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앙로즈> 영화 포스터

<라비앙로즈> 영화 포스터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라비앙 로즈>는 에디트 피아프(마리옹 꼬띠아르)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비순차적으로 왔다 갔다 하며 그녀의 영광과 슬픔, 그리고 사랑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선 단 한 번,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는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귀를 붙잡고, 이내 마음을 움직인다. 거리의 가수에서 불멸의 아티스트로. 가수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지만 한명의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다. 

곡예사와 삼류 가수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사창가를 운영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영양실조로 몸은 허약했고, 심지어 결막염으로 수년간 눈이 멀기도 했다. 10대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돈이 궁할 때는 매춘을 해서 부족한 돈을 메웠다. 그녀는 자주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남자들은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열일곱에 낳은 아이는 뇌수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거친 삶, 그녀는 거기에 익숙했다. 작고 보잘것없는 그녀였으나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그녀가 주인공이었고, 그녀의 무대는 어디라도 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어디에도 무대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스무 살. 파리의 유명 카바레 '제르니'의 사장인 루이 르플레(제라르 드빠르디유)와의 만남은 그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루이는 그녀에게 '피아프'(참새라는 뜻으로 그녀의 작은 체구에 빗댄 예명이다)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자신의 카바레 가수로 데뷔시킨다. 이제야 무대다운 무대에 서게 된 에디트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그녀의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루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녀의 불량한 친구들이 의심을 받으면서 그녀의 커리어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작사가 레이몽 아소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녀는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프랑스를 넘어 미국에까지 진출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그녀의 인생에는 여러 남자가 있었지만 영화는 마르셀 세르당과의 연애만 담고 있다. (프랑스의 또 다른 전설적인 가수 이브 몽탕과의 사랑과 결혼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 체류 기간 동안 그녀는 복싱 챔피언인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르셀이겐 이미 아내와 자녀가 있었고, 그가 가정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녀도 알았지만 그녀는 마르셀을 가리켜 '인생의 남자',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유일한 남자라고까지 말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가수로서도 여자로서도 최정점에 오른 그녀의 행복은 마르셀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급속도로 추락하게 된다. 술과 마약으로 고통을 잊으려 하지만 고통은 잠시 마비될 뿐 그녀를 떠나지 않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만큼 건강이 악화된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녀를 지탱시켜 준 것은 바로 음악이다. 교통사고 후 갈비뼈가 으스러졌을 때에도 그녀는 무대에 섰고, 특유의 힘 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녀의 마지막 공연은 1962년 올림피아 공연장에서 열렸다. 걷는 것이 힘겨울 만큼 최악의 건강 상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이 곡은 내 인생이야!'하고 외친다.)를 부른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목소리도 예전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노래의 감동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공연이 있고 일 년 후, 에디트 피아프의 짧고도 강렬했던 삶은 프랑스 남부, 그라스에서 끝을 맺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47년의 찬란하고도 비극적이었던 삶을 두 시간으로 요약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 그녀 삶의 단편들을 엮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에디트 피아프라는 한 인간의 내면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보다 그녀가 겪었을 행복과 불행에 공감하게 되는데 영화를 가득 채우는 그녀의 노래와 에디트 피아프로 분한 마리옹 꼬띠아르의 놀라운 연기가 이 공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 

실존했던 누군가의 인생을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굉장한 도전일 것이다. 특히 그 누군가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스타라면 더더욱. 단지 외모와 말투를 따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 각인된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표현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거친 소녀, 무대 공포증으로 한껏 움츠러들었던 신인 시절을 거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가수로 성장한 에디트 피아프의 자신만만한 모습, 성숙해가는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또한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수줍은 미소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슬픔, 그리고 사랑을 잃고 무너지는 고통과 그 모든 것을 다 겪은 후에도 사랑을 예찬하고 노래하는 에디트 피아프를 감정의 과잉이나 모자람 없이 연기했다. 이 영화를 통해 마리옹 꼬띠아르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독식했으며 할리우드와 유럽을 오가며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연출가이기도 한 부모의 영향을 받았는지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 무대에 올랐고, 예술학교를 졸업 후 성인이 되고서는 tv와 영화를 오가며 단역, 조연할 것 없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간다. 뤽 베송이 제작한 <택시> 시리즈로 얼굴을 알리고,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 장 피에르 쥬네 감독의 <인게이지먼트>, 2006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어느 멋진 순간>까지 꽤 알찬 필모그래피를 채워가지만 작품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그리 강렬하지 못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라비앙 로즈>는 배우와 캐릭터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 완벽한 조합으로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전후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완전히 달라진다. 마이클 만, 크리스토퍼 놀란, 우디 알렌, 롭 마샬 등 할리우드 감독들과의 작업은 물론이고 자끄 오디아르, 다르덴 형제 등 유럽 거장들과의 작업까지. 그녀는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 속에서 완벽히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자신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증명하고 있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우리는 복직을 원하는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그녀를 보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신비로운 프랑스 여인이나 명품 브랜드 '디오르'의 뮤즈로서의 그녀를 보지 않는다.)

<라비앙 로즈> 중반부에 미국 공연 후, 식사하려는 에디트 피아프에게 독일의 전설적인 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다가가 고맙다고 인사하는 장면이 있다. 에디트의 노래 한 곡으로 파리에 다녀온 것 같다고 마를렌은 감동을 전한다. 겪어보지 않은 향수를 느끼고 뉴욕에서 파리를 여행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음악이 가지는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를 통해 우리가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간접체험한 것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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