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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토론 모임에서였다. 교육에 관한 책을 토론하다, 교육의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엄마 노릇의 고단함을 토로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자신들의 엄마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됐다.

여차하면 연탄집게를 들고 훈육을 하던 엄마, 방 닦아라, 운동화 빨아라, 어린아이에게 과하다 싶을 일을 시키던 엄마, 어찌나 괄괄하던지 정서적 온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엄마들에 대해서. 또한 당시 엄마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한계에 대해 가여워하면서.

그렇다면 신사임당의 현신으로 TV에 나오던 그 많은 엄마들은 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이런저런 토론 끝에 다다른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줄곧 속았던 것이다. TV에 나왔던 자애롭고 현명한 엄마 따위는 애초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엄마상은 그저 사회가 주조해낸 '우상'이었다.

엄마 노릇에 충실하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과 같은 뜻이다. '나는 어쩌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어느 날 번득 정신이 차려진다고 해서, 사라진 나를 되찾는 일이 분실물 센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 오는 것과 같은 일이 될 수는 없다.

후회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엄마 됨을 후회하는 일은 다른 후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회한다고 후회하는 상황을 전혀 중지할 수 없고, 그 어떤 후회보다 막강한 죄책감을 일으킨다. 엄마 됨을 후회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말할 수 없는, 엄마 됨의 후회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니스 지음 '엄마 됨을 후회함'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니스 지음 "엄마 됨을 후회함"
ⓒ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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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니스는, 왜 엄마 됨을 후회하는가가 아니라, '왜 후회를 말하지 못하는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를 공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가'에 천착한다. 사람이 다르고 처해진 입장이 다르기에 엄마들의 후회함도 그 양상이 다양하다.

저자는 수 십 명의 후회하는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후회를 집중 조명한다. 후회를 하게 된 개인적, 사회적 원인과 후회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과 피해를 파헤친다. 또한 후회를 말하고 그로써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후회의 노정에 풀어낸다. 엄마 된 것을 후회한다면, 그리고 그 때문에 죄책감을 키우고 살고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출산은 오랫동안 자연의 이치처럼 당연한 일로 간주되어 왔다. 모더니즘,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출산이 여성의 권리로 대두되긴 했지만,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출산이 자연의 이치가 된다면, 여성은 자연인가? 출산을 선택한다지만, 그 어떤 선택도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출산을 정말로 '선택'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선택으로 이어진 출산이 권리가 된다면, 출산은 개인적 결정이므로 혼자 책임져야 할 일이 되는 것인가? 출산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여성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저자 오나 도니스가 인터뷰한 여성들은 이스라엘 여성들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 국가가 아이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다른 나라와 그 양상이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는 선택이 아니라 결혼에 수반되는 무조건적인 결과이며, 여성은 기본적으로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을 것을 기대받는다. 이를 행하지 않을 때, 사회적 따돌림을 감수해야만 한다. 철저히 식민화된 결혼과 출산에 대한 관념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여성이 출산하지 않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지은이가 인터뷰한 많은 여성들의 후회는 그 양태도 결과도 달랐다. 아이가 많고 적음만이 후회를 좌우하지 않았고, 통념처럼 경제적인 상황이 후회함을 결정짓지도 않았다. 아이가 여럿이든 하나이든 그 수에 의해 후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구나 처해진 상황에 의해 삶이 분절되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해서 엄마로서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부의 정도가 반드시 후회의 정도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후회는 이데올로기나 관습 때문만이 아니라 삶 전반의 억압감과 관련된다."(p246) 엄마 됨을 후회하는 경우의 대처도 각각이었는데 인터뷰한 엄마들의 경향은 세 가지였다. 우선 낳을 거면 빨리 낳아 버리겠다. 둘째, 임신을 연기하겠다. 셋째, 출산하지 않겠다. 어떤 경우든 엄마 됨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당연한 일로 여겨져 아이를 낳았던 선택해서 낳았던 후회는 찾아온다. 후회란 "내면의 불안과 자신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동반하는 감정 상태"(p79)를 말한다.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만 칭송받을 수 있는 엄마라는 위치에 서 있다 보면, "내면에서 뭔가가 서서히 소멸"(p148)하는 것을 느낀다. 나오미 울프의 말처럼 여성은 첫아이 출산으로 일종의 상징적 죽음을 맞게 되는데, 엄마라는 "삶의 실체는 파괴"(p148)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신이 보낸 천사, 모성은 위대하다'는 오래된 신화 앞에 엄마는 작아진다. 당연하다. 엄마는 신의 대리인도 위대한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역할의 경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마라는 역할만은 이례적으로 유구한 세월 '무제한의 수유'라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모성애는 인구변화와 신생아 사망률 감소의 결과로 강한 애착이 형성되면서 빚어졌다는 주장도 있듯이, 모성애가 보편적이라는 관념은 역사학적으로도 논쟁적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모성을 미화하는 레토릭,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한 일은 너를 낳은 일이야." 세상의 엄마들이여, 동의하는가? 이런 직조된 아이콘을 진정한 엄마로 미화시키면, 엄마들은 더욱 후회를 말할 수 없다.

