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월 26일 한미 FTA 저지 민주노동당 총력 결의대회 (시청광장) 3월 26일 한미 FTA 저지 민주노동당 총력 결의대회 (시청광장)
▲ 3월 26일 한미 FTA 저지 민주노동당 총력 결의대회 (시청광장) 3월 26일 한미 FTA 저지 민주노동당 총력 결의대회 (시청광장)
ⓒ 노회찬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인민노련은 1989년 8월 25일자로 기관지 『사회주의자』를 창간하였다.

노회찬은 편집위원으로서 기관지 발행에 열정을 바쳤다. 아무리 6월항쟁 직후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자'를 제명으로 하는 기관지 발행은 여간한 용기가 없이는 어려운 시기였다.

창간사에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창간사의 기초자는 김철순으로 되어 있지만, 인민노련을 주도해온 노회찬의 생각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창간사의 주요 부분을 발췌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각성을 돕고, 계급의식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이 신문을 창간하였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7, 8월 투쟁으로 '새로운 출발'을 경험하였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활력은 조금도 감퇴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의식상의 발전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광범하고 치열한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직관은 나날이 풍부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해석함으로써, 계급투쟁 속에서 나날이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노동자계급의 직관에 분명한 이론적 표현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 그것의 해결이라는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토론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에 대해 거듭 이야기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모든 피착취 근로대중의 대표자이며, 그 대표자로서의 책무를 조직적, 지구적 투쟁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사실도 거듭 말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곧 노동자계급의 유일하게 과학적이고 올바른 사상, 즉 과학적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과학적 사회주의에서만이 모든 의문의  일관되고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장할 때만 이 온갖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비과학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나아가 소외된 임금노예의 상태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자신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으로는 모든 노동자를 이끌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 앞에 주저하는 노동자를 격려할 것이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를 도울 것이다.(주석 4)

 
노회찬은 인민노련에서 애정을 갖고 일하였다. 처음으로 주도하여 만든 조직이어서 그만큼 애착이 컸을 터이다.

인민노련에서 노회찬이 맡은 임무는 조직부장이었다. 그의 조직 수완에 대해 주대환은 이렇게 증언한다.
 
"노회찬 씨는 자기주장을 먼저 내세우지를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워 논쟁을 벌이도록 내버려 두고는 그중 다수를 차지한 주장을 선택해 자기 것으로 소화해 결론을 삼습니다. 자연히 큰 반발 없이 조직화에 성공합니다. 정략적으로 그렇게 한다기보다 본래 성품이 그런 사람이라고나 할까? 타고난 조직가지요." (주석 5)
 
삼성 본관 앞 X-파일 문화제. 삼성 본관 앞 X-파일 문화제.
▲ 삼성 본관 앞 X-파일 문화제. 삼성 본관 앞 X-파일 문화제.
ⓒ 노회찬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6월항쟁으로 전두환의 폭정은 끝나는 듯했지만 그의 충실한 후계자 노태우가 정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야권 후보의 난립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6월항쟁 후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민주화운동ㆍ학생운동ㆍ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에 대한 추적은 여전하고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노회찬의 수배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인민노련의 창설과 활동에 공안당국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검거에 혈안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피신의 터널을 걷는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나치와 싸우다가 피신자가 되고 망명객이 되고 긴 세월 해외를 떠돌았다. 덴마크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사람들이 마굿간에 회칠을 하여 그 속에다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 「은신처」란 시를 지었다.

         은 신 처

 풍향기가 하나 지붕위에 있다
 미풍이 짚을 날려 보내지는 않겠지
 마당에는 아이들의 그네를 위해
 말뚝이 박혀 있다.

 우편물이 두 번씩 도착한다
 편지들은 환영받고 말고
 해엽을 따라 나룻배들이 내려온다
 집에는 빠져나갈 문이 네 개 있다. (주석 6)



주석
4> 김철순 엮음, 『사회주의자의 실천(1)』, 94~95쪽, 일빚.
5> 안재성, 앞의 글.
6> 마리안네 케스팅 지음, 홍승용 엮, 『브레히트 평전 - 삶과 문학』, 92쪽, 한마당, 199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