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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 일기 품평을 학부모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올려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해당 교사는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굴하지 않고 교권 행사라는 이유로 공개해왔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이 받을 상처였다. 그 아이들은 계속 일기를 쓸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본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열과 성을 다해 그림일기를 썼다. 큼지막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두세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을 썼다. 그때는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있지도 않았다. 선생님에게 받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촉매제가 됐다.

2~3학년이 되면서 그림일기는 글만 있는 일기로 진화했다. 일과가 시간 순으로 나열된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중간에 생각이나 느낌을 담기도 했다. 그 일기장을 마지막으로 본 게 내가 스물다섯 쯤이었다. 그땐 왜 그 보물을 간직할 생각을 못했는지.

그 일기장에는 오늘의 잘한 일, 오늘의 반성, 내일의 할 일 등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일어난 시각과 잠든 시각을 적는 칸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일기상을 운영했는데, 뽑힌 일기는 반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기도 했었다. 그 시절의 일기는 칭찬과 반성,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판가름하는 잣대였다.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검사용 일기와 나만의 일기를 따로 썼다. 검사용 일기에는 그저 그런 하루의 삶을 기록했다. 나만의 일기장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 고민거리 등을 적었다. 그러다가 점차 학교에서 일기 검사가 사라지면서 웬일인지 나만의 일기도 같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나만의 일기가 지속됐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다시 일기를 쓰다
 
마흔하고도 몇 살을 더해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먼저 제일 멋진 노트를 샀고, 앞표지에 '○○○ 지음'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내 삶의 기록을 완성할 작정이다.
 마흔하고도 몇 살을 더해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먼저 제일 멋진 노트를 샀고, 앞표지에 "○○○ 지음"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내 삶의 기록을 완성할 작정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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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부터 에세이 쓰기 수업을 받고 있다. 처음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들었던 두려움은 '일기도 쓰지 않던 내가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였다. 수업을 받을수록 일기의 부재가 절실하게 아쉬웠다. 나의 과거를 나만의 시선으로 기록해 둔 자료가 계속 쌓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일기는 일종의 글쓰기이다. 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나를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나 고민거리를 누군가에게 전화로, 또는 커피숍에서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으면 조금은 풀린다. 하지만 뭔가 2% 아쉽다. 이를 글로 풀어놓으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자연적인 치유 과정이다.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지금 힘든 일들을 일기에 써내려 가면
일주일 후, 한 달 후, 일 년 후
이 일기를 볼 미래의 내가
나를 토닥거려 주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나한테
힘들다고 칭얼거리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는
일기를 쓰며 미래의 나한테 위로받습니다.
 
책 <결국 결말은 해피엔딩>에서 김이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목처럼 일기를 통하면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향할 것 같다.

어릴 때 읽었던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는 '키티'라는 일기장을 친구삼아 편지를 쓴다. 비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키티는 안네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친구뿐이랴. 그 힘든 기간 동안 버팀목이 되어 안네를 매일 치유해준다.

만약 안네의 부모님이 맞춤법 검사라는 명목으로 일기를 검사했다면 아마도 안네의 일기는 계속 쓰이지도,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안네는 그 누구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계속 일기를 써왔다. 그 결과 훌륭한 책이 탄생했다.

안네의 두려움을 짐작조차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키티'라는 존재가 마냥 부러웠다. 내 일기장에도 비슷한 이름을 지어줬었다. 다만 놀기에 바빴던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 현실의 친구들과 더 각별하게 지내고 말았다. 그렇게 내 일기는 사라졌다.

마흔하고도 몇 살을 더해야 하는 나이가 된 지금,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먼저 제일 멋진 노트를 샀고, 앞표지에 '○○○ 지음'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내 삶의 기록을 완성할 작정이다. 40대의 삶, 50대의 삶, 60대의 삶이 진행 중이다.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자랑으로, 때로는 푸념으로 '나만의 일기'를 부활시킬 것이다. 나를 치유해 줄 나만의 일기로.

결국 결말은 해피엔딩 - 미래의 나에게

김이현 지음, 지식인하우스(2018)


태그:#치유, #해피엔딩, #안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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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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