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성 하면 머리를 '탁' 치고 떠오르는 단어가 연초록빛 녹차다. 풋풋한 연초록 빛깔로 물들인 녹차 밭의 풍광을 한껏 뽐내는 곳 중의 하나가 대한다원이다. 남녘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보성은 지금 다향(茶香)으로 그윽하다. 밝은 연녹색에서 진녹색까지 파노라마 치는 차의 싹들이 노래하고 있다. 부드러운 연녹색의 차를 따기 좋은 계절. 나도 보성의 녹차 밭으로 간다.

이번 보성을 탐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에서 놓쳐 던 소소한 정보와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더구나 체험을 통해 그 지역문화를 느껴서 좋았다. 여행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한 세계관의 확장인 듯하다. 나에게 보성은 녹차가 다였다. 그런 갇힌 생각은 보성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데서 나왔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됐다.

보성의 랜드마크, 대한다원
 
 유달리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멋졌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담은 보성의 녹차 밭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
▲ 보성 대한다원의 아침  유달리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멋졌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담은 보성의 녹차 밭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보성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봇재가 뜨고 있다. 봇재는 보성읍과 회천면 사이에 있는 고개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옛 등짐장수들이 이곳을 오갈 때 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쉬었던 곳이다. 이 고갯길을 지나 보성읍 봉산리의 차 관광농원인 대한다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녹차 밭은 물론이고 빼어난 삼나무길도 유명하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카메라 마사지를 받게 마련. 이곳도 들으면 알 만한 드라마,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드라마 <여름향기>, <여인의 향기>, <세 번 결혼하는 여자>와 영화 <선물> 등이 이곳에서 촬영한 대표작이다.

녹차 밭 가운데 목련이 있다. 목련이 필 때쯤, 녹차 잎이 익어갈 갈 때쯤 연례행사처럼 사진 가방을 메고 이곳으로 오곤 했다. 물론 사진을 배우는 터라 다른 분들 뒤꽁무니 따라 생각없이 보성을 왔다. 유달리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멋졌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비단 가는 내내 가야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했지만.
 
보성 녹차 밭은 우리나라 산자수명(山紫水明)을 그대로 담뿍 담은 곳이다. 짙푸른 차밭이 끝없이 펼쳐져 녹차의 천국 같다.
▲ 보성 녹차 밭은 산자수명 보성 녹차 밭은 우리나라 산자수명(山紫水明)을 그대로 담뿍 담은 곳이다. 짙푸른 차밭이 끝없이 펼쳐져 녹차의 천국 같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보성 녹차 밭은 우리나라 산자수명(山紫水明)을 그대로 담뿍 담은 곳이다. 이곳은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 중 하나다. 입구에서 시작된 삼나무 숲길은 녹차 밭까지 이어진다.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나무들이 녹차와 어우러져 있다. 근데 삼나무뿐 아니라 편백, 주목, 은행, 단풍, 동백 등 약 300여 만 그루의 나무가 제각기 자태를 뽐낸다.

보성은 우리나라 차의 80% 이상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녹차 산지로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일본 차 전문기술자들에 의하여 홍차 재배지로 선정된 곳이 바로 보성이다. 그 후 1940년 '베니오마레'라는 인도산 차 종자를 보성에 뿌려 오늘날에 이른다. 최근 하동의 녹차가 부상하고 있지만 차 재배 규모 만큼은 보성을 따라 갈 수 없다. 보성 녹차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짙푸른 차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전남 보성은 마치 신이 내린 녹차의 천국 같다. 옛 기록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의하면 보성은 예부터 자생 차가 있어 녹차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지금도 문덕면 대원사, 벌교 징광사지 비롯한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한 득량만이 있는 득량면 송곡리는 마을 이름이 다전(茶田)으로도 불려 옛 기록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몽실몽실한 초록 계단이 층층이 펼쳐져 있다. 차나무들은 정원수처럼 잘 다듬어져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바람에 잎들이 일렁이는 모습은 마치 잔잔한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다. 사철 푸른 녹차 밭은 여행객의 발길을 붙여 잡는다.

