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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김태형 변호사는 마틴링게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1일 오후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1일 오후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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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지난 7일 경남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형사단독(유아람 부장판사)은 2년 전 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에 대한 형사 1심 판결(이하 '판결'이라 함)을 선고하였다.

판결은 조선소장 김아무개의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점, 김아무개 및 삼성중공업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조치의무, 산업재해예방조치의무 위반의 점에 대해서 각 무죄를 선고하였다. 요컨대 삼성중공업 측은 특별한 잘못이 없으며, 사고는 현장 노동자의 과실로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실망과 분노를 표하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아래에서는 문제의 판결에 대한 법리적,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 사고 원인을 직접 원인으로 한정하는 점에 관하여

판결은 사고의 직접 원인을 지브크레인이 작업 중임에도 골리앗크레인이 가까이 접근한 점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상 과실'은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은 법이 요구하는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사고의 원인을 이처럼 직접적인 사실에 국한할 이유가 없다. 판결은 이처럼 사고 원인을 한정함으로써 이후 사고 원인이 현장 노동자에게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3. 업무상과실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

판결은 '업무상 과실의 유무를 판단함에는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정도를 표준으로 하여야 하며, 이에는 사고 당시의 일반적인 업계의 수준과 산업 환경 및 조건, 해당 업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며, 의료행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산업재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전제로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을 '일반적인 업계의 수준'으로 바꾸는 등 의료 과실에 대한 판결을 임의로 변형하여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 과실을 판단함에 있어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을 고려하는 것은 '비록 완전무결하게 임상진단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에서(대법원 2018. 5. 11. 선고 2018도2844 판결 등)'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는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임상의학 수준'이라는 확정 가능한 규범적 요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이 제시하는 '업계의 일반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그 내용과 범위도 분명하지 않거니와 지극히 사실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다른 것을 같다고 해서는 안 된다. 판결은 이 '일반적인 업계의 수준'을 전가의 보도로 삼성중공업 측을 면책하고 있는데 이는 전제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다.

산업재해에 있어 업무상 과실의 일반적인 판단 기준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시하고 있는 안전 기준과 의무를 표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4. 규정의 미비 등이 업무상 과실인지에 관하여

수사기관은 "크레인 중첩작업으로 인한 크레인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위험성 평가 및 중첩지역 통과 절차 또는 신호 조정 방법 마련"을 하지 아니한 것을 업무상 과실로 보고 기소하였다. 실제 골리앗 크레인과 지브 크레인이 중첩되는 작업 환경은 삼성중공업 담당자들이 7차례의 회의를 거쳐 지브크레인을 추가하기로 결정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삼성중공업은 이로 인한 위험의 증가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안전 조치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판결은 사고 당시 크레인 관련 안전 규정을 장황히 나열하면서 '넓게 보면 위와 같은 규정이나 지침 속에 중첩지역 통과 절차 및 신호조정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여지가 적지 않다'고 하고 있다. 왜 '넓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판결은 계속해서, 매우 이례적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중 피의자의 대답이 아닌 검사의 질문을 인용하며 당시의 규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반면 안전대책의 보강이 필요했다는 사고 관련자들의 진술은, 책임을 미루는 동기로 진술했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가정하면서 이를 배척한다.

판결은 '규정이나 지침은 그 존재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결국 작업자들이 이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안전 예방을 위한 조치의 의무는 사용자인 기업 측에 있으며 이러한 의무의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에게 규정과 지침을 정하고 이를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판결은 '규정과 지침의 존재만으로는 사고 방지 기능이 없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규범의 존재 자체 또한 예방적 효과가 있다는 형사 정책적 관점에도 어긋난다.

판결은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지브가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하더라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답변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며 규정이 없다는 것이 사고의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지브 크레인이 골리앗 크레인의 진행 경로에 위치하여 중첩되는 객관적 상황을 두고 '규정이 없어 무방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현장에서의 안전규정과 지침 따위는 애당초 아무런 의미도, 필요도 없다.

5. 충돌방지장치의 부재에 관하여
 
세계노동절인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노동절인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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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충돌방지장치가 물리적으로 구현가능한지, 감당할 수 있는 비용범위 내에서 제작ㆍ설치할 수 있는지, 혹시 다른 종류의 사고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이 사건 사고 당시 다른 조선소들에서 그러한 장치를 운용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증거가 부족'하여 충돌방지장치가 없는 것이 과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크레인 충돌방지장치는 이미 상용화 되어 있으며, 사고 당시에도 타 대형조선소에서는 이미 충돌방지장치를 사용하고 있었고, 사고 이후 삼성중공업에서도 2017년 12월경부터 충돌방지장치를 가동하였고, 2018년 7월 1일부터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으로 모든 건설현장에서 이를 의무화한 것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주장에 대한 입증의 아쉬움은 있으나 이처럼 객관적으로 분명한 사실을 설명도 없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6. 관리감독자의 관리감독 책임에 관하여

판결은 삼성중공업 측의 관리감독 책임을 살피며 도급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도급인의 관리, 감독의무와 같은 구체적 지휘, 감독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중공업의 규모가 거대하며, 회사 내의 계층적 업무구조가 7단계 이상 확인된다는 장황한 설명을 한 이후, 사고에 직접 영향을 미친 노동자의 직상자만이 관리, 감독의무를 질 뿐이며, 이는 협력업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설시한다.

삼성중공업의 회사 내 계층 구조가 아무리 잘게 나누어져있다 한들 그들 간에 도급인과 수급인과 같은 관계가 성립할 수는 없다. 회사 내의 계층구조와 분야별 담당업무는 회사의 업무 수행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회사가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선업계는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데 판결은 오히려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를 기업의 관리감독의무를 면제하게끔 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총괄안전감독의무(동법 제18조)도 배제하고 있다.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기업은 복잡한 수직적 계층구조를 만들고, 하청과 재하청을 통해 '위험을 외주화'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여도 항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7.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하여

판결은 '고의범인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에서 피고인 김아무개 등이 이 사건 사고 당 현장 반원들의 실제 작업현황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판시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위험 예방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순수한 고의범이기 보다는 부작위에 의한 과실범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음을 무시한 것이고, 설사 고의범이라 하더라도 '실제 작업현황을 인식'하여야만 한다는 전제는 납득 할 수 없다. 실제의 작업현황을 인식해야 한다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안전 보건 책임자는 항상 면책 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도 고의범으로서 지시 또는 방치라는 위반 행위를 한정하고 있을 뿐 '사고 당시의 실제 작업현황'을 알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지 않다.

8. 결어

대상판결은 초지일관하여 산업재해와 산업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논리적으로도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하는 잘못된 전제로 삼성중공업 및 그 관리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로 인해 결국 책임은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판결은 매우 부당하다.

태그:#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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