쟁의 조건은, 교육적 성취의 정당성, 나아가 그에 따른 사회적 보상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보증서로 작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들의 사회경제적 궤적이 정치적 정체성과 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교육 성공 신화를 관통하는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정치권력의 정당성 회복과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 등 한국 사회의 제 부문에서 '공정한 게임 규칙'의 확립을 도모했던 이들의 정치적 구호와 배치되지 않는 것이었다. 

교육 성공 신화의 균열과 불안한 중산층의 각개전투

순항하던 교육 성공 신화가 심각한 균열을 드러낸 계기는 1997년 말 도래한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IMF 사태'가 386세대에 미친 영향은 양가적이다. 한편으로, 이들은 위기를 가장 덜 겪은 집단에 속했다. 1997년 말 이후 전개된 대량실업 사태 속에서, 30대 대졸자의 실업률은 대학졸업과 함께 실업에 처한 20대나, 고졸자·전문대졸자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의 교육 성공 신화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들은 위기를 타고 안착한 새로운 위험, 즉 영구적인 고용불안정에 처했고, 자신들의 위치가 성공한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아니라 '아무 때나 목이 잘릴 수 있는 샐러리맨'이라는 사실을 체감해야 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환율의 폭등, 고금리, 부동산 가격 폭락 속에서 모든 계층의 소득이 크게 감소한 가운데, 상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증가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고용불안이라는 위험과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주는 '자산'에 비해 대학졸업장의 가치는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다. 이들의 교육 성공 신화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고, 이와 함께 이제 진입로에 들어선 중산층의 지위는 위태로워졌으며, 능력주의에 기반한 분배 질서에 대한 믿음도 사실상 배반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IMF 사태'가 종결된 후 치러진 첫 대선이었던 2002년의 선거는 이러한 상황을 전환시키려는 긴박한 분투이기도 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표방했던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회'의 이상은 지역주의에 의해 왜곡된 정치질서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이었을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사회의 양극화 속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합리적이고 정당한 규칙들을 회복하려는 시도이자 그 속에서 극도로 위태로워진 자신들의 위치를 복원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귀결되었을 때, 이들은 일말의 체념과 함께 경제와 생존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사람 하나 바꿔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좌절, 즉 386세대 자신들의 의지와 영향력이 닿을 수 없는 지배블록의 견고함을 확인하면서 비롯된 좌절은,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열망을 소진하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경로로 길을 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약 10여 년이 넘은 기간 이들의 삶을 규정한 것은 중산층의 삶을 위한 각개전투로, 이는 계층탈락의 위기에 처한 중산층의 '불안'을 추동력으로 하며, 아파트와 사교육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러한 행보의 역설적인 결과들은 이미 현실화 되었거나 목전에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에듀푸어이자 하우스푸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미래의 실버 푸어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88만원 세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N포 세대'이거나 이를 예비하고 있다. 

확실히, 이러한 그림은 세대불평등 구도의 기득권자로서 386세대의 그것과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간극은,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갈등 담론이 가지는 한계, 즉 계급과 세대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연루된 문제를 세대 간 갈등으로 환원하고 그 결과 해결을 요원하게 하는 한계와 관련된다.

교육이 가져다 준 성공과 배신을 공히 경험하고 불안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온 386세대와, 대학 진학률이 70~80%에 달했지만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그에 대한 유의미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년 세대들 사이의 전선은 명확한 것인가? 이들이 현재의 청년 세대의 곤경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세대불평등의 수혜자로서라기보다는, 이 세대의 고유한 능력이자 강점인 '공적 가치에 대한 감각'과 변화의 동력을 철회하고 가능성의 영역을 개인과 가족으로 한정지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불평등 구조의 심화를 방기해 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386세대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하다. 청년 세대의 상황이 이미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재생산의 위기라는 점에서, 이들의 '공적 가치에 대한 감각'과 헌신은 여전히 긴요하다. 혹자는 2002년 대선에서 나타났던 개혁의 열망을 "87년 6월의 미완의 혁명의 뒤늦은 완결"이라 칭했다. 2017년에 이 세대는 다시 집권 세력을 배출했고, 현 시점에 사회 제 부문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졌다. '뒤늦었지만' 위기를 타개할 모색과 세대 내부의 압력이 필요한 때다. 

[안녕, 86세대]
'386, X,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의 강력한 사회적 상상' http://omn.kr/1jn7b
'(3)86세대'는 어쩌다 '꼰대'로 전락했나 http://omn.kr/1jn7a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형준님은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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