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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인파 속의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추모 인파 속의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 추모 인파 속의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추모 인파 속의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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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대에도 민주노동당은 크게 당세가 신장되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인 데다 수구언론은 시대의 변화에도 상관없이 꾸준히 붉은 색깔을 칠하고, 일부 인사들은 봉인된 병 속에 갇혀 있듯 도그마 속에 갇혀 극단론을 펴고, 여기에 노동계층 진보운동의 미성숙과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 결여 등이 복합적으로 지적된다.

진보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시대의식과 소명감이 투철한 편이다. 그러다보면 신념과 자아의식이 강하고 타협보다 자기확신에 빠지기 쉽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의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참여하여 만들었는데, 대선에서 형편없는 득표를 한데다 대선 후 당 운영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열린 진보국감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열린 진보국감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열린 진보국감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열린 진보국감 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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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성격적으로 비교적 유연하고 조급성이 덜한 편에 속한다. 서두르지 않고 그 대신 멈추지도 않는다. 우울하거나 침잠해 있을 때는 바그너와 차이코프스키ㆍ베토벤의 음악을 들었다. 분방함 속에서도 예술과 음악을 듣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소양이 있었다. "바그너는 파시즘과 연결되지 않았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한다.

고민 많이 한 대목이에요. 고등학교 때 고민 많이 한 것 중 하나가 히틀러가 클래식 좋아한단 얘기를 들었던 거예요. 그전까지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빠지다 보니까,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다 착한 사람이다. 대개 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 좋아하면 착한 사람이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다가 히틀러도 좋아했다. 특히 바그너를, 그러자 굉장히 실망했어요.

이렇게 좋은 음악인데, 음악 좋아한다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음악을 좋아하면서 태연히 유태인 학살을 도모할 수 있다니. 그런 예야 허다하지만, 그래서 그 무렵 바그너는 약간 꺼려지는 면이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철저하게 분리하려고 해요. 예술지상주의자는 전혀 아니지만,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예술을 무조건적으로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것은 안 된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요.(주석 1) 

   
민주노총 노회찬 본부장과 함께 민주노총 노회찬 본부장과 함께
▲ 민주노동당 서울본부 노회찬 본부장과 함께 민주노동당 서울본부 노회찬 본부장과 함께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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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자신이 걷는 상황에 절망하면서도 '길이 없는 길'을 찾았다. 그즈음 신영복 선생을 자주 만났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낸 시대의 스승이었다.

이를테면 신영복 선생을 저는 롤모델로 생각해요. 인생을 어떻게 대하는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운동을 어떻게 대하는가, 운동의 기법보다는 운동에 대한 기본자세와 철학 이런 데 관해서 가장 많이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스승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래야 될지 저래야 될지 망설여 질 때 머릿속에 그분을 떠올려보니까요.

그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 답이 나올 때도 있지요. 운명적으로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지내왔는데 좀 늦게, 어찌 보면 늦은 것도 아니지만 예상 밖의 큰 기쁨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이죠.(주석 2)


노회찬은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언론풍토에 크게 환멸을 느꼈다. 수구 족벌 신문이 언론계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언론 본연의 사명을 잃고 수구 기득권 집단의 대변지 역할을 해왔다. 군사정권을 비호하고 민주정부와 진보정치세력을 적대시했다.
  
22일 오전 민주노동당원들이 여의도 국회앞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만장시위를 벌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국회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2일 오전 민주노동당원들이 여의도 국회앞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만장시위를 벌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국회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22일 오전 민주노동당원들이 여의도 국회앞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만장시위를 벌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국회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2일 오전 민주노동당원들이 여의도 국회앞에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만장시위를 벌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국회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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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미약하지만 스스로 언론매체를 만들었다.

1993년 5월 18일 일간 『매일노동뉴스』를 창간한다. 민주와 진보, 복지와 평화를 주창하면서, 진보적 의제를 선도하고 노동운동의 발전 및 사회진보를 선도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사재를 털고 은행에서 빚을 내서 만든 『매일노동뉴스』는 노동계와 진보진영의 대변지 구실을 했다. 보수적인 경제지의 관점에 맞서는, 노동과 진보에 기반을 둔 시각과 논조를 유지하면서, 특정 이해관계에 의해 편향되지 않고 정론지를 추구했다. 1999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제1회 노동문화상(노동언론 부문)을 수상하고, 2001년에는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다.

2003년 10월 박승흡 대표이사(발행인)에게 넘길 때까지 10년 동안 발행인으로 신문을 주관하고, 이로 인해 그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부채를 지게 되었다.

국회의원 처음 됐을 때에는 『매일노동뉴스』 오래 하면서 진 빚 때문에 막판에는 카드 돌려막기 했어요. 신용불량을 세 개나 맞았지. 신용불량인 상태에서 출마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서 메우는 바람에 채무가 생겼는데, 국회의원 돼서 어떤 은행에서 가장 좋은 카드를 만들어주겠다고 막 방에까지 찾아와서 사인도 딱 했는데, 그 다음날 전화 와서 죄송하지만 카드발급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더군. (주석 3)

노회찬은 지극히 어려운 처지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진보정당과 진보언론 활동을 벌이며 40대의 고개를 넘는다. 함께 진보운동에 나섰던 몇몇 명망가들은 한나라당으로 가서 국회의원 뺏지를 달고 거들먹거렸다.    


주석
1> 『진보의 재탄생』, 156쪽.
2> 앞의 책, 138쪽.
3> 앞의 책, 8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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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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