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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을 만난 지 오늘로 6일째. 엉덩이 주사바늘 자국 5개째. 통증 없고 가려움 없고 힘든 거 전혀 없는데, 손 까딱 말고 누워만 있으란다. 일주일은 무조건. 의사도 약사도 엄청 강하게 말하니 누워 있긴 있는데 할 짓이 아니다.

일단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팔이 아파서 책도 5분 이상 못 들고 있겠고, 생각도 너무 하니 멍해진다. 보고 싶던, 미뤄둔 영화도 연달아 보는 게 어렵다. 천장 벽지는 단색이라 셀 수 있는 무늬도 없다. 결국 핸드폰을 붙들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소외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일 뿐이다.

문득 3년째 요양병원에 있는 울 할매가 떠올랐다. 할매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기 싫어서 5인실을 고집했다. 따닥따닥 붙은 베드는 오른쪽으로 3개, 왼쪽으로 2개가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 중간베드가 울 할매 집이다.

할매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
 
 젊은 시절 사는 게 바빠,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할매는 60대에 허리가 굽어버렸다.
 젊은 시절 사는 게 바빠,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할매는 60대에 허리가 굽어버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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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사는 게 바빠,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할매는 60대에 허리가 굽어버렸다. 난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로 시작하는 노래가 싫었다. 울 할매에게 굽은 허리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손주 여덟이 결혼을 할 동안 굽은 허리 때문에 바닥에 끌리는 한복 차림을 남들에게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할머니는 식장을 찾지 않았다. 오랜 시간 굽은 허리는 다리 통증을 가져왔고 더 이상 일반 병원에서는 그 어떤 치료도 무의미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요양병원은 할매가 잠시라도 통증 없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입원 초기에는 옥상정원에 산책도 가고, 면회를 가는 가족들과 좁은 병실이 아닌 넓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통증은 심해져 갔고 움직이는 반경은 좁아만 갔다. 이제 할매가 당신 의지로 침대를 벗어나는 유일한 활동은 병실 안 화장실에 가는 것뿐이다. 성인 걸음으로 1초면 되는 그 거리를 난간들을 잡고 한 발 한 발 온 에너지를 쏟아야만 가능한 도전이 되어버렸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이 울리면 할매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했다. 화장대 앞 작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불경을 읽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을 쫙 바르고 한 올 한 올 빠트리지 않고 모아 올려 핀으로 고정하면 할매의 쪽진 머리는 완성되었다.

젊은 시절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 숱을 치고 팔았다는 할매는, 이제는 다 빠져버려 힘을 잃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칼에 속상해했다. 내가 사 드린 작은 핀들을 아무리 꽂아도 머리칼들은 할매의 마음은 나 몰라라 삐죽 삐죽 나와 버렸다.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할매는 머리를 싹둑 잘랐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여러 명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할매의 긴 머리는 민폐였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건 할매가 살며 지킨 또 다른 자존심이었다. 할매는 90년간 지켜온 단정함의 자존심을 버리고 민폐를 끼치지 않는 자존심을 택했다.

할매가 머리를 자르던 날, 그 모습을 지켜봤다는 막내 고모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일을 전해들은 나도 눈물이 났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만지던 할매가 생각났고, 내가 사다 준 동백기름을 좋아하던 할매도 생각났다.

일주일에 한 번 병실 밖을 벗어나는 외출 아닌 외출은 목욕날이다. 목욕은 정해진 날에 정해진 순서대로 루틴하게 진행된다. 6층에 있는 할매는 목욕을 하러 휠체어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있는 목욕실까지 간다. 빠른 목욕을 위해 미리 옷은 홀딱 벗고 가운을 걸치고 휠체어에 오른다.

한번은 면회를 갔는데 하필 그날이 목욕날이었다. 활짝 열린 병실 안 할매가 옷을 막 입으려는 그 순간 내가 들어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요양 보호사는 급하게 커튼을 쳤다. 열린 병실 문 밖으론 옆 방 할아버지들도 지나다니고 의사들도 지나다니고 문병객들도 지나다닌다. 너무 속상했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할매에게 소홀히 할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더 속상했던 건 아무렇지 않다는 할매의 태도였다. 할매가 울 할매가 아닌 것 같아 슬펐다. 이곳에서 할매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할머니를 지켜드릴 수 없어서 너무 죄송했다.

할매의 방이 그립다는 할매
 
 8층에 있는 할매는 목욕을 하러 휠체어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있는 목욕실까지 간다.
 8층에 있는 할매는 목욕을 하러 휠체어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에 있는 목욕실까지 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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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시내도로를 달리면 적어도 서너 곳의 요양병원을 지난다. 요양을 해야 하는 병원인데 왜 복잡한 시내에 있는 거지? 병원 안 환경이 엄청 좋은가보다. 십 수 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넓은 부지에 경관 좋은 산책로를 갖추고 몸도 마음도 편히 쉴 수 있는 교외의 큰 요양병원이 얼마나 비싼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계신 곳은 교통이 좋은 시내에 위치해 있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콘크리트 건물들뿐이다. 차량 경적소리와 도시의 소음을 가려주는 건 텔레비전이다. 시내에 위치한 덕에 자식들은 수시로 할매를 찾아간다. 한 달에 90만 원. 오남매가 분담하기에 큰 금액이 아니다. 그것조차 미안하게 생각하는 할매는 자신의 연금으로 일부를 충당하며 미안함의 크기를 줄인다.

하루에도 몇 번 진통제를 맞아야 겨우 견딜 수 있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는 할매는 방이 그립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올리고 불경을 읽고 아침드라마를 보던 할매의 방을 그립다 했다. 사라지지 않는,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그 방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은 게 소원이라 했다. 이룰 수 없는 소원임을 안다고도 했다.

손을 꼭 붙잡고 "내가 이 몸뚱이로 여즉 살아서 손주사우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가 모르겠다. 빨리 죽어야는디. 것두 내 맘대로 안 되고" 눈물이 날까 아무 말도 못했다. 남편에 두 남매를 데리고 병실을 찾아도 길어야 30분, 멀리 산다는 핑계로 일 년에 두세 번이 고작인 손녀를 고생시킨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는 할매. 거칠고 거친 거죽만 남은 할매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꼬꼬마 현이(큰아이 애칭)는 왕할머니 방에 들어가길 좋아했다. 방에서 나올 때면 양 손에 꼭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두유, 양갱, 요거트, 사탕, 사과 한쪽, 비스킷 한 봉지 종류도 다양했다. 할매 방은 마술사의 검은 모자처럼 끊임없이 먹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꼬깃꼬깃 딱 두 번 접어 펼치면 정확히 4등분이 되는 만 원짜리가 손에 들려 있을 때도 있었다.

병실 밖을 나서는 내 손에는 요거트 네 개와 주스 두 병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갈 때마다 할머니 간식을 왜 받아 오냐며 핀잔을 주셨다. 할매가 할매인 순간, 할매가 할매일 수 있는 그 마음을 난 받아들고 나왔다.

작은 병실 가운데 베드 하나가 집인 할매.
90평생을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온 할매.
자식 다섯, 손주 열하나, 증손주 열여섯인 할매.

아프지 말라던, 절대 아프지 말라던 할매를 위해 이 병을 빨리 이겨내야겠다 각오한다. 할매를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각오한다. 다음에 할매를 만날 때는 꼭 안아드리고 "사랑한다" 말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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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 한살 먹어가다 보면 무언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무언가 되고 보니 멋있지가 않다. 이왕 사는거 멋지게 살다 가고 싶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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