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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연구실에서 한국사회의 중독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신성만교수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국사회의 중독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신성만교수
ⓒ 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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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만 교수는 2019 춘계학술대회를 주최한 한국중독심리학회 학회장이며 한동대 상담심리학부 학부장과 학생처장을 겸임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재활을 공부하고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은 후 한국에 돌아와 중독과 재활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 교수를 학술대회가 열린 18일 오후 연구실에서 만나 우리나라 중독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신성만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2019년 춘계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중독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학회 회원들에게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최신의 정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박중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마약중독에 대해, 반대로 알코올중독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에 관해 서로 이해하고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이번 학술 대회에는 중독 분야 중 새로운 사회 흐름, 예를 들어 클럽에서 벌어지는 마약이나 비트코인 등을 다룬 측면이 강합니다."

- 거의 모든 사람이 '중독'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독심리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중독'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회 구성원이 중독에 빠지게 되면 국가적으로는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따라서 중독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과제입니다. 사회적 또는 문화적 특색에 따라 선호하는 마약의 종류나 마약을 먹는 행태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맞는 중독 관련 프로그램이나 국가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정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의료모델에 갇혀 있어서 선진국의 재활모델이 전무한 것에 대해 각성해야 합니다. 그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오늘 학술대회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같은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 많은 심리학자가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그 즐거움을 빼앗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대신 몰입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관계하고 소속되고 싶은 심리적 욕구가 있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마약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마약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따라서 관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전문가, 자조 집단의 치료 모델이 도입된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하므로 중독자들이 직업 재활을 통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회복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발률이 높은 상태이기에 '처벌 만능주의'로만 가면 안 됩니다."

- '버닝썬 사태'를 지켜보는 마음이 남다르실 텐데요. 전문가의 견해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약의 저변 확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외국은 치퍼(cheaper, 상습적 마약 사용자가 아닌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끔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마약 중독자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치퍼가 많이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거죠.

UN에서 정한 기준을 보면 인구 10만 명 당 마약류 사범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30명을 넘어서서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중독 취약성이 높아졌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스트레스(STRESS)가 많아지고 속도(SPEED)가 빨라지고 자극추구성(SENSATION SEEKING)이 많아진 것입니다. 보통 '3S'라고 말하며 처음에는 가벼운 중독을 찾다가 점점 더 강력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마약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마약을 한 번 접하게 되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극히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마약 중독과 함께 최근에 세간의 화제가 된 '조현병 환자들의 강제입원'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신질환 관리 시스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심리상담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심리학자나 상담 전문가들로 인정하고 그들이 정신질환자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합니다.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대상자와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전문가 집단 사이에 브리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인 조현병 환자들을 배제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기회에서 배제당한 조현병 환자들은 자연스레 공격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 스마트폰 중독이나 SNS 중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책 대신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한국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동기 부여가 필요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삶이 너무 스피드업하는 쪽으로만 가고 있는데 그나마 요즘은 조금씩 바뀌는 경향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확행이나 슬로우라이프를추구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꿔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학교시스템이나 커리큘럼에서도 성적만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정서나 사회관계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쟁하는 사회구조를 협업구조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해서 해야 합니다. 대학에서도 성적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한동대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졸업할 때까지 허용하는데요 점수가 낮다고 경영을 전공할 수 없는 일반 대학과는 아주 다르죠. 미국의 모든 대학은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경쟁자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기 맞춤형 교육이 중요하고, 자극을 추구하는 디지털 매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날로그적 장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살고 계신 포항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지진'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향후 포항에 트라우마센터도 건립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진이라는 이슈 때문에 국민들이 포항을 떠올릴 때 좋지 않은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학자로서 교수님께 앞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불확실성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그것은 자율감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는 것이죠. 일단 포항 지진의 원인이 밝혀졌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봅니다. 포항에 트라우마센터가 건립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로서 필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고, 상사 학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고 필요한 역할을 해내려고 합니다. 포항 지진사태 이후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흥해 체육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을 찾아가 그분들을 위로하고 트라우마 치료를 하는 작업을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최근 한국상담학회에 게재된 '포항 지진을 경험한 대학생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및 외상 후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논문을 통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에 PTG(외상 후 성장, Post traumatic Growth)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셨습니다. PTG를 가능케 한 가장 큰 요인이 '사회적 지지'라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한동대생들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아닌 다른 일반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지지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지진에 대비해야 할까요? 
"자살을 하고 싶을 때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떠오르면 자신을 제어하고 결국 실행을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이 해체되는 사회 분위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제어하고 조절하고 소속되는 느낌이 있을 때 자율의 필요가 생기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관계 자체가 중요한 거죠. 요즘 아이들은 혼자 크다 보니까 누군가와 관계하는 것에 대한 기쁨이나 편안함을 잘 모르고 자기 혼자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지지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충격을 받는 상황이 오게 되면 정신적인 와해를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결국 가족 안에서 지지가 되고 수용되는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고 평소에도 또래 친구들과 공동체 안에서 관계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한동대 학부생들을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에 유학 보내는 교수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 에피소드 그리고 외국 유학을 꿈꾸는 많은 대학생에게 '이것만은 꼭 빼놓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 조언해 줄 게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첫 학생을 유학 보낼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유학을 보내려고 했던 학생의 유능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내가 과연 미국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필요했거든요.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가이드 즉, 지도 교수와의 좋은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교수들도 보통 자신이 예전에 준비했던 방식대로 시키기 때문이죠. 

미국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니먼에게 "어떤 사람에게 지도받는 게 가장 좋으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했던 그의 답변이 생각납니다. '당신을 돌보고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 지도받는 게 가장 좋다.'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좋지만 기분 좋게 해주는 얘기만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죠. 때로는 본인이 고통스러워할 문제도 직면시켜 주고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그걸 잘 못 견디는 편입니다. 그런 교수님과의 관계는 일단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태그:##중독재활, ##마약중독, ##클럽마약, ##재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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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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