특히 녹차 향은 삶에 지친 길손에게 오아시스 같다. 푸른빛이 머무는 차밭은 사랑으로 점점 물들어가기 좋은 곳. 이러한 수려한 모습에 외국 언론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의 꼭 가봐야 할 50곳' 중 보성 녹차 밭이 18위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차에 관한 최고를 자부하는 한국차박물관
 
차에 관한 최고를 자부하는 박물관이다. 차의 역사적 고증과 자료가 전시돼 있는 곳으로 2019년 문을 열었다.
▲ 보성 한국차박물관 차에 관한 최고를 자부하는 박물관이다. 차의 역사적 고증과 자료가 전시돼 있는 곳으로 2019년 문을 열었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녹차' 하면 최고를 자부하는 한국차박물관을 찾아갔다. 차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자료가 전시돼 있는 곳으로 2019년 문을 열었다. 한국차박물관은 차의 역사와 문화를 논스톱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특히 차를 통한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어 차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공유할 수 있다.

보성은 녹차의 고장이다, 서기 369년에 복홀군(지금의 보성)이 마한에서 백제로 통합되면서 차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보성군사(寶城郡史)>에 언급돼 있다. 이를 통해 1600여 년 전부터 차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은 1~3층 전시실과 5층 전망대로 구성된다. 1층 '차 문화실'만 둘러봐도 차에 관한 박사가 된다. 해설사와 1층을 돌며 차에 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냥 무턱 대고 마셨던 차를 알고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차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다. 해방 후 방치된 차밭을 1957년 장영섭 대표가 인수해 대한다업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보성 차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일이다.

'녹차 수도'라고 불리는 보성은 전국에서 차 생산 규모가 가장 크다. 주변 지역보다 표고도 높고 일교차도 커 차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을 갖췄다.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차나무의 습도와 성장에도 좋은 지리조건이다. 이런 녹차의 원동력들이 보성 차를 '우주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로 선정되게 했다.

1층엔 기념품 판매관도 있다. 이곳에 들러 세작 한봉을 구매했다. 기념겸 공정여행 실천 차원이다. 구매 전에 판매원에게 차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요청했다. 첫 수확한 찻잎을 '우전'이라 하고 그후 일주일 뒤 따는 찻잎을 '세작'이라 한다. 다음이 '중작', 마지막 수확인 6월에 딴 잎은 '대작'이다.

그나마 고급 차인 '세작'을 구매했다. 그 이외에 차의 새순 모양을 일컬어 작설차(雀舌茶 ) 부르는데, 차순이 '참새의 혀 모양'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작설차는 고급차로 조선시대에는 고다(苦茶) 또는 산차(散茶)로 지칭됐다.

한국차박물관에서 나와, 오른쪽 도로를 따라 오르면 '차 만들어보는 곳'이란 건물이 보인다. 문이 꼭 닫혀 있었지만 이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재료 준비를 위해 예약은 필수며, 15명 이상 신청 가능하다.
 
난대성 식물로 꾸려진 작은 식물으로, 한바퀴 도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녹차 속의 색다른 구경거리다.
▲ 한국차박물관 뒤편, 실내정원 난대성 식물로 꾸려진 작은 식물으로, 한바퀴 도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녹차 속의 색다른 구경거리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박물관 뒤편, 실내정원으로 가봤다. 실내정원으로 들어서는 동시에 외국인 방문객과 마주쳤다.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손님이고 나는 주인장일텐데.. 오히려 친절을 베푸는 그들의 몸짓에서 예의가 배어있음을 느꼈다. 정원은 난대성 식물로 꾸려진 작은 식물원이다. 한바퀴 도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녹차 속의 색다른 구경거리다.

실내정원 뒤편, 다원의 유려한 곡선이 선을 그린다.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와 산책로도 있다. 천천히 광장으로 내려가자 동료들이 공정여행 차원에 녹차 양갱과 모나카, 녹차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있다. 한입 쏙 넣은 녹차 아이스크림에 나도 취한다. 달콤하다. 인생이 이랬으면 좋겠다.

