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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다녀온 고성 학동마을이 문득 궁금해졌다. 돌담이 늘어선 정겨운 골목길도 걷고 싶었다. 한낮의 이른 더위를 피해 아침일찍 나선 길. 학동마을에 도착하니 모내기가 한창이다.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있는 학동마을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 25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이다.

1670년경 전주최씨 선조의 꿈 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는 모습이 보였는데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에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마을 입구, 납작돌을 차곡차곡 정성스레 쌓은 돌담이 눈길을 끈다.
 마을 입구, 납작돌을 차곡차곡 정성스레 쌓은 돌담이 눈길을 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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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서비(西扉) 최우순(崔宇淳 1832-1911) 선생의 순의비가 서 있다. 선생은 일곱 살 때 이미 한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경탄케 할 정도로 당대의 유학자였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호 청사(晴沙)를 서비(西扉, 서쪽 사립문)라 고치고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을 일으키는 등 애국 충정을 불태웠다.

한일합방을 강행한 일제는 전국에 명망높은 유림에게 일왕의 소위 은사금(恩賜金)이라는 것을 주어 민심을 무마하려는 술책을 썼다. 선생에게도 은사금을 받으라고 여러차례 강요하다가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자 일제는 헌병을 파견하여 총칼로써 강제로 연행하려 하였다. 선생은 날이 밝으면 가겠다고 한 뒤 그날밤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절하였다. 이날이 바로 1911년 신해년 3월 19일 향년 80세였다.
 
매사고택으로 가는 골목길.  마을의 모든 집들이 돌담을 두르고 있다. 
아래와 위쪽을 다르게 쌓은 돌담을 보노라면 옛 사람들의 지혜로움을 
느낄 수 있다.
 매사고택으로 가는 골목길. 마을의 모든 집들이 돌담을 두르고 있다. 아래와 위쪽을 다르게 쌓은 돌담을 보노라면 옛 사람들의 지혜로움을 느낄 수 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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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으로 지은 매사고택의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서있는 내외담.
 평행으로 지은 매사고택의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서있는 내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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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니 돌담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과 황토를 결합하여 층층이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집들의 담과 집이 앉은 기단, 그리고 텃밭을 두른 낮은 담도 모두 돌로 정성스레 쌓았다. 담은 돌과 흙이 서로 부등켜 안은 듯 옹골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철저하게 계산하여 담을 쌓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담장 아랫부분은 납작돌로만 쌓고 그 위로는 납작돌과 황토를 섞어 쌓아올렸다. 한여름 홍수와 폭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바닥을 흐르는 물과 황토가 만나면 담장이 무너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담장 위에도 기와를 얹는 일반집들과 달리 넓적하고 큰 납작돌을 따로 얹어 쏟아지는 비로부터 담장을 보호하였다. 조상의 반짝이는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담장이다.

골목길에 경남문화재자료 제 178호인 매사고택(최영덕씨고가)이 있다. 전형적인 남부지역 사대부 가옥의 형식으로 지금 현 소유주의 5대조인 매사(梅史) 최태순이 고종 6년에 지은 집이다. 안채,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 대문채, 다섯 동의 건물이 남북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를 구경하고 안채로 들어서는데 담이 가로 막고 있다.
 
내외담에는 세 개의 구명이 나있다. 구멍으로 사랑채의 마루에 놓인 탁자가 보인다.
 내외담에는 세 개의 구명이 나있다. 구멍으로 사랑채의 마루에 놓인 탁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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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안마당이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세워놓은 내외담이다. 내외담에는 세 개의 구멍이 있다. 안채 마당으로 들어와 구멍을 통해 사랑채를 살펴보았다. 작은 구멍으로 사랑채 마루에 놓인 탁자가 보인다. 구멍은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안채에서 사랑채를 살피기 위한 도구였다. 그 시절에도 소통의 길은 열어 놓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며 얼굴이 보이지 않게 만든 구훌구
(求恤口).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며 얼굴이 보이지 않게 만든 구훌구 (求恤口).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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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양쪽 담장에는 각기 구멍이 하나씩 뚫려있다. 담장 밖에 사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곡식을 갖다 놓았던 구휼구(救恤口)이다. 바깥사람들이 집안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고픔을 달래라는 배려의 구멍이다. 마당에 있는 고택의 굴뚝은 배고픈 바깥 사람들이 음식을 하는 불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담장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다. 
 
고택의 안마당에 있는 키낮은 굴뚝.
 고택의 안마당에 있는 키낮은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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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왔을 때 벽에 나있는 구멍과 키낮은 굴뚝의 의미를 알고나서 생각이 많았었다. 오늘도 마당을 서성이며 옛 사람들의 속깊은 배려를 되새겨본다. 구례 운조루에 들렀을 때 부엌에 있는 쌀통을 보며 느낀 마음이다.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귀가 새겨진 쌀통은 끼니가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열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한적한 마을 길을 여유롭게 걸어 서비정에 도착했다.
 한적한 마을 길을 여유롭게 걸어 서비정에 도착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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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고택을 나와 다시 돌담길을 걷는다. 어느 집 담벼락에 붉은 꽃양귀비가 고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본다. 잠시 멈추어 서서 꽃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최씨 종가를 구경한 다음 마을 끝에 있는 서비정도 둘러본다. 나오는 길에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쉬노라니 왠지 마음 뿌듯하고 평온하다.
 
서비 최우순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비정.
 서비 최우순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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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학동마을 :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
마을을 다 둘러보았다면 6-8월에만 맛을 볼 수 있는 갯장어회를 먹어도 좋을 듯하다. 고성 자란만과 삼산면 바닷가에서 잡히는 갯장어(하모)는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많다.

태그:#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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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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