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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선도산 기슭에 위치한 진흥왕릉 모습
 경주 선도산 기슭에 위치한 진흥왕릉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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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선도산 기슭에 위치한 진지왕릉,헌안왕릉,문성왕릉의 모습
 경주 선도산 기슭에 위치한 진지왕릉,헌안왕릉,문성왕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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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주변 전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한편으로는 동서남북 어디를 가나 조금만 움직이면 문화재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경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경주 전역이 노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7일 오후, 이런 문화재들이 즐비한 선도산 기슭으로 발길을 옮겨 보았다. 선도산 기슭에는 국보 제25호인 태종무열왕릉비가 있으며 바로 옆에는 무열왕릉이 위치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에 10여 기가 넘는 주요 문화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선도산 기슭이다.

선도산 기슭에 있는 서악동 삼층석탑(관련기사 : http://omn.kr/1azei)과 진흥, 진지, 헌안, 문성왕릉이 요즘 핫하게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에 활짝 만개한 작약과 가을에 피는 구절초 때문이다. 이런 꽃길과 꽃밭 조성으로 작년에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를 찾아왔다. 문화재돌봄사업단 등 민간주도로 이룬 성공 사례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지역이다.

선도산 기슭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자연히 이 부근에 있는 진흥, 진지, 헌안, 문성 왕릉이 알려지게 됐다. 그전에는 여기에 이런 문화재들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악동 삼층석탑 주위 꽃밭을 거닐다 서쪽으로 조금 발길을 옮기면 맨 위에서부터 왕릉이 보인다.

선도산 기슭에 자리잡은 진흥왕릉, 진지왕릉

맨 위가 사적 제177호로 지정된 진흥왕릉이다. 진흥왕은 안으로는 화랑제도를 마련하고 <국사>를 편찬했으며, 불교를 장려해 국력을 튼튼히 하였다. 밖으로는 가야를 병합하고, 한강유역에 한산주를 두는 등 영토를 크게 넓혔다.

왕은 새로 개척한 영토를 수시로 순시하면서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의 순수비를 세웠다. 또한 화랑제도를 개편해 인재를 양성하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진흥왕릉 바로 아래에는 사적 제517호로 지정된 진지왕릉이 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비는 지도부인(知道夫人)이다. 주요 업적으로는 거칠부(居柒夫)를 상대등으로 삼았으며, 부왕의 뜻을 받들어 성을 쌓고 백제군을 격퇴했다. 중국 진(陳) 나라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맺었다.

신무왕의 동생 헌안왕릉,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릉

진지왕릉을 기준으로 바로 서남쪽에 사적 제179호인 헌안왕릉이 위치해 있다. 헌안왕은 신무왕의 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었다. 저수지를 수리해 흉년에 대비하게 하는 등 농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선도산 기슭 작약꽃이 활짝 핀 사이로 헌안왕릉과 문성왕릉의 모습이 보인다.
 선도산 기슭 작약꽃이 활짝 핀 사이로 헌안왕릉과 문성왕릉의 모습이 보인다.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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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안왕릉 바로 옆에는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활약했던 황정의 묘가 있다. 그리고 서악동 삼층석탑 아래에 황정의 효와 덕을 기리는 도봉서당도 자리하고 있다. 고분군과 함께 한 번쯤 들러 보길 권한다.

헌안왕릉 바로 동쪽에는 사적 제518호로 지정된 문성왕릉이 있다. 문성왕은 신무왕의 아들로 신라 쇠퇴기에 재위해 나라를 통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왕이다. 재위 중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했다. 그리고 혈구진을 설치해 지방 세력의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임해전을 크게 보수했다.

이런 신라 왕들의 업적에 비해 직접 여기를 올라가서 보면 왕릉의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왕릉의 크기나 모습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종무열왕의 모습을 보고 여기에 오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과연 위에 있는 진흥, 진지, 헌안, 문성왕릉의 무덤이 맞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왜냐하면 여기 4기의 왕릉 주위에 선도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도동 고분군은 왕릉 동쪽으로 10여 기가 넘은 똑같은 무덤이 있어 더더욱 그렇다. 아마 여기 선도동 고분군은 그때 당시 신라 왕족들의 무덤이 아닌가 추측한다.
  
 발굴조사를 하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는 무열왕릉 위쪽 서악동 고분군 모습
 발굴조사를 하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는 무열왕릉 위쪽 서악동 고분군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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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 발굴조사가 되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 태종무열왕릉 위쪽 4기의 고분군에 자연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무열왕릉을 지나면 바로 위쪽에 4기의 거대한 고분군이 일렬로 자리하고 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서악동고분군이라 부른다. 이 4기의 서악동 고분군 중 2기는 진흥, 진지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천년고도 경주는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는 곳이 많다. 정확히 알고 있는 무덤은 몇 곳 밖에 안 된다. 바로 국보 제25호 태종무열왕릉비 이수 한가운데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아들 김인문이 쓴 글자가 있어 왕릉의 주인이 밝혀진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악동 고분군 4기의 거대한 무덤도 하루빨리 발굴조사를 하여 누구의 무덤인지 정확히 밝혀 우리들의 궁금증이 해소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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