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21 10:58최종 업데이트 19.09.03 09:59
뉴욕 맨해튼에서 뉴욕 시민들과 막걸리를 빚기로 했다. 한국 문화를 선망하는 이들과 함께 맨해튼 32가에서 행사를 진행할 텐데, 술 빚기만 하고 헤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술 빚기 행사이니 막걸리와 소주도 시음하고, 한국술 칵테일도 만들어 맛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음할 막걸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에서부터 고민했다.

생막걸리도 좀 내놓고 싶은데, 한국에서 챙겨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편으로는 2개월이 걸려서 맛을 유지하기 어렵고, 비행기로는 150명이 맛볼 양을 보내기는 검역도 있고 하여 곤란했다. 그리고 뉴욕 시민들이 구매할 수도 없는 술을 가져가 시음하는 것은 생색내기에는 좋지만 생산적이지는 못했다.


K-POP 공연은 보여주고 들려주고 음원을 팔면 되지만, 음식과 술은 맛보여주고 익숙하게 만들어서 그 맛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뉴욕에서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래서 뉴욕에서 판매되는 막걸리를 구해서 시음하되, 술 빚기는 뉴욕에서 판매되는 누룩을 사용하기로 했다.

뉴욕에 오다, 막걸리를 빚으러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는 셰프 키친 공간. ⓒ 막걸리학교

 
2019년 5월 지금 뉴욕은 섭씨 10도와 20도 사이를 오르내린다. 바닷가라 바람이 차기도 하지만, 낮에 햇볕이 들면 덥기도 하다. 뉴욕 시민들은 열이 많은 사람들인지, 실내나 택시는 이미 에어컨 바람을 생생 틀어댄다.

내가 막걸리를 빚기로 한 날로부터 20일 먼저 뉴욕에 온 이유는, 실제 빚을 막걸리와 똑같은 막걸리를 빚어두고 그 술이 익으면 행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 정도의 온도 변화라면 20일 정도면 충분히 막걸리는 익어갈 것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뉴욕 맨해튼 웨스트 96번가 숙소는 방 2개에 싱크대와 화장실이 있지만 거실은 없다. 비싼 숙소이지만 막걸리를 빚어두기에는 옹색한 공간이다. 그래서 막걸리를 빚을 수 있는 공유 주방을 찾아달라고, 뉴욕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하는 젊은 진솔에게 부탁했다.

진솔은 브루클린에 사는 친구 테리가 사는 데니젠 아파트의 공유 주방을 소개해 주었다. 맨해튼 코리안타운 32가 H마트에서 1파운드 454g을 9.99달러에 파는 초립동이 누룩가루를 사고, 경기미를 샀다.

초립동이는 H마트 자체 브랜드이고, 누룩은 한국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주문한 14갤런 크기의 발효통을 챙기고,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주방가구점에서 계량컵과 스테인리스볼을 사서 우버 택시를 불러 타고 강철줄이 붙들고 있는 1883년에 완공된 브루클린 현수교를 건넜다.

브루클린은 맨해튼보다 공사장들이 많고 도로도 울퉁불퉁하여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길을 달려야 했다. 창밖으로 벽돌식 공장 건물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그림인지 낙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벽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더러 화려하고 짜임새 있는 건물 벽화들도 눈에 들어왔다. 공유 택시 우버가 구글 주소지의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아파트인데 울타리도 없고 그냥 길가에 서 있는 빌딩이었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테리가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다. 가져온 짐을 카트에 싣고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승강기 쪽으로 도어맨 부스가 있는데, 로비는 스키장 리조트에 들어선 기분이다. 로비와 이어진 휴게 공간에 디귿자형 바가 있고 화려한 천정 조명 아래에 편안한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인테리어가 끝나고, 아직 운영자가 들어오지 않은 카페 같았다. 유리벽 밖으로 마당이 보이고, 마당 건너에 또 다른 휴게실에는 어른용 그네가 여럿 걸려 있었다.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공유 주방이 나왔다. 공유 주방이라고는 했지만, 주방이 딸린 넓은 레스토랑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 갖춰진 시설이었다. 

