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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구호외치는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각 당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23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비상의원총회를 소집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피켓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규탄 구호외치는 황교안-나경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각 당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지난 4월 23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비상의원총회를 소집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피켓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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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친일파들 손에 똑똑한 사람들이 죄다 죽음을 당해서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얼마 전 TV를 통해 '동물 국회'의 모습을 보시더니 팔순을 훌쩍 넘긴 노모가 이렇게 일갈하셨다. 선거 때마다 해묵은 지역 갈등이 도지고, 정치인들이 온갖 망언을 일삼으며 갈등을 부추길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탄식하시곤 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그때'란 해방 직후다.

어머니께선 전남 순천과 벌교 사이 별량이라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열 살 무렵 해방을 맞았고, 연이어 터진 여순사건과 6.25 전쟁을 몸소 겪으셨다. 특히 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되는 여순사건은 지금까지도 당신의 가슴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때 죽지 않고 산 것을 지금도 천행으로 여기신다.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당시의 기억은 마치 엊그제 일처럼 또렷하다고 했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기세등등하던 자들이 하루아침에 초라하게 뒤꽁무니 빼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안쓰럽게 보였단다. 면서기를 하던 친척 한 분도 한참을 전전긍긍하며 쥐 죽은 듯 숨어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새로운 완장을 차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당신의 표현을 빌자면, 그때 '일본놈'의 세상에서 이 땅의 주인이 '미국놈'으로 바뀌었다는 걸 직감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만 달라졌을 뿐 '일본놈'이든 '미국놈'이든 그들이 백안시하며 내치려고 했던 대상은 똑같은 사람들이었단다.

그 와중에 제주 4.3이 터졌고, 연이어 여순사건이 일어나면서 당신이 살던 조용한 고향 마을에도 피바람이 몰아쳤다고 한다. '반란군' 편에 서든, '진압군' 편에 서든,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자택일을 강요받으면서 마을 전체가 풍비박산이 됐다고 애통해하셨다. 하지만 이는 친일파들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로 작용했다.

어머니께선 일제강점기 당시 글깨나 읽었던 지식인들은 도회지든 시골이든 대개가 공산주의자였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터라 공산주의가 뭔지 알 길 없었지만, 도회지에 나가 공부한 똑똑한 젊은이들이 옳다고 하니 옳은가보다 하고 여겼단다. 기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가 그들이었다.

해방이 되고 일제는 항복했지만, 일제를 축출한 미군정에게도 그들은 여전히 위험한 존재였다. 일제강점기 누구보다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미군정 시기 느닷없이 '빨갱이'로 명명되며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크게 보면 미소 냉전의 산물이지만, 내부로 시야를 좁히면 친일파들의 약삭빠른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친일파보다 백 배 천 배 나쁜 놈들이 바로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즈음이었다고 한다. 친일파가 득세하자, 조국 독립을 위한 수단이었던 공산주의는 정작 해방이 되고나서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옥죄는 천형으로 돌변했다. 얄궂게도,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던 것이다.

당신의 고향 마을에도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거나, 친일파가 위세를 부리는 꼴을 보기 싫어 고향을 등진 채 월북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에 의해 조롱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극도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어머니께선 그때 이미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됐다고 단언하셨다.
 
황교안 "좌파독재 막아내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집회에 참석해 국회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강행처리를 규탄하고 있다.
▲ 황교안 "좌파독재 막아내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집회에 참석해 국회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강행처리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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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비정상'인가

갑자기 어머니의 장탄식을 떠올린 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최근 쏟아낸 발언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민생투쟁 대장정' 자리에서 자유한국당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세워 온 사람들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 현 정부를 좌파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을 거론하고, 좌파는 정상적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조롱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좌파는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 없다"? 황교안 대표가 할 소리인가).

주지하다시피,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은 80년대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이후 그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호불호라면 몰라도, 대학 시절 그의 헌신은 누구도 폄훼할 순 없다. 그는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할 줄 알았던 가슴 뜨거운 청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정상적으로 일해 본 적이 없다고,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나무라는 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명예를 짓밟고 존엄을 훼손하는 짓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에 대해 부정하는 행태다. 더욱이 좌파를 '돈벌이도 못하고 세금을 축내는' 사람들인 양 사실을 왜곡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고 노회찬 의원이 대학 졸업 후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며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 때도, 그는 공안 검사가 되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임종석과 노회찬이 학력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사용할 때, 황교안은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며 꽃길만 걸어왔다. 가히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삶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의 시각에선 저들의 치열한 삶은 '돈벌이도 못하는' 비루하고 가엾은 인생처럼 여겨진 것일까.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검사가 되고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고 야당의 차기 유력 대선후보 자리까지 오른 그에게 저들의 삶은 그저 '치기어린 바보짓'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로선 상상도 못할 삶이었으니 '비정상'일 수 밖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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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순식간에 '비정상'으로 단정하고, 그들을 잡아다 가두고 고문을 일삼은 공안 검사의 삶을 감히 '정상'이라 말하는 그의 배짱이 놀랍다. 그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가 이만큼 자유롭게 사는 것은 과거 그들의 헌신 덕분이다.

그런 그들의 삶을 우러르고 존중하지는 못할망정 조롱하고 폄훼하는 건 정치지도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명색이 제1야당의 대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현 정부를 좌파로 낙인찍고,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색깔론을 제기하는 건,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예나 지금이나 '종북 좌파' 말고 그들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단어는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바야흐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두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공안 검사가 버젓이 무능하다며 조롱하는 세태다. 그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자유한국당이 세워 온 것 맞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득권을 누려왔고, 권력을 탐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처단해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라가 바로 '가치관이 물구나무 선' 대한민국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한 '망언 3인방'을 징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지지자들 중에 5.18을 '북한군이 사주한 폭동'이라고 믿는 이들이 존재하는데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그 정도의 발언으로 징계를 하는 건 지나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망언으로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과 광주 시민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어머니께서 자식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씀이 있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 그런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눈치껏 살아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 정의를 외치며 나서는 사람은 모두 무사하지 못했다는 당신의 모진 경험을 전하려는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되레 독립운동가가 청산 당한 통한의 역사를 몸으로 겪은 어머니께선 안타깝게도 그렇게 교훈 삼은 것이다. 황교안이 임종석을 조롱하는 참담한 현실에서, 노모가 자식들에게 일러준 처세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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