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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촛불혁명의 승리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은 해였다면 올해 2019년은 3.1혁명(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서울 동작구를 '동작 민주올레'라는 이름으로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 있다. 탐방은 총 여섯 개 길(대방길, 노량진길, 흑석길, 신대방길, 상도길, 현충원길)로 나누어 진행하며, 코스별로 6~7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방길'과 '노량진길' '흑석길' '신대방길' '상도길'에 이어 이번에는 '현충원길'이다. - 기자 말

▶ 코스안내 : ①서울현충원 4.3길 – ②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길 – ③서울현충원 5월길 – ④서울현충원 친일파길 – ⑤서울현충원 전직대통령길 – ⑥서울현충원 평화·통일길
  
무후선열제단 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위쪽에는 무후선열제단이 있어 홍범도, 유관순, 김익상, 김규식, 조소앙, 박열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무후선열제단 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위쪽에는 무후선열제단이 있어 홍범도, 유관순, 김익상, 김규식, 조소앙, 박열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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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서울현충원에 독립운동가를 모시는 애국지사묘역이 조성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1955년 국군묘지로 출발한 서울현충원은 이때부터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동작동 국립묘지로 불리기 시작한다.

애국지사묘역의 조성은 한 면에서는 4.19혁명과 한일회담반대운동(1964~1965)의 성과이기도 했고, 다른 한 면에서는 5.16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온 국민의 굴욕적 한일회담반대운동을 호도하고 자신의 정통성 취약을 보완하기 위한 기만책이기도 했다.

애국지사묘역에는 조성이 시작될 무렵인 1964년 3월 철원애국단의 김재근(1894~1964)이 처음 안장됐고, 평민의병장 신돌석(1878~1908)과 '13도 창의 총대장'을 맡았던 의병장 이인영(1868~1909)에서부터 권동진, 이종일, 유여대, 이갑성 등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물론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신순호·박영준 부부에 이르기까지 214위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안장돼 있다. 애국지사묘역 바로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는 131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최근 영화 <암살>과 <밀정> <박열>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는가 하면,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현충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묘역을 찾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

영화 <암살>과 <밀정> <박열>의 주인공을 현충원에서 만나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의 역할 모델로 알려진 남자현과 권기옥의 묘도 애국지사묘역에 있다.

남자현(1872~1933)은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분으로 1925년 국내에 잠입해 당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1932년에는 일제의 만주침략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온 국제연맹조사단(단장 리튼 경)에 왼손 무명지 2절을 잘라 흰 천에 '朝鮮獨立願'(조선독립원)이라고 써서 자른 손가락과 함께 전달하는데, 이로 인해 최근에는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묘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는 영화 <암살>의 역할모델로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남자현 선생의 묘가 있다. 남자현 선생은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묘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는 영화 <암살>의 역할모델로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남자현 선생의 묘가 있다. 남자현 선생은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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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여학교 재학 중 3.1만세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권기옥(1903~1988)은 중국으로 망명해 '조선인 최초의 여자비행사'가 됐다. 비행기를 몰아 조선총독부와 일왕이 있는 궁성을 폭파하겠다는 열망으로 비행사가 된 인물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는 권기옥의 시동생이다. 권기옥이 1928년 중국 풍옥상 부대에서 만나 결혼한 이상정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과 유동열과 함께 신한민주혁명당을 결성해 중앙위원 겸 군사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였다.

신흥무관학교 마지막 졸업생으로 나오는 행동파 독립운동가 '속사포'의 인물상은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의 최수봉(1894~1921)과 이를 뒤에서 지원한 고인덕(1887~1926)을 합쳐놓은 모습이다. 밀양 출신의 고인덕은 비록 신흥무관학교 마지막 졸업생은 아니었지만, 1919년 11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의열단의 창단 멤버였다.

폭탄제조 전문가 '황덕삼'의 역할 모델은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의 배후이기도 했던 의열단의 이종암(1896~1930)이다. 이종암은 김원봉과 함께 프랑스 조계에 살던 김성근으로부터 폭탄제조기술을 배운 폭탄제조 전문가였다. 그는 스스로 의열투쟁에 직접 나선 행동파였다.

이들 최수봉과 고인덕, 이종암의 묘도 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묘역에 있다.

