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기 시작한 'theterm' 작가의 <틴맘>
 5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기 시작한 "theterm" 작가의 <틴맘>
ⓒ 네이버 웹툰

관련사진보기

 
연재 시작부터 퇴출 운동이 벌어지는 등 논란을 낳았던 웹툰 <틴맘>에 대해 네이버 웹툰(네이버)이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2회차 연재일인 지난 11일 <틴맘>의 2, 3, 4화를 동시에 공개했지요. 유료 서비스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주 1회 연재 웹툰의 3회분 동시 공개는 전례 없던 일입니다. 과거 김성모 작가의 작품 <돌아온 럭키짱>이 설정 오류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2배의 분량을 선보였던 것이 그나마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이버는 태국에서 인기리에 연재되던 'theterm' 작가의 웹툰 <틴맘>을 수입해 2일부터 연재하고 있는데요. 1화 공개 이후 <틴맘>이 비판받은 대목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1) 먼저 당사자에겐 큰 문제일 수 있는 '청소년 임신'이라는 소재를 부적절하게 묘사했다는 점과 (2)그 과정에서 (소재와 어긋나게도) 가슴이나 다리를 부각시키면서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했다는 점이죠. 한국엔 이른 나이에 임신했을 때 여성에게 쏟아지는 부정적 시선, 임신 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법적, 도덕적 책임 등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자와 같은 요소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현실을 강화할 수 있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웠죠.

위와 같은 이유로 연재 자체의 정당성 논란을 겪고 있는 <틴맘>이 <럭키짱> 때와 같이 '사과'의 의미로 추가 분량을 공개한 것은 아닐 겁니다. 네이버는 1화 공개 직후 문제가 된 연출을 수정하고, 하단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표현 등에 거듭 유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이것이 성적 대상화 관련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였다면, 이번 동시 공개는 독자들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틴맘>이 '소재를 부적절하게 다룬다'는 지적을 반박한 것에 가깝습니다. 앞서 네이버는 <틴맘>에 항의하는 독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주인공의 주체적인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메시지가 충분히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혼자 책임져야..." 그것이 정말 '주체적인 선택'일까
 
<틴맘> 3화의 한 장면.
 <틴맘> 3화의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틴맘>의 3~4화에선 네이버가 언급한 '주체적인 고민과 이야기'를 암시하는 내용이 드러났습니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 '제인'은 주인공 '하늘'에게 임신이 "(여성과 남성) 둘이 같이 해결해야"하는 문제이며 "너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하늘'은 고마워하면서도 혼자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자신의 여러 감정과 고민에 따른 "선택"임을 어필하지요. '하늘'은 1화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놀랍도록 차분히 받아들이며 이것이 자기 혼자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는 <틴맘>이 임신이라는 소재를 부적절하게 다룬다는 지적의 주된 근거였지요. 새로 공개된 내용은 1화에서 지적받았던 내용들이 결국 주인공의 '주체적인 고민과 선택'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동시 공개가 독자 항의에 대한 일종의 반박 효과를 가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반박'이 유효한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여성 개인이 임신을 알리기 두려워 도망칠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느껴 홀로 임신, 출산, 육아를 수행하는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비당사자가 그것을 쉽게 질타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그것을 '주체적인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원치 않은 임신,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 일어났을 때 여성이 마주치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사회적 조건들이 이미 그 상황에 개입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 '선택'의 이야기를 여성의 주체적 서사로 포장하는 것이 옳은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게 <틴맘> 논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과 함께 '여성이 마주치는 여러 사회적 조건들'이 이제 막 논의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아가 미성년자 임신을 둘러싼 현실의 문제를 간과한 채 이 소재를 단지 남성적 시선에서 '모에화'(의인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틴맘> 속 성적 대상화의 문제는 뒤늦게 수정 작업을 한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원고의 일부 수정이 원작의 의도까지 지울 수는 없으니까요. 지우고 싶었다면, 연재 이전부터 성적 대상화 장면을 전면 수정하는 수준의 노력은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문제'로 인식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작가의 자유도를 적극적으로 침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문제적인 작품을 국내 1위 웹툰 플랫폼에 수입해 오는 것이 옳았냐, 가져오기로 결정했다면 문제가 될 부분을 그대로 안고 오는 것이 옳았느냐 묻는 겁니다. 네이버는 이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그때의 논란을 수습하고 소규모로 반박하려는 노력만 보일 뿐이지요.

