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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진 작가의 그림조각 '모델2(Model 2)'
 이혁진 작가의 그림조각 "모델2(Model 2)"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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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종일 차갑고 시린 공기를 가르며 여기저기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한 탓에 피곤이 어둠처럼 온몸을 덮었다.

한 갤러리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 조각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인 조각상이 건네는 말이 귀에 들리고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검고 가냘프고 매끄러운 몸매에 길고 화려한 색채의 드레스를 걸친 채 황홀하고 자유로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도톰하게 매혹적인 입술, 가늘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은 우수에 찬 듯 몽환적이었고, 웃지도 울지도 않는 모호한 표정은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듯 보였다.

갤러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까닭은 그 작품에서 그날의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일 테다. 겉은 그럴싸하게 치장했으나 속으로는 방황하고 있는 나를. 그런 민낯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헛된 마음을.

얼마 전 우연히 그 작품 앞에 다시 섰다. 3년 만이었다. 만나야 할 인연은 세월을 굽이돌아도 만난다. 이번에는 작품을 제작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도 덤으로 찾아왔다.

지난 4일 경기 이천시 갤러리 두윤에서 그림조각가 이혁진(49)을 만났다. 그가 참여한 '한집 한그림 걸기전'(4월 26일~5월 12일)이 진행 중이었다. 다음 달 열리는 '이혁진 그림조각 초대전'(6월 4일~7월 3일, 여수미술관) 또한 앞두고 있어서 분주한 듯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날 작업을 하다 곧장 이천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회화도 조소도 아닌 '그림조각'  
 
 지난 4일 '한집 한그림 걸기전'이 진행 중인 '갤러리두윤'에서 이혁진 작가를 만났다. 이혁진 작가는 10년째 그림조각이라는 새로운 독립미술장르를 구축해오고 있다.
 지난 4일 "한집 한그림 걸기전"이 진행 중인 "갤러리두윤"에서 이혁진 작가를 만났다. 이혁진 작가는 10년째 그림조각이라는 새로운 독립미술장르를 구축해오고 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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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작가에게 작품은 감정의 자화상이다. 작가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감정과 욕망, 결핍과 꿈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기능인으로서 가면(페르소나)을 벗고 작가 본연의 감정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그는 '나를 꿈꾸다', '꿈·욕망 그리고 나', '욕망의 도가니' 등 그림조각 개인전을 18회 열었고, 국·내외 단체전 및 아트페어에 150여 회 참가하는 등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렇게 10년째 '그림조각'이라는 장르를 구축해 오고 있다.

그림조각은 이혁진 작가가 그림과 조각에 철학과 인문학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독립미술장르다. 미술과 조형의 본질적 기법에 충실하되 하나의 작품에 그림(평면작업)과 조각(입체작업)의 독립 양식을 모두 살리고 질료(레진, 아크릴 등)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새로운 미술세계를 창조하는 지난한 여정이다.

그는 중학생 때 우연히 미술부에 들어갔다. 미술대회에 나가는 등 친구들과 즐겁게 그림을 그리며 중학교 3년을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그림으로 인한 추억이 많았다. 그림으로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해 조각을 공부했다. 적록색약(빨간색과 녹색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경우 구분 능력이 떨어짐)이 있어 회화과 진학에 제한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과학, 미술 관련 대학에서는 색약이면 입학에 제한을 뒀다. 색깔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조각은 그가 회화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는 조각이나 회화 어느 장르든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 다닐 때 친구들에 비해 인물을 잘 그리거나 잘 만들지 못했어요. 스스로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어렵더군요. 때로 거부감마저 들었고요. 힘들었죠. 이십대에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래서였는지 자꾸 작업에 대한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작업을 하고 싶은 열망은 커져 가는데 현실은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갔죠. 그러다보니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직 이루지 못한 혹은 이루고 싶은 꿈으로 이어지곤 했고요."


그의 삶은 결핍,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가득했다. 행복한 순간은 짧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길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작가는 혼자 회화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더 열심히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짬짬이 선배 작업실에 들러 작업도 도왔다. 그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작업에 대한 목마름을 달랬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 부족한 것을 채워갔다.

후배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혁진 작가의 그림조각 'The moment'
 이혁진 작가의 그림조각 "The moment"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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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기업 광고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조직과 사회의 틀 속에서 작가는 세상과 타인에게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았다.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때로 성취감을 맛볼 때도 있었으나, 현실은 작가가 꿈꾸는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면 치열한 경쟁의 바다로 달려갔다. 한 가정의 가장, 아버지, 직원으로서 기능적인 역할과 책임을 감내했지만, 점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방향과 목적을 잡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진정한 나는 없었어요. 삶의 가치와 의미도 찾을 수 없었죠. 꿈과 멀어지고 있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렸지요. 그 와중에도 저한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 화두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내한테 고백했어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고요. 단 한 번뿐인 귀한 인생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고요."

아내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예술가와 전업작가의 세계를 알기에 염려도 했지만 그가 지금이라도 원하는 길을 가도록 도왔다.

"아내는 늘 미안하고 고마운 존재죠. 많은 작가의 삶이 그러하듯 전업 작가의 삶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거든요. 작가로서 제 마음은 행복한데 현실 생활은 녹록하지 않고요. 그것을 이제는 숙명 혹은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요. 그럼에도 꿈을 꿉니다. 변함없이요. 언젠가 제 아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작가의 아내로 살면서 외로웠을 거예요."

전업작가가 미술작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현실은 슬프고 힘겹다. 어느 순간에는 좌절하고 절망에 함몰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끊임없는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도 필요하다.

"후배 작가들에게 뭐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집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예술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잖아요. 그럼에도 후배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견뎌야 한다'입니다. 견디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다보면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일상에서 즐기고 소장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작가들은 더 멋진 작품을 만들 테고요. 문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방향 설정이 투명해지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혁진 작가는 초심을 꿈꾸고 소망한다. 늘 욕망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작가 본연의 자아를 들여다본다. 꿈을 꾸고 그 모든 것을 작품에 녹여 예술적으로 승화한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말을 건넨다. 산다는 건 깊은 어둠과, 그 옆에서 환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꿈과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작가의 작품은 곧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내면 저 깊숙한 곳에서 출렁이고 있는 감정의 자화상이다. 앞으로 그가 표현해나갈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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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