차의 명장과 함께 한 다도락다원
 
차의 정수를 체험하고자 보성 영천저수지에 자리 잡은 다도락 다원으로 향했다. 이곳 다원 주인장은 20년 넘게 녹차뿐만 아니라 발효차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다도락 다원의 체험 차의 정수를 체험하고자 보성 영천저수지에 자리 잡은 다도락 다원으로 향했다. 이곳 다원 주인장은 20년 넘게 녹차뿐만 아니라 발효차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아직은 차 맛을 잘 모르겠다. 가끔 풀향이 느껴져 역하기도 하고 더러는 부드럽게 넘어갈 때도 있다. 온기 속에 퍼지는 녹차의 맛은 구수한듯 쌉쌀해야 제맛이라 한다. 온도와 사람의 손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차다. 커피도 비슷하지만 대중적 색깔론에 묻혀 비난받고 있다. 기호식품을 꼭 좌우로 나누긴 좀 그렇지만. 차는 예의와 그 섬세한 손길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리고 '차도'를 통해 예를 배운다.

차의 정수를 체험하고자 보성 영천저수지에 자리 잡고 있는 다도락 다원으로 향했다. 이곳 다원 주인장은 20년 넘게 녹차뿐만 아니라 발효차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전통차인 녹차 시장의 한계를 직감하고 홍차를 비롯해 각종 차를 섞어 개종차를 만들었다.

경상남도 진주가 고향인 그는 1988년부터 차(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전통 찻집을 운영했다. 1999년 한국 다도대학원에 전문적으로 차를 공부하면서 차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다. 그와 중, 보성군 영천마을에 귀농해 2006년부터 약 10ha(30만평)의 유기농 친환경 차밭인 '다도락 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녹차밭으로 가 어린 녹차잎을 땄다. 이 과정은 찻잎 따기 '채다' 이다. 이파리가 좀 크면 1창1기를 따고 잎이 보드러우며 1창2기를 따면 된다.
▲ 찻잎 따기 "채다"  먼저 녹차밭으로 가 어린 녹차잎을 땄다. 이 과정은 찻잎 따기 "채다" 이다. 이파리가 좀 크면 1창1기를 따고 잎이 보드러우며 1창2기를 따면 된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먼저 녹차밭으로 가 어린 녹차잎을 땄다. 이 과정은 찻잎 따기 '채다'이다. 이파리가 좀 크면 1창1기를 따고 잎이 보드러우며 1창2기를 따면 된다. 녹차 끝부분 뾰족한 잎이 창이다. 창을 두고 녹차의 품평이 나뉜다.

창 주위로 난 잎의 개수에 따라 1창1기, 1창 2기, 1창 3기 등으로 명칭이 부여된다. 녹차의 지식이 어설퍼도 1창1기가 고급차라는 느낌이 팍 온다. 뾰족한 잎인 창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듯. 녹차를 딸 때 주의점은 손톱 끝으로 톡 잘라야 된다.
 
녹차잎을 주인장은 뜨거운 솥에서 맨손으로 가볍게 녹차들을 굴리는 덖기를 한다. 이 과정은 ‘살청’으로 효소의 촉진작용을 억제하는 과정이다.
▲ 찻잎의 살청 과정인 덖기 녹차잎을 주인장은 뜨거운 솥에서 맨손으로 가볍게 녹차들을 굴리는 덖기를 한다. 이 과정은 ‘살청’으로 효소의 촉진작용을 억제하는 과정이다.
ⓒ 최정선

관련사진보기

 
얼추 딴 녹차잎을 주인장은 뜨거운 솥에서 맨손으로 가볍게 녹차들을 굴리는 덖기를 한다. 이 과정은 '살청'으로 효소의 촉진작용을 억제하는 과정이다. 타지 않도록 손동작이 엄청 빠르게 진행했다.

덖은 후 가볍게 비벼준다. 찻잎의 세포막을 자극해 향이 나오게 하는 '유념'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평평한 곳에서 밀고 섞어주는 '고정' 과정을 거친 뒤 그늘에 말려준다. 이 과정은 발효를 중단 시키는 단계다. 세 번 덖고, 세 번 쯤 건조하면 우리가 마실 녹차가 완성된다.

만든 녹차에서 발효차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더구나 자신이 만든 차를 가져갈 수 있다. 보성에 가져온 차를 마시며 그때 여행을 새록새록 되새겨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보성, #녹차, #대한다원, #한국차박물관, #다도락다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