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편 칠순여행 준비
※2편 교토/오사카 3일-1일 차(오사카성, 도톤보리)
※3편 교토/오사카 3일-2일차(키요미즈데라, 긴카쿠지, 철학의 길)

아라시야마(あらしやま)

아라시야마에서는 세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숲과 길과 물. 우리나라라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외국 여행 일정 동안 그 나라의, 그 계절의 여러 가지 자연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큰 덤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대도시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라시야마 일대는 크게 한 바퀴 돌 듯 산책하며 몇 군데 장소를 구경할 수 있는데, 숲에서 시작해서 강으로 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갈 수도 있다. 버스를 어디에서 내릴까 잠시 고민했다. 숲과 물 중에서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에서 산책을 마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다. 계획보다 한 정거정 먼저 내렸다. 숲을 택했다.
  
숲의 초입에는 노노미야 신사가 있었다. 신사 안의 바위를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1년 안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못 보고 지나쳤다. 규모가 작아 아기자기하지만 많은 이들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은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신사에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노노미야 신사의 도리이 자그마한 신사에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김강민

관련사진보기



키요미즈데라에서도 보았던 주황색이 도리이*와 사찰 건물의 기둥 등에 입혀져 있었다(*도리이 : 일반적으로 신사의 입구에 세우는 전통적인 일본의 문이다. 두 개의 기둥이 서있고 기둥 꼭대기를 연결하는 가로대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촬영지이기도 한 치쿠린(竹林, 대나무 숲)은 양쪽으로 키 큰 대나무가 늘어서 있는 길이다. 높이 솟은 대나무 아래에는 흙 길이, 위로는 하늘 길이 놓인 풍경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저물기 시작한 황색의 햇빛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나무 잎 사이에 나타났다 숨는다.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길
▲ 치쿠린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길
ⓒ 김강민

관련사진보기

  
대나무 숲을 벗어나 흙길을 걸어 내려가면 어느 순간 탁 트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카츠라강이다. 그래. 이 맛이다. 시작점으로 숲을 선택하길 잘했다. 갇힌 곳에서 시작해서 탁 트인 곳에서 마무리하는 산책이 우리에게는 더 큰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와... 시원하네."  

강가의 벤치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 그 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 그리고 왼쪽 멀리 보이는 아라시야마의 명물 도게츠교(渡月橋)까지 둘러본다. 이 다리는 이준기,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 <첫눈>에 등장했다. 강렬한 인상보다는 잔잔한 운치가 있는 아라시야마의 풍경을 영화의 배경으로 깔고 싶었던 감독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아라시야마의 명물. 영화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 도게츠교(渡月橋) 아라시야마의 명물. 영화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 김강민

관련사진보기

  
도게츠교는 나무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남다른 촉감을 가진 다리다. 난간을, 기둥을 쓰다듬어 보며 건넌다.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아라시야마의 풍경을 만난다. 건너편의 아라시야마 공원에는 벚꽃 구경을 하는 사람들 무리가 곳곳에 보인다.

야키토리 가게, 카미나리(雷)

아라시야마 공원까지는 가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이틀째. 조금 익숙해진 벚꽃은 멀리서 구경하고 저녁에 어떤 맛난 음식을 먹을지 생각해 보았다. 원래 오늘 저녁은 회전 스시를 먹을 계획이었다. 그 또한 일본의 문화 중 한 가지이니까. 어제저녁에 이것저것 사다가 집에서 한 잔 기울인 게 좋으셨는지 스시를 사서 집에서 먹자는 의견이 많다.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짧은 일정 중에 식당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안 되는데 그중 한 군데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선뜻 마음이 서지 않는다. 문득 지난해 도쿄에서 먹었던 야키토리(닭꼬치구이) 생각이 났다. 닭의 갖가지 부위를 구워서 소금(塩, 시오) 간을 하기도 하고 소스(タレ, 타레)를 발라 먹기도 하는데 식구들이 너무 맛있게 잘 먹었었다.

생각나면 일단 실행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달나라로 가는 경로도 알려줄 것 같은 세상이다. 찾아보니 어제 내렸던 숙소 근처의 역 뒤에 가게가 하나 있다. 이름이 카미나리(雷), 천둥이다. 강렬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마음에 든다. 왠지 맛있을 것 같다. 대형 마트가 맞은편에 있어서 2차와 내일 아침까지 준비할 수 있으니 위치도 만점이다.

전화를 걸어 5시에 예약을 했다. 바로 출발하면 딱 맞을 것 같은 시간이면서 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기도 했다. 식당에서 밖에 먹을 수 없는 일본의 대표 메뉴를 생각해 낸 것에 들뜬 나를 보며 저럴 정도인가 싶었을 텐데, 모두 선뜻 가보자고 생각을 맞춰 주셨다. 쉬고 있던 곳도 마침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었으니,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은 듯 도착한 버스를 타고 바로 엔마치역(円町駅)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가게는 작았다. 과거에 일본은 모든 집들을 골목에 면하게 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그러다 보니 골목에 면한 폭은 좁고 깊이가 길게 부지를 나누었다고 한다. 골목 면에는 가게를, 가운데에는 마당을 두고 안쪽에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폭이 좁고 깊이가 긴 건물이 많다. 계단을 둘 곳이나 있나 싶지만 그 안에 기가 막히게 잘 배치하는 것도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온 이 나라 사람들의 지혜다.

