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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 내가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운을 갖고 있다고 느낀 건 아마 이십 대 후반 즈음이었을 거다. 어떤 사람은 만나면 활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만나면 들떠 있던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집에 가고 싶어진다. '왜 그럴까? 그날 내 컨디션 때문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 그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기운 같은 건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운을 가진 사람일까?'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주제이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위즈덤하우스(2019)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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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제목이 강렬하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가는데, 표지뿐 아니라 책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그림들이 재미있다. 어쩜 이렇게 딱 들어맞게 표현했는지! 그렇다. 나도 저렇게 멘탈이 쪽쪽 빨리는 기분이 든 적이 많았다. 하지만 곧이어 자아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멘탈을 쪽쪽 빨아먹는 저 뱀파이어가 어쩌면 나일지도!   

저자 스테판 클레르제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의료 심리 센터에서 부모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데 앞장서며 자폐 아동과 부모를 위한 혁신적인 보육 시설을 설립했다. 의과학 분야 저널에 60여 편의 논문을 실은 전문의이며, 대중 심리서 저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사람의 기를 빨아 상대의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들을 가리켜 '멘탈 뱀파이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멘탈 뱀파이어와 그들의 숙주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는 멘탈 뱀파이어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의 기를 빨아먹는지, 그들의 그런 행동이 숙주가 되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피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멘탈 뱀파이어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피폐해진 나의 멘탈은 어떻게 복구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멘탈 뱀파이어는 특정하게 정해진 타입이 따로 없다. 소위 뼛속부터 이러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기회만 있으면 뱀파이어 본능이 작동해 주변 사람들의 기를 빠는 사람들이다. 한편, 특정 사건이나 시기에만 멘탈 뱀파이어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다. (23쪽)

고백하자면 서른 전의 나는 상대의 애정을 갈구하는 의존형 멘탈 뱀파이어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특정 시기에만 뱀파이어처럼 구는 유형이었던 듯하다. 나의 연애는 대체로 엉망이었다. 혼자 제대로 설 줄 모르고 상대에게 기대어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그 시절에 내가 그렇게 굴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인간관계에서 상실과 집착이 동시에 나의 목을 졸랐다. 매일같이 지겹도록 우는 소리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위로라도 해주려고 손을 내밀면 그 손이 나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덥석 잡고 놓지를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이십 대,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아도 항상 위로받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건강하고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멋지게 살아가는 그를 보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고, 안타까울 정도로 한심한 나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마주 보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마주 보는 일이.

좋은 기운을 나눠주는 성숙한 사람, 그리고 책과 글쓰기 덕분에 나도 혼자 굳건히 설 수 있었다. 사람은 혼자서도 잘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뱀파이어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혼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는 그게 책과 글쓰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예전에 나와 같은 뱀파이어들에게 시달리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직장동료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가족에게 기를 쪽쪽 빨리느라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멘탈 뱀파이어의 여러 가지 유형의 특징과 각 유형에 맞는 대처법을 배울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나를 기운 빠지게 만드는 피곤한 인간들에게 철벽을 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투덜이 뱀파이어 – 늘 화가 나 있고 만족하는 법이 없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이들은 분위기를 흐리며 철저하게 모든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 이런 부류의 멘탈 뱀파이어와는 얽히지 말자. 이런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고 위로해봐야 소용없다. 투덜이 멘탈 뱀파이어가 왜 투덜거리는지 생각하느니 이들의 어떤 면에서 당신이 거슬리는지 생각해보자. 유머 감각을 갖고 한발 물러나 이들을 연극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로 생각해보자. 물론, 이들의 동의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말자. 절대로 끌려다니지 말고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 (115쪽)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온갖 유형의 뱀파이어들의 행동 양상을 보면 웃음이 날 정도로 한심하기도 하고,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인간은 어떤 유형의 뱀파이어인가.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뱀파이어처럼 굴고 있지 않은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1. 주변 사람들이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가?
2. 살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3. 당신을 도우려는 사람이 정말로 드물다고 생각하는가?
4. 인생에서 장애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가?
5.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6. 주변 사람들이 당신보다 어렵게 산다고 생각하는가?
7. 배신을 당한 적이 많은가?
8. 당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예'라고 답하게 되는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모든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멘탈 뱀파이어가 될 확률이 높다. 모든 항목에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시기에 따라, 아주 가끔 멘탈 뱀파이어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266쪽)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멘탈 뱀파이어들의 심리와 그에 맞서 우리의 멘탈을 지키는 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 우리 사회에 이런 뱀파이어들이 끊임없이 존재하는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도와줘야 하는지는 사회학과 관련된 문제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그 부분에 대해 궁금해져 조만간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볼 참이다.

이렇게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되는 독서가 즐겁다. 혼자 있을 때 나는 이러고 논다. 다른 사람 피곤하게 하지 않고 혼자 재미있게 노는 나만의 방식이다. 할 말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기 전에 컴퓨터를 켜고 타닥타닥 키보드에 감정을 실어 하얗게 빈 화면에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꽤 괜찮지 않은가? 당신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고 노는지 궁금해진다. 잘 놀아야 건강해질 수 있다. 당신과 우리 모두.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 적당히 베풀고 제대로 존중받기 위한 관계의 심리학

스테판 클레르제 지음, 이주영 옮김,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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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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