영화 <밀정>의 초반부에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호에 불상을 판매하려다 한 무리의 일경에 포위돼 총격전을 벌이던 중 발가락 하나만 남기고 숨지는 의열단원 김장옥의 역할 모델은 종로경찰서 폭파사건의 김상옥(1889~1923)이다.

김상옥은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이후 조선총독부 폭파를 준비하던 중 일제의 경찰과 헌병 400여 명의 추격을 받아 서울을 휘저으며 3시간여의 격전을 치르게 되는데, 효제동에서 마지막 남은 총알 한방으로 자결했다.

영화 <밀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유유히 조선총독부로 들어가는 학생의 역할 모델은 1921년 전기수리공으로 변장해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하고 유유히 빠져나온 김익상(1895~1941)이다.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을 누가 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해 초조해진 일제는 의심스러운 조선인은 무조건 잡아다 고문을 자행하는 등 허둥대지만, 김익상은 이미 중국으로 탈출한 상황이었다. 다만, 김익상이 폭탄을 투척한 조선총독부는 영화 <밀정>의 설정과 달리 남산 왜성대에 있던 건물이었다. 경복궁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26년에 준공됐다.

중국으로 탈출한 김익상은 이듬해 중국 상하이 세관부두에서 오성륜, 이종암과 함께 일본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하다 중국경찰에 잡혀 일경에 넘겨지고 만다. 사형을 언도받은 김익상은 이후 두차례에 걸쳐 무기징역과 20년형으로 감형되어 1941년 석방되는데, 고향에 돌아온 직후 일본인 형사에게 끌려간 이후 행방불명되고 만다.

김상옥과 김익상은 각각 애국지사묘역과 무후선열제단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 <박열>의 주인공 아나키스트 박열(1902~1974)도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는 박열뿐만 아니라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 정인보 등 6.25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열여섯 분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이들의 진묘는 북한의 애국열사릉과 재북인사묘역 등지에, 위패는 남한의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셈이다. 박열의 실제 묘도 북한의 재북인사묘역에 있다.

일제의 국사범이었던 박열은 해방과 동시에 석방되지 않고 22년 2개월만인 그해 10월에야 아키다 형무소(홋카이도)에서 석방된다. 석방 후 재일조선거류민단 초대 단장을 맡기도 한 박열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의 유해를 발굴해 고국으로 모셔오는 역할도 담당한다.

1949년 5월 영구 귀국해 서울에 머물던 박열은 한국전쟁 중 납북돼 조소앙, 안재홍 등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재북평동)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다 1974년 숨을 거둔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26년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박열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는 박열의 고향인 문경에 묻혔고, 2018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상옥, 이종암, 남정각, 유석현, 고인덕, 곽재기 등 현충원의 애국지사묘역이나 국가유공자묘역에는 많은 의열단원들이 안장돼 있다. 하지만 영화 <암살>과 <밀정>에 동시에 등장하는 의열단 단장 김원봉(1898~1958)은 현충원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해방정국에서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한 그는 이후 월북해 북한정권 수립과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숙청된 김원봉은 남과 북에서 동시에 버림받은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아있다.

남과 북에서 동시에 잊힌 존재, 광주학생운동의 최고 지도자 장재성

애국지사묘역의 조길룡(1909~1991)은 일제강점기 3.1혁명,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대중운동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이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광주농업학교 4학년생으로 동맹휴학을 주도했던 조길룡은 이후 체포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형이 확정해 옥살이를 한 것도 모자라 출옥 후 농민운동에 관여하다 1933년에 다시 체포, 전남노농협의회 사건으로 8개월의 감옥살이를 더 한다.

그런데 광주학생운동 당시 언론에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대구복심법원에서 가장 높은 형량인 징역 4년형을 언도받았던 광주학생운동의 최고 지도자 장재성(1908~1950)은 현충원에서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장재성은 4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이후에도 1939년 '적색교원 사건'으로 일경에 다시 체포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기도 하는 등 일제에 맞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기도 했다.
 
