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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천황제에 대해 주권자로서 의식을 강조하는 사와후지 변호사
▲ 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천황제에 대해 주권자로서 의식을 강조하는 사와후지 변호사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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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주(노예의 주인)를 존경하는 노예야말로 진짜 노예이다. 천황제에 사로잡혀 천황에게 황송해하는 정신은 주권자에게 있어서는 안 될 신민근성이나 다름 없다." (사와후지 변호사)

'헤이세이'가 새겨진 금화를 팔기도

일본은 지금 한창 축제 분위기이다. 31년간의 재위를 마친 아키히토 일왕과 그의 아들 나루히토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천황 교대'로 모두 들떠있다. '헤이세이(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안녕', '헤이세이에 감사', '지는 시대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 그리고 새로 맞는 시대에 대한 설레임'.

일왕의 퇴위, 즉위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화제가 되고 상품이 될 수 있다. '헤이세이의 공기를 담은 깡통', '레이와(새로운 일왕의 연호) 만쥬'에서부터, 심지어 값비싼 '헤이세이 금화'가 날개돋힌 듯 팔릴 정도다.
 
 '금화 날개 돋힌 듯이 팔려'라는 제목의 아사히 신문 기사.
 "금화 날개 돋힌 듯이 팔려"라는 제목의 아사히 신문 기사.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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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적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되는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의 중반에 걸쳐 일본은 '천황'의 이름으로 조선, 대만 등을 식민지로 만들고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결국 일본은 전쟁에 패했으나 그 정점의 히로히토 일왕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아 '신'에서 '상징'이라는 이름으로 옷만 갈아입었다. 현재 그 아들과 손자의 대까지 일본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천황제는 일본의 전후 청산, 민주주의와 결코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전날인 지난 4월 29일 나고야시 여성회관 '이블 나고야'에서 '천황 교대에 이의를! 주권자로서 천황제와 마주하는 자세를'이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천황 교대를 계기로 천황제를 생각하는 아이치네트워크(네트워크)'의 주최로 열렸다. 인권 문제와 천황제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사와후지 도이치로 변호사가 강사로 나섰다.

연호는 시대에 뒤떨어진 불량품

사와후지 변호사는 연호 폐지 서명을 벌이고 있는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연호, 히노마루, 기미가요, 서훈 등은 천황제를 유지하는 소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런 소품의 사용에 대해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호를 상품에 비유한다면 불량품이다. 첫째, 1억 명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죽은 우연의 사건으로 연도 표기가 바뀌는 점. 둘째, 일본이라는 지역 밖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점, 셋째, 사람이 죽으면 바뀌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는 점"을 들었다. 실용성에 있어서도 '연호'가 얼마나 불편한 시스템인지 설명한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국가신도, 즉 '천황교'라는 신흥종교를 고안해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일본 사회를 지배했다. 학교의 교사는 그 천황교의 충실한 포교자였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천황을 따르고 그를 위해 살고, 그의 병사가 되어 그를 위해 죽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황만세'를 외치며(실은 강요당하며) 집단자살로, 특공대로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천황의 이름으로 전장에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을 비롯한 식민지 국민들의 희생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전후 일왕은 '신'에서 '상징'으로 바뀌었다. '권력'과 '권위' 모두를 지니고 있던 존재에서 실질적 권력은 상실하고 상징적 '권위'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 선언을 한 히로히토는 자신의 전쟁 책임을 어물쩡 덮어버리고 원폭 피해에 대해서도 무책임하게 일관했다. 그 뒤 아키히토 일왕에 이르러서는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전몰자를 위로하는 등의 '비권위주의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사와후지 변호사는 "이런 권위를 갖고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는 천황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질수록, 상징 천황은 국민의식을 통합하는 기능을 높인다. 그 결과 국민 주권을 무기력하게 하는 위험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입법, 행정, 사법의 대표가 세습권력에 머리 숙이는 일본

5월 1일 새로운 일왕이 즉위했지만, 즉위와 관련된 의식은 10월 22일에 열린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입법, 사법, 행정3부의 대표인 내각 총리, 중/참의원 의장, 최고재판소(대법원) 소장이 참석해 새롭게 즉위한 일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총리가 대표로 '천황폐하만세'를 외치게 될 것이다. 사와후지 변호사는 이 의식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의식"이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립된 주권자 의식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연 뒤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 한 참석자는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에 대한 지지율이 70%가 넘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9조) 무력화를 위한 개헌 계획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지 않을까 염려했다.

끝나지 않은 전후청산과 위협받는 민주주의라는 일본 사회 최대의 과제 앞에 천황제가 놓여 있다. 제대로 된 전후청산과 올바른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 천황제는 일본 사회가 반드시 넘어가야만 하는 산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천황제는 일반 사회에서 입에 담기 힘든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많은 법률가와 관계자들이 말하는 일본 헌법의 세 기둥은 '국민주권, 평화주의, 인권존중'이다. 사와후지 변호사는 "일본 헌법은 이 세 가지가 기본 이념이고, 천황은 일본헌법의 중요한 가치 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라며 일왕이 일본 헌법의 가치 체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천황'에 대한 규정이 일본헌법 1조부터 8조까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사회 일반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트워크'의 관계자는 이번 일왕 교대가 거의 금기시되어 있는 천황제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새로운 연호가 시작된 5월 1일, 나고야 시내 중심가에서 일본 사회가 천황제가 지니고 있는 여러 문제와 모순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볼 것을 호소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이들의 노력이 그 단단한 금기에 작은 구멍이라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5월 1일 새로운 일왕이 즉위한 날 나고야시의 중심가에서 천황제의 문제점에 대해 가두선전을 펼치는 ‘천황 교대를 계기로 천황제를 생각하는 아이치네트워크’ 회원들
▲ 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5월 1일 새로운 일왕이 즉위한 날 나고야시의 중심가에서 천황제의 문제점에 대해 가두선전을 펼치는 ‘천황 교대를 계기로 천황제를 생각하는 아이치네트워크’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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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헤이세이의 공기, 언제 개봉'이라는 제목의 아사히 신문 기사. 헤이세이(平成)와 같은 한자를 쓰는 지역의 주민들이 빈 깡통에 공기와 5엔을 넣은 깡통을 1080엔에 한정판매 한다고 한다.
▲ 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헤이세이의 공기, 언제 개봉"이라는 제목의 아사히 신문 기사. 헤이세이(平成)와 같은 한자를 쓰는 지역의 주민들이 빈 깡통에 공기와 5엔을 넣은 깡통을 1080엔에 한정판매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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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사람들로 가득 찬 행사장.
▲ 일본 나고야 "천황제에 이의를" 집회 사람들로 가득 찬 행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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