아파트에 왔는데, 맥주공방이 왜 거기서 나와
 

브루클린 한 아파트의 공유주방에 마련된 맥주 제조 장비와 사물함. ⓒ 막걸리학교

 
맥주 공방이 들어 있었다. 맥주는 2~3시간 끓여서 만드는 것이라, 끓임솥과 여과솥이 필요한데, 그 설비가 두 세트나 갖춰져 있었다. 작업대 위쪽으로 장비 소품들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사물함이 있었다. 보관장 하나를 여니 스타산 소독약과 배관을 조이는 나사들이 있었다. 맥주를 따르는 탭이 설치된 작업대 아래에는 발효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냉온장 설비가 있었다.

테리에게 "이곳이 아파트인가, 맥주 공방인가?" 물었다. 테리는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인데, 셰프 키친(Chef kitchen), 비어 브루어리(Beer brewery), 와인 스토리지(Wine Storage)로 구분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방 와인 스토리지를 보여줬다. 아래쪽에는 와인냉장고가 있고, 그 위쪽으로 벽면 전체에 와인 보관장이 있었다. 개별 와인을 보관할 수 있고, 비어 브루어리에서 빚은 맥주를 그리고 막걸리도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 공간을 사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는데, 초대한 손님이 10명을 넘지 않으면 무료고, 그 이상은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3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진솔이와 테리와 함께 셰프 키친에서 쌀을 씻어 물에 불리고, 가스불을 켜서 고두밥을 찌고, 셰프 작업대 위에서 고두밥을 식히고, 스테인리스 볼에 누룩과 고두밥과 생수를 섞어 열심히 치대 막걸리를 빚었다.

중간 중간 시간이 빌 때는 H마트에서 사온 월매와 순희 막걸리와 한식당에서 구해온 국순당 생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를 빚는 동안 건너편 비어 브루어리에서는 맥주 선생님이 와서 맥주를 살피고 갔다.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아파트 홈페이지에 공지를 해서 사람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맥주 빚기를 진행한다고 했다. 나는 셰프 키친에서 막걸리를 빚는 내도록, "아파트를 파는데, 공유 주방과 공유 양조 공방과 술창고를 넣어 팔다니!"라는 말이 주저리주저리 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풍요롭기 위해 더 가까이 하는 것들

우리의 삶을 되짚어보면, 부족하고 가난하여 공유했다. 집이 부족하여, 셋방살이를 하면서 주인집과 마당과 수도를 공유했고, 산동네 사람들은 화장실까지도 공유했다. 어떻게든 내 집 마련하기를 꿈으로 갖고 사는 시대를 우리는 여전히 통과하고 있다.

무수한 아파트가 지어지고 거실은 넓어지고 똑같은 라인으로 싱크대와 건조기와 오븐이 들어갔지만, 공유 면적은 고작해야 어린이 놀이터와 주차장 그리고 함께 통과해야 할 복도나 승강기가 전부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층간 소음만을 공유하여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까지 되었다. 나 역시도 서울 생활은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시간들이다.
 

브루클린 데니젠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아파트 내벽의 벽화. ⓒ 막걸리학교

 
우연히 찾아온 뉴욕 브루클린의 데니젠 아파트는 공유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적인 공간은 줄이고, 공유할 수 있는 많은 것을 1층과 옥상에 마련해두었다. 방 한 개와 두 개짜리 주택들로 아파트를 채우고, 1층 휴게 공간과 공유 주방으로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다. 옥상에는 텃밭, 캠프파이어장, 동물 공원을 만들어 두고 하늘 아래에서 놀 수 있게 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내벽에는 거대한 벽화가 한 장 그려져 있었다. 층을 달리하여 살지만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한 장의 그림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방 안에만 있지 않고 이웃과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아파트였다. 1인 생활자가 늘어나는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이런 아파트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막걸리를 빚다가 공유 공간과 문화를 보았다. 뉴욕에 와서 막걸리를 빚으려는 것은 한국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막걸리를 빚는다는 것은 막걸리의 값을 한 푼이라고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수 만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공유는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풍요롭기 위해서 서로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뉴욕에서 막걸리를 빚으며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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