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국내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미국 청년 세대가 존경해마지 않는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극화한 또 하나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3일 용산 CGV에서 언론에 선공개 된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 주목한 긴즈버그의 일화는 다름 아닌 '법으로 인한 역차별'에 맞선 재판이었다. 

우리에겐 남성만 군사학교 입학 허용을 허용하던 버지니아 주의 양성평등 침해 판결인 '미합중국 대 버지니아 주' 건, '50개 주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로 유명한 긴즈버그는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에서 양성 평등, 나아가 성소수자 인권 확대에 기여한 법조인이다. 지난 3월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가 개봉한 후 국내에서도 꽤 반응이 있었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초년생 시절 긴즈버그에 주목했다. 영화는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 전체 학생 중 단 2%에 해당한 여성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긴즈버그가 당당히 수석 졸업한 이후 의미 있는 첫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카리스마 있고, 당당한 말투로 알려진 그 역시 새내기 변호사로서는 부족함 투성이었다. 영화는 긴즈버그 개인의 모습과 동시에 그를 지원한 가족, 그리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조력한 사람들을 고루 다루고 있다.

법정물 마니아도 매력 느낄 구성

단순히 생각하기엔 긴즈버그가 여성 운동에 매진해온 걸로 보기 쉽다. 하지만 영화에서 초년 변호사 긴즈버그가 맡은 사건은 다름 아닌 홀로 노모를 모시고 있는 남성 보육인 모리츠의 재판이었다. 1970년대 당시 미국 연방 법상 정부의 보조금은 여성이 대상이었고, 남성이 받는 경우는 이혼이나 사별한 뒤 부모를 모시는 경우에 한정돼 있었다. 

홍보 과정에선 '역차별'이라는 표현이 강조되고 있지만 긴즈버그의 모리츠 변호는 여성권의 태동과 발전에 가려진 남성의 숨은 차별을 변호한 게 아니라 양성평등에 기초한 것이다. 나아가 영화에서 긴즈버그가 스스로 변론하듯, 그가 주장한 건 "늙은 부모를 모시는 모든 국민에 대한 국가의 합당한 지원"이다. 이후 긴즈버그의 활동과 그가 쌓은 선례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었던 셈이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미덕 중 하나는 긴즈버그의 성장 과정에 관객이 함께 몰입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on the basis of sex', 즉 성별에 근거해 법의 적용이 달랐던 당시 미국 사회를 바꾸고자 했지만, 긴즈버그 역시 그런 제도와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민이었음을 영화 초중반까지 부각시킨다. 긴즈버그를 일깨우는 건 같은 변호사 동료이자 남편으로서 늘 지지해마지 않았던 마티 긴즈버그(아미 해머), 부조리한 일을 당할 때마다 참거나 침묵하지 않고 즉각 의사를 표명했던 10대 딸 제인 긴즈버그(케일리 스패니)였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이런 주변 인물을 통해 영화는 뛰어난 개인은 그 자체로 독자적일 수 없으며, 상호 소통과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다. 어려운 법정 용어와 밀도 높은 대사들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제법 무겁게 만들지만, 미국 사회 보편 감성인 가족주의가 그 차가운 온도를 적당하게 데워준다.

사실 이 지점에서 관객으로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극적인 법정물을 좋아하는 이라면 건조하면서도 이성적인 영화의 흐름과 뻔한 가족주의 코드에 실망할 여지가 있는 것. 다만 보스톤 글로브 특종 건을 극화해 흥행에 성공한 <스포트라이트>와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그린 북>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작품 구성 자체나 배우들 연기로도 앞서 언급한 작품과 큰 편차가 없다. 

오히려 법정물 마니아라면 이 영화가 조곤조곤 제시하는 아포리즘, 즉 '이성은 모든 법의 영혼이다' 같은 기치를 비롯해 '법은 당시의 날씨(판례)가 아닌 기후(시대정신)에 근거해야 한다'는 말 등으로 새삼 법의 본령과 본질을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국내 홍보 과정에서 '정의', '영감적', '영웅적'이라 쓰인 영어 포스터 문구가 '힙스터', '핵인싸', '데일리룩' 등으로 바뀌어 표현되며 긴즈버그 정신을 훼손해 논란이 됐던 것이 많이 아쉽다. 

한 줄 평 : 법정물 마니아들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한 드라마
평점 : ★★★☆(3.5/5)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관련 정보

감독 : 미미 레더
각본 : 다니엘 스티플만
출연 : 펠리시티 존스, 아미 해머, 저스틴 서룩스 등
수입 : CJ엔터테인먼트
배급 : CGV아트하우스
러닝타임 :120분
관람등급 : 12세 관람가
개봉 : 2019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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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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