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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얼굴'은 근엄하고 보통 사람들이 가닿을 수 없는 아우라가 가득합니다. 대표적인 이미지로 석굴암의 부처님의 얼굴이  떠오르죠.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석굴암 부처님뿐 아닙니다. 보통의 사찰 부처님들은 황금빛 옷을 두르고, 웃을듯 말듯 미소 짓고 있습니다.  화려한 광채, 성스러운 공간과 속세의 엄격한 구분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이 열리고 있습니다(6월 13일까지). '나한'이란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수양이 뛰어나고, 구도에 정진하며, 일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나한의 얼굴은 푸근하고 정겨웠습니다. 오백나한은 부처님은 아니지만 종교적 형상물이라는 점에서 어떤 엄격함을 갖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잘생긴 얼굴, 좋은 옷, 구도에 이른 거룩한 분위기... 그러나 영월 창령상터에서 발견된 오백나한은 편하고 푸근한 얼굴의 이웃사람들이었습니다.
 
 깨달음의 미소를 띤 나한
 깨달음의 미소를 띤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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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한상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이 나한상은 유독 그 앞에 의자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전시기획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아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진리의 경지에 이른 미소가 보이고, 그 미소 앞에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지금 피로가 가득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미움이 가득하시다면 이 나한상 앞에 앉아보세요. 말없는 대화, 그 속에 얻는 평화가 있습니다. 700년 전 강원도사는 촌부가 걸어나와 투박한 손 내밀며 따뜻하게 맞아줄 것입니다. 
         
 수줍은 나한
 수줍은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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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처럼 수줍게 웃는 나한도 있습니다. 바위 뒤에 숨어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요? 영월창령사터 오백나한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을 돌 속에 새겼습니다.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은 영월주민 김병호씨가 나한상을 발견하면서 2001년과 2002년에 발굴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발굴자료와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창령사는 고려 때 세워져 조선 중기즈음 폐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시된 나한 하나 하나를 살펴보자니 이 조각을 새긴 석수가 궁금해졌습니다. 사람에 대한 풍부한 이해, 정감어린 시선, 유머, 그 모든 것을 가진 이라고 상상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무심히 슥슥 만들어간 선이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 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을 한 나한
 할머니의 얼굴을 한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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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할머니 같은 나한도 있었습니다. 가사를 쓴 저 모습이 친근하고 인자한 얼굴을 보면 "우리 할머니야"라고 바로 생각이 들것입니다. 어찌보면 편안하고 인자하지만 한편으론 오랜 고생으로 신산한 삶이 언뜻 보이기도 합니다. 저 얼굴은 가까운 친척에서, 시골 장터에서 만난 적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할머니의 얼굴이 보입니다. 
 
 선정에 든 나한
 선정에 든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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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깨달으니 미소가 절로. 저 얼굴 또한 어디서 만난듯한 얼굴이죠. 석공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얼굴을 빌려왔을 것입니다. 600여 년 전 사람들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다르지 않습니다. 오백나한이라지만, 철물점 아저씨, 김밥집 아저씨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진리는 가까이 있고, 어쩌면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구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600년전 석공도 그런 마음으로 평범한 사람을 그려넣었겠지요.
 
 단정히 맞잡은 손
 단정히 맞잡은 손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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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두 손입니다. 유독 섬세하고 단정하게 손실한 조각입니다. 참 아름다운 선, 아름다운 손입니다. 

"당신의 오늘은 평안하신가"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는 명상의 공간이다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는 명상의 공간이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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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침묵과 나한상이 압도적입니다.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엄숙한 종교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서 여러분이 조용히 멈추어 있으면 나한상 하나 하나가 "당신의 오늘은 평안하신가" 물어올 것입니다.

얽메임이 많고 욕심이 많으면 하루가 평안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의 절반은 바깥으로부터 오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 안으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남을 미워하다 보면, 그 미워하는 지점이 바로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5월, 부처님 오신 달이니, 5월 한달 만이라도 나의 욕망을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한달이 두달되고 두달이 석달되죠. 그리고 그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아주머니의 얼굴을 한 나한
 평범한 아주머니의 얼굴을 한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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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나한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 시달린 신산함이 묻어나는 나한상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6백년 전과 오늘이 다르지 않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사람, 고통이 끝나지 않는 사람, 괴로움을 잊을 수 없는 사람, 태어나면 누구나 고통의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을 만든 석공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웃는 사람, 고통에 든 사람, 도를 구한 사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나한의 얼굴로 새겼습니다. 
 
 보주를 든 나한
 보주를 든 나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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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 즉 귀한 구슬을 든 나한 입니다. 보주는 부처님의 사리(舍利)가 변해서 된 구슬이라고도 합니다. 불상에서 보면 대개 보주는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주를 두개나 들고 있습니다. 큰 깨달음과 복을 구한 나한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 보주를 얻었을까요?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진리를 구하는 힘은 올바름에 이르는 힘은 바로 자기 자신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스스로 구하고 질문하는 5월이면 좋겠습니다.   
 
 신안해저유물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도 꼭 가보세요.
 신안해저유물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도 꼭 가보세요.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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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마침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신안해저유물전도 열리고 있습니다. (흑요중심의 전시입니다.) 예전에 신안해저유물전을 놓치신 분들에게 좋은 기회입니다.
 
 토요일 오후 6시 박물관 휴게실. 모두가 빠져나간 고즈녁한 공간입니다.
 토요일 오후 6시 박물관 휴게실. 모두가 빠져나간 고즈녁한 공간입니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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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의 가장 좋은 시간은 토요일 6시 이후가 아닐까 합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가면 인파로 붐벼서 힘들지요. 토요일 4시즈음 들어가 7시까지 있었는데, 6시 이후 사람들이 싹 빠져나가더군요. 천천히 조용히 관람하고,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2층 휴게실을 나 혼자 차지하고 편안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를 보고 나면 늘 감동적이지만, 이번 오백나한전은 최근 전시 가운데 최고의 전시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놓치면 후회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꼭 가보세요. 한번 지나간 전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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