아기자기한 전면의 카미나리에 들어서니 예상대로 아직 손님이 없다. 막 문을 연 가게에 외국인 일곱 명이 들어선다. 낯선 우리 만큼이나 사장님도 낯설었겠지? 같은 동양인이라 해도 이목구비도 옷도 말씨도 다르니, 길에서 지나칠 때와는 다르게 가까이에서는 그 차이가 더 확실히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 동네의 평범한 가게니, 외국인들이 이런 곳까지 웬일인가 싶은 표정이 보인 건 기분 탓이었을까?

"일단 생맥주 일곱 잔. (とりあえず、生*七つ 토리아에즈 나마* 나나쯔)"
*나마 비루(生ビール, 생맥주)를 줄여서 나마(生)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일본 가게에서는 음식 주문을 받기 전에 마실 것부터 물어본다. 이자카야와 같이 술 한 잔 하는 가게에서는 이렇게 우선 생맥주부터 시킨다. 일단 약한 술로 시원하게 한 잔 하는 것인지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일단 소맥 한 잔부터 말고 보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다. 여기는 일본이니 일단 생맥주 한 잔 씩 하기로 했다.

심장, 모래집, 허벅지, 날개, 간, 표고버섯, 마늘... 정말 이것저것 시켜 보았다. 지금 아니면 이 집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실컷 맛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시오"로, 나중에는 "타레"로. 맛있다. 자신감 넘치는 가게 이름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현지의 평범한 가게에서 먹는 맛은 특별하다.
▲ 야키토리에 맥주를 즐긴다. 현지의 평범한 가게에서 먹는 맛은 특별하다.
ⓒ 김강민

관련사진보기

  
연이어 나오는 꼬치에 끼워진 작은 덩어리들을 아래로 밀어 빼낸다. 하나씩 입으로 가져가,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한 번, 두 번 씹다 보면 뒤늦게 따라오는 처음 느껴보는 맛. 그런 경험을 차례차례 하는 동안, 거기에 곁들이는 시원한 맥주에 기분 좋은 포만감이 점점 올라온다. 그러는 사이에 또 참 많이도 웃었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너무 실컷 웃고 떠든 게 마음에 걸렸는지, 사장님께 인사를 전하라고 계산대로 향하는 나에게 부탁을 하신다.

"시끄럽게 했습니다.(お騒がせしました。오사와가세시마시따.)"

인사를 건네니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돌아온다.

"감사합니다."
"와!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우리말도 외국에서 현지인에게 들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트 장보기 & 칠순 파티
 
마트에서 산 롤케이크, 음식과 술로 어머니의 칠순 파티를 준비했다.
▲ 칠순 파티 준비 마트에서 산 롤케이크, 음식과 술로 어머니의 칠순 파티를 준비했다.
ⓒ 김강민

관련사진보기

 
1차를 일찍 시작했더니 밖이 아직 환했다. 큰길 건너 마트로 향했다. 안주 거리, 아침 먹거리를 이것저것 담아 본다. 카트 하나로는 모자란다. 언제 또 먹어 보겠냐며 담고 또 담아 본다. 예의 상 거절하고 아끼느라 담을까 말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카트에 척척 담으시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다. 그렇게 해 드리고 싶었던 여행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더 푸짐하게 장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는 익숙해진 동네. 헤맬 일 없이 골목길을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꺾어 집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시간이 반밖에 걸리지 않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막막했던 것도 알고 하면, 익숙해지면 이렇게 별 게 아니다. 와보지 않았다면 이 낯선 골목길을 이렇게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었을까.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가는 푸근함까지 느끼면서.

각자 양손 가득 사들고 온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어머니의 일흔 번째 생신 파티를 준비했다. 말차 롤케이크를 가운데에 놓고 축하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같은 노래지만 여섯 명이 각각 다른 호칭으로 부른 노래가 우리의 아담한 일본 집 안에 가득 찼다. 마트에서 사 온 일본 정종, 일본 소주 맛을 보며, 어제보다 더 푸짐한 안주를 즐기며 어머니의 특별한 생신 파티가 성황리에 끝났다.

교토에서 보낸 둘째 날. 벌써 며칠을 머문 것 같은 느낌이다. 내일이면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지난 이틀 동안 남은 기억이 많고, 나눈 이야기는 더 많고, 내일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다음 이야기 : 여행 3일 차의 료안지(용안사), 금각사(킨카쿠지), 교토역

태그:#칠순여행, #교토, #오사카, #일본, #아라시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외 사업을 개발하는 직장인 ●작가, 시민 기자, 기업 웹진 필진 ●음악 프로듀서 ●국비 유학으로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박사 ●동경대학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쿄대 스토리"의 공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