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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다. 올해 6월이 되면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게 된 지 3년이 된다. 3년 전 썼던 첫 글은 가수 박유천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 "업소종사자가 성폭행은 무슨" 이게 더 위험하다).

지금은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당시 한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라는 플랫폼을 추천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새삼 감사한 부분이다. 아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참 많았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2016년에는 사건·사고들이 참 잦았던 한 해였다. '싸우는 여성들의 사회'라는 이름의 릴레이 기사를 통해 나는 당시 개봉했던 영화 <서프러제트>를 통해 페미니즘의 물결이 차오르고 있는 2016년의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무감각한 사회에서 돌출된다는 것

같은 해 5월 17일 강남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에 두 차례 참여했다. 바로 앞에서 터져 나오는 증언들을 접할 수 있었다. 
 
경찰들은 추모 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안전선을 그었다. 당시 나는 추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절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들은 추모 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안전선을 그었다. 당시 나는 추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절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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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연대를 위한 증언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는 화환을 보냈고, 집회에 참여한 나의 친구 중 일부는 추모집회에 반대하는 행렬(그들이 일베 회원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과 물리적인 충돌을 빚기도 했다. 추모를 위해 모였는데 경찰들이 안전선을 그어야 했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추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사회적 비극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한두 번이었나. 그러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무작정 인파 속으로 달려들어 추모 집회를 방해하려던 남성들을 보면서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그때는 '착잡함'이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다. 

물론 여성주의와 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메갈리아가 탄생했던 2015년부터 관심을 두고 있긴 했다. 아마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 그리고 느낀 것들이 나에게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서프러제트>의 주인공 모드 와츠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였다. 그는 생업에 치여 사느라 여성 참정권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 그가 참정권 쟁취를 위한 증언대에 서서는 써 준 원고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준비된 것 마냥 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 강남역에 있던 나와 당신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집회와 집담회에 참여하고 여성단체에 가입 혹은 후원하며 정당 안에서 여성주의 의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때의 모든 이들이 모드였다.

무기력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자

무기력이라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런데도 바뀌어야 한다고 외칠 때 느끼는 감정 아닐까? 2017년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 나는 언론이 당시 가해자의 질병이나 신상명세를 부각하는 비윤리적인 보도를 일삼은 것에 대해 비판했었다.

여성 대상의 혐오 범죄와 조현병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범죄마저 두 성격 중 하나만을 선택하길 강요하고 전자인 여성 대상의 혐오 범죄를 선택하면 '꼴페미' '메갈X' 같은 경멸하는 명칭을 듣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최근에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참극 역시 가해자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음이 주목받았다. 피해자가 여성, 노인, 어린이 등 약자인 혐오 범죄였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흘러간 측면이 있던 셈이다. 모두 바뀌지 않는 사회, 바뀌지 않는 언론이 만들어낸 같은 자화상이다. 

이번 사건은 혐오가 한 가지 얼굴만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트래픽 장사에 목이 마른 언론들과 그에 부응하는 누리꾼들이 만나 혐오를 더욱 부추기는 모습들은 3년이 지나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말했고 들었으며 그것을 기록했다.

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지속해서 이야기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난망하다. '관종(관심종자)' 같다는 얘기도 수차례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뿐이다. 가끔 조금씩은 달라지는 세상을 보면서 더 많이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답을 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좀 더 나은 질문과 토론을 하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질문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태그:##강남역 사건, ##여성주의, ##서프러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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