엄마들은 개인의 삶을 배제한 모성신화에 의식 무의식 모두를 저당 잡힌 채 살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생명의 디자이너로 등극하는 이 시대에, 모든 가치가 도전받는 이 시대에, 어째서 모성이라는 신화만은 혁신되지 못하는가.

'엄마와 아이는 한 묶음'이라는 오래된 관념 또한 엄마를 억압한다. 엄마가 되지만, 막상 아름답게 칭송되던 모성애가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엄마는 큰 분열을 겪는다.

'엄마 됨은 고결한 것'이라는 신화는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다 내어 놓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고달픈 경지였다. 숭고한 모성이라는 신화에 욕망을 거세당한 엄마는 오직 엄마이기만을 요구받는다. 이런 억압된 사회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창조적으로 구성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제는 말해야 하는 '엄마 됨의 후회'

영화 <디 아워스>의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은 엄마로 사는 일이 버겁다. 둘째를 임신한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갈망하지만, 현실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남편의 생일에 케이크를 굽다 집을 탈출하다시피 나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더는 견딜 수 없던 로라는 둘째를 출산한 후 집을 떠난다.

그녀의 엄마 됨을 후회함은 왜 이해받을 수 없는 걸까? 왜 영화는 두고 떠난 아이가 불행해지는 결말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걸까? 로라는 계속 남편의 집에서 살 수도 없었겠지만, 살았더라도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로서 죽었다면, 그것은 숭고한 선택인가?

로라는 집을 나간 후 사서가 되어 홀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작 사서가 되자고 애를 버리고 떠났냐고. 엄마도 아니라고. 그렇다. 사서로서의 로라의 삶은 '고작'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고작'인 삶을 산다. 누구나 그렇듯이 로라의 '고작'인 삶도 지지 받아야 마땅하다. 견딜 수 없어 떠난 로라는 평생 단 하루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라가 후회함을 말할 수 있었다면, 고작 사서 따위가 되겠다고 엄마를 버린다고 저주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숨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나쁜 엄마라는 굴레를 씌우지 않았다면, 집을 떠난 후라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테고, 비록 엄마로서 아이를 직접 양육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엄마의 후회를 아프지만 용인할 수 있게 했다면, 아이 역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누구나 인생을 후회하며 산다. 그리고 후회는 다른 선택이나 변화를 동반한다. 후회에 따른 다른 시도에, 그 누구도 엄마의 후회됨만큼 비난받지는 않는다. 어째서 엄마라는 역할은 절대 변화 불가인가?

지은이의 연구에 참여한 모든 엄마의 후회는 그 결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드러냈지만, 한결 같이 강하게 어필하는 주장이 있었다. 엄마 됨을 후회한다는 것이 아이와는 무관하다는 것, 후회한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 후회한다고 엄마 자격을 박탈할 권한을 대체 누구에게 주었단 말인가?

'후회'가 개인의 포기라는 편견은 후회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게 막는다. 개인의 선택은 이데올로기일 뿐, 그 어떤 선택도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것은 없다. 네 선택이었으므로 네가 책임지라는 무언의 명령은 침묵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신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침묵은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저자 오나 도니스는 "후회란 새로운 사회 인식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과거를 조망하라는 지시"(237)라고 역설한다. '엄마 됨을 후회한다'는 발화를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만 후회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접근하게 한다. 단지 개인의 결함이 후회를 낳는다는 오래된 메시지를 이제 더 이상 수신해서는 안 된다.

엄마는 그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엄마는 획일화된 단 하나의 모성으로 정체될 수 없다. 이를 수용하면, 엄마와 아이는 다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엄마라는 역할로서의 삶과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로서의 삶을 구별할 때, 엄마라는 삶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엄마는 후회에 대한 낙인을 거부하고 후회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후회를 딛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엄마와 아이는 에이드리언 리치가 희망한 것처럼, '서로에게 우선이 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결코 '서로의 운행 주기를 방해하지 않는 행성처럼.'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엄마됨을 후회함 -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

오나 도나스 (지은이), 송소민 (옮긴이), 반니(2018)


태그:#엄마 됨을 후회함 , #오나 도니스, #에드리언 리치 , #디 아워즈 , #모성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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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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