그러다보니 작가가 SNS에 미성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야짤"을 공유해 왔다거나, 원작이 인기리에 연재됐던 태국 현지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는 등 추가적인 지적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도 없게 됐습니다.

왜 네이버는 '혐오 콘텐츠'를 방치하는가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하여 문제가 된 <복학왕> 284화의 한 장면.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하여 문제가 된 <복학왕> 284화의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관련사진보기

 
이건 <틴맘>이라는 한 작품과 작가의 문제보다도 네이버 웹툰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능력이나 의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틴맘> 논란이 일은 시기에 네이버 웹툰에선 <복학왕> 논란도 일었습니다. 수요웹툰 1위의 인기작 <복학왕>에서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하는 내용이 나왔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미 지적했듯 해당 내용은 논쟁을 떠나 이미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작가 '기안84' 본인이 언급한 대로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성별/장애/특정직업군 등 캐릭터 묘사에 있어 많은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복학왕> 141화의 여성혐오 논란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죠. 기안84만의 일은 아닙니다. <복학왕>과 같은 수준의 인기작들인 <여신강림>, <외모지상주의> 등에서도 비슷한 논란은 있었습니다. <틴맘> 이전에 여성혐오적 내용, 여성 대상화 문제로 연재중지청원까지 올라왔던 <뷰티풀 군바리>도 있었지요.

이상의 작품들엔 때때로 원고의 일부 수정이나 작가의 해명 등이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틴맘> 사태로 다시금 알 수 있듯, 문제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반복적으로 플랫폼에 들여오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작품의 기본 기조를 피드백하지 못하고, 심지어 삭제와 수정이 따를만한 장면들을 사전 검수하지 못하는 네이버의 시스템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스템을 구축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의지가 없는 것이겠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시대라는 점을, '웹툰 콘텐츠 시장'의 선두주자인 네이버는 모른 척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트레이싱'보다 잡아내기 쉬운 문제
 
<틴맘>과 유사하게 여성혐오적 내용과 여성 대상화 문제로 연재중지청원이 올라왔던 웹툰 <뷰티풀 군바리>
 <틴맘>과 유사하게 여성혐오적 내용과 여성 대상화 문제로 연재중지청원이 올라왔던 웹툰 <뷰티풀 군바리>
ⓒ 온라인 청원 사이트 아바즈 캡처

관련사진보기

 

개인적으로 <틴맘> 사태를 지켜보며 가장 생각났던 작품은 <뷰티풀 군바리>가 아니라 앞서 반 농담 삼아 언급한 <돌아온 럭키짱>이었습니다. 엉뚱한 전개나 대사를 트레이드마크 삼아 네이버에 입성한 김성모 작가는 바로 그 이미지로 인기를 끌며 여러 논란에도 불구 연재를 지속할 수 있었는데요.

그의 '엉뚱함'은 이후 주인공 '강건마'의 아버지 이름을 '강간마'로 짓는다든지, 여성 캐릭터 '유가인'의 생리혈을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든지 하는 파국적인 수준으로까지 나아갔었죠. 우습게도 작가의 기행이 멈춘 것은 차기작 <고교생활기록부>의 트레이싱(표절) 문제가 밝혀지면서였습니다.

저작권 침해라는 문제가 걸린 '트레이싱'의 경우 사전에 잡아내기 무척 힘든 문제에 속합니다만, 네이버는 최근 <고교생활기록부>를 비롯해 트레이싱 문제가 지적된 타 작품 <대가리>에 대해서도 연재중지 조치를 취하며 문제를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트레이싱보다 더 잡아내기 쉽고 연재중지보다 더 다양한 해결책이 있는 다른 문제도 있지요. 이 문제에 대해 네이버는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의지는 갖추고 있길 바랍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태그:#틴맘, #네이버, #웹툰, #혐오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