광주학생운동 재판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1930. 2. 15, 동아일보) 광주학생운동의 재판소식을 알리는 위 신문기사의 사진의 가운데 둥근 원 안 인물이 장재성이다.(왼편은 또 다른 주도인물 장석천이다.)
▲ 광주학생운동 재판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1930. 2. 15, 동아일보) 광주학생운동의 재판소식을 알리는 위 신문기사의 사진의 가운데 둥근 원 안 인물이 장재성이다.(왼편은 또 다른 주도인물 장석천이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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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재성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3.1절을 앞두고 백범 김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에 대한 대대적인 표창을 시작한 1962년 당시 최초 표창대상자 208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해방 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서훈을 취소한다고 발표해 최종 표창대상자 명단(205명)에서 제외되는 해프닝의 주인공이 된다(이때 박용만과 남형우는 일부에서 변절 의혹을 제기하여 수상 보류자로 분류돼 제외됐지만, 이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장재성은 해방정국에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조직부장, 광주청년동맹 의장,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 전남대표 등을 지낸다. 그는 분단에 반대해 세 차례에 걸쳐 남과 북을 오가다 1948년에 검거돼 징역 7년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그는 광주교도소 복역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법적 근거도 없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총살당하고 만다.

광주학생운동은 일제강점기 3대 대중운동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막상 그 광주학생운동의 최고지도자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분단조국의 아픈 현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김원봉, 장재성과 같이 일제강점기 내내 비타협적으로 일제에 맞서 싸운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을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일은 이들 덕분에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지 않을까 한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는 아직도 버젓이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 앞 파묘 캠페인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아들 김세걸(오른쪽)은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와 그 집안의 독립유공자 사기사건을 밝혀낸 인물이다.(왼쪽은 필자) 하지만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는 지금도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그대로 있다.
▲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 앞 파묘 캠페인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아들 김세걸(오른쪽)은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와 그 집안의 독립유공자 사기사건을 밝혀낸 인물이다.(왼쪽은 필자) 하지만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는 지금도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그대로 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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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7일 국가보훈처는 국립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묻혀 있는 김정수를 비롯한 가짜 독립운동가 4명(김정수·김낙용·김병식·김관보)의 서훈을 취소했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는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버젓이 버티고 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서훈이 취소된 사실조차 표시돼 있지 않아 자칫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김정수의 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무려 4억5000만 원의 보훈급여를 부당하게 타낸 김정수 집안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의 장묘문화나 관련 법률에 따를 때 강제 이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09년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1980년 사망한 김정수는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 행세를 하면서 1968년 국가를 상대로 일가족 5명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가족사기단'의 핵심인물이다.

원래는 김정수의 사촌인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묻혀 있었으나,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1914~1961)의 아들 김세걸이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 하얼빈에서 나타나면서 1998년에 파묘되고, 그 자리에는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이 안장돼 있다.

만주 국민부 박창철 대장 휘하 특무정사로 독립운동을 하던 김진성은 1934년 밀정 정남해 체포를 위해 국내로 잠입 활동 중 체포돼 15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한 인물이다. 경성형무소(마포)에서 해방을 맞은 김진성은 석방된 후 자신의 본거지인 만주로 돌아가 생활하다 1961년 병사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잊힌 인물이 됐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가짜 김진성이 나타나 진짜 김진성 행세를 했던 것.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묘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묘 앞에선 아들 김세걸(왼쪽). 이 자리에는 1968년부터 30년간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이 묻혀 있었다. 1998년 하얼빈에서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유해를 모셔와 안장했다.
▲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묘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묘 앞에선 아들 김세걸(왼쪽). 이 자리에는 1968년부터 30년간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이 묻혀 있었다. 1998년 하얼빈에서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유해를 모셔와 안장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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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가 진짜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가로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도 중국에서 온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아들 김세걸이다. 김세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20년째 계속 '조사 중'이던 보훈처는 지난해에야 비로소 김정수를 비롯한 4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는 평안북도 초산 출신의 진짜 독립운동가 김정범(1900~?)의 공훈을 가로챈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정범은 1922년 중국 만주로 망명해 통의부와 참의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군자금 모집과 일본 경관 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인물인데, 1932년 집안현에서 체포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았다.

진짜 독립운동가 김정범과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는 나이도 무려 9살이나 차이 나고 고향도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김정범이 김정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사실도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김정수가 김정범의 공훈을 가로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도 모자라 보훈처가 무려 20년간 '조사 중'인 상태였던 데에는 보훈처 내부자와 검은 커넥션이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MBC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돼 있는 송세호가 상하이에서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고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걸러내기 위한 보훈처의 각별한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학규는 동작역사문화연구소 공동대표 겸 소장으로 있으며,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 <동작민주올레 가이드북>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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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