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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접공 시절을 회상하는 노회찬 의원
 용접공 시절을 회상하는 노회찬 의원
ⓒ 노회찬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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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사회 출발은 용접공으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에 접했던 다양한 독서와 시대적 상황이 그를 노동계로 이끈 것이다. 한국 사회는 4월 혁명과 10ㆍ26사태를 겪고도 변화가 없고 기층노동자들의 생존은 어렵기만 했다.

일제강점기 이래의 기득권층이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자들과 맥을 같이 하면서 거대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비록 군부정권을 막지는 못했으나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노동자들이 크게 각성하고, 사회의식에 눈뜨면서 변혁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다.  

광주항쟁을 전후하여 많은 대학생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현장 취업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위장 취업'이라 하여 좌경으로 몰고 공안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일삼았다. 청년들은 굽히지 않았고 1982년 한 해에만 전국의 '위장취업자'가 1만 명에 이른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5공시대 각종 시위에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많았고, 이들의 배후에는 위장취업자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노회찬은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다. 작심하면 결단하고 실행한다. 하여 노동자의 길에 나섰다. 전기용접 기능사 자격이 있고 신체가 건강해 보여 금방 취업이 가능했다. 선량한 노동 청년들과 어울리며 열심히 일했다. 대학졸업생이란 것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1980년대 초 노동계는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 취업이 봉쇄된 해고노동자들이 1983년 말부터 종교ㆍ학생운동과 연계하여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을 시작하면서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듬해 1월 6일 한국노동자복지회의 결성은 노동운동의 큰 전기로 작용했다. 창립과 함께 채택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선언〉에서 "유신독재의 어두운 시대에 민주노동조합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다 권력의 잔인한 탄압에 의해 희생된 당사자로서 비조직적이고 고립분산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운동의 주체성ㆍ통일성ㆍ연대성을 드높일 것"을 천명했다.

한국노동자복지회는 이후 민청련 등과 함께 블랙리스트 철폐운동ㆍ노동법개정 투쟁 등을 전개했으며, 80년대 노동운동의 이정표가 되었다. 노회찬은 이같은 노동계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고된 노동자의 길을 걷는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노동자 생활은 3년 동안 계속되고, 20대 후반의 청춘을 보내었다. 월급을 받으면 박노해의 시집을 사서 이웃들에게 나눠 주었다. 14살 때인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듣고 어린 나이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었다.
  
박노해 박노해
▲ 박노해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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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1980년대 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시기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 시기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또는 '얼굴 없는 혁명가'로 불리는 박노해 시인이 혜성같이 나타나 노동운동계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약자로 알려진 이 가명의 시인이 쓴 『노동의 새벽』은 암울했던 5공 시절에 노동자들은 물론 대학가의 필독서처럼 되었다. 노회찬도 동갑내기 이 노동시인에 빠져들고 책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70년대 중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 노동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이어서 박노해의 시집이 나오면서 '박노해 현상'이 나타났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젊을 적에 읽었을 때는 모두 다 좋았다. 시가 길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다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신혼 日記〉 〈포장마차〉 〈가리봉 시장〉 〈지문을 부른다〉 〈휴일특근〉 〈노동의 새벽〉은 2018년 오늘 읽어도 감동이다.
▲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젊을 적에 읽었을 때는 모두 다 좋았다. 시가 길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다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신혼 日記〉 〈포장마차〉 〈가리봉 시장〉 〈지문을 부른다〉 〈휴일특근〉 〈노동의 새벽〉은 2018년 오늘 읽어도 감동이다.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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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은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의 첫 시집이다. 그의 시는 이 땅의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고자 노력한 고통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패배와 일어섬의 연속적인 과정 속에서 이제 참된 노동의 부활, 노동의 해방, 민주주의 실현, 민족통일의 달성을 향한 부릅뜬 눈동자가 박혀 뚫린 가슴, 잘린 팔다리, 아니 혼백으로라도 기어이 그날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민중해방의 정서 그 자체가 뭉뚱그려져 있다. 이러한 대립과 해방, 통일의 민중정서와 의지는 민중문학의 기본구조와 일치하여 이 시를 80년대 민중시의 한 절정으로 이끈다. (주석 1)


노회찬이 특히 좋아했던 동명의 시집에 실린 「노동의 새벽」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주석 2)



주석
1> 박노해, 『노동의 새벽』 뒤표지, 풀빛, 1984.
2> 앞의 책, 10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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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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