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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고도(古都), 스플리트(Split)를 여행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구시가에 자리잡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의 4개 성문을 차례로 돌기로 했다. 먼저 동문, 남문, 서문을 천천히 답사한 후, 궁전의 북문인 포르타 아우레아(Porta Aurea)로 향했다.

포르타 아우레아는 금으로 만들어진 문, 금문(金門)이라는 뜻이다. 305년 6월 1일, 퇴임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 금문을 통해 처음으로 궁전에 들어왔다. 그래서 금문은 궁전의 4개 성문 중 가장 역사적인 성문으로 알려져 있다.

성문의 이름은 금문이지만 실제로 성문에 황금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벽돌로 복원된 금문의 가장 윗부분은 정말 금색을 칠한 것처럼 찬란해 보인다. 벽돌로 복원된 노란 성벽이 햇살을 받아 금빛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본 성벽의 높이는 상당한데, 전투기가 없던 로마시대에는 난공불락이었을 정도의 높이이다. 군데군데 복원된 모습이지만 북문의 성벽은 비교적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성벽이다. 이 육중한 성벽을 사이에 두고, 성을 뺏으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의 싸움은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왔다.

북문 앞의 옛 로마 궁전 밖에는 녹음이 우거진 스트로스마예프 공원(Strossmayera Park)이 펼쳐진다. 이 공원 앞에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인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Gregory Nin Statue, Grgur Ninski Statue)이 세워져 있다. 워낙 거대한 동상이어서 굳이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존경받는 주교이다.
▲ 그레고리우스 닌. 그는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존경받는 주교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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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상은 크로아티아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Ivan Meštrović)의 청동 작품으로, 동상 아래에 그레고리우스 닌과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동상은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의 열주광장 근처에 있었지만 크기가 너무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서 1954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그레고리우스 닌은 바티칸 교황에게 크로아티아 국민들이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할 수 있도록 간청해 허락을 받아낸 주교로서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크로아티아어를 지켜낸 종교지도자로서 그는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는 주교로서 라틴어 성경의 크로아티아어 번역과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의 기독교 신앙 강화에 공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동상은 실제로 보면 엄청나게 크다. 그는 마치 전사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과 덥수룩한 수염의 임팩트가 대단하다. 그는 왼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머리 위로 들어올려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근엄한 그의 표정과 동상의 굵은 선은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마치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라고 하면서 마술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

높이가 4.5m나 되는 이 거대한 청동상 밑에는 여행자들이 잔뜩 모여 있다. 이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상의 발가락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거지?"
"과거에 그레고리우스 동상 옆에서 꽃을 팔던 여인이 장사가 잘 안 되자 이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며 장사가 잘 되도록 소원을 빌었는데, 그 이후 꽃장사가 잘 돼서 이 속설이 생겼났대."


특히 유럽의 여행지에는 어디를 가나 동상의 신체 일부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그래서 먼 여행지까지 와서 만지지 않으면 괜히 손해보는 것 같은 생각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열심히 소원을 빈다. 나와 아내도 스플리트까지 여행온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그레고리우스 닌의 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이 행운의 엄지발가락은 사람의 손보다도 더 크다. 스플리트에 온 여행객들은 모두 한번씩 만져 보았을 이 발가락은 밝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네일아트를 해준 것처럼 매끈매끈하다. 사람들이 너무 만져서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닳아 없어졌으니, 얼마 지나면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새로 해드려야 할 것 같다.

주교상 옆으로는 높은 탑이 마치 주교상의 배경처럼 우뚝 솟아 있다. 원래 이곳에는 1080년 스플리트 남쪽의 오미스(Omis)에서 해적들의 돌팔매로 순교한 아르니르(Arnir) 주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수도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수도원 건물은 1877년의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은 종탑만이 홀로 남아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11세기 당시에 얼마나 해적들이 창궐했으면 해적의 돌에 맞아 주교가 숨지기까지 했을까? 지금은 가늠할 수 없는 당시의 폭력적인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북문인 포르타 아우레아를 지나 성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리고 궁전의 열주광장 방향으로 걸으면서 한 안내 표지판을 찾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스플리트 시의 역사를 전시한 스플리트 역사박물관(Muzej grada splita) 안내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 작은 표지판을 따라 박물관이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15세기에 지어진 귀족가문의 고딕양식 저택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 저택은 개조되어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박물관 정문 위에는 가슴을 내밀며 힘있게 서 있는 드래곤 상이 장식되어 있었고, 앞뜰에는 스플리트 시내에 나뒹굴던 로마시대의 석조 유물들이 모여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대 로마부터 현대까지의 스플리트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 스플리트 역사박물관.  고대 로마부터 현대까지의 스플리트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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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에는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 시절부터 현대까지 스플리트의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택의 천장을 장식하던 붉은 나무들은 열을 맞추어 전시장 내부를 압도하고 있었고, 석조 기둥과 흰 벽면이 어우러진 실내는 건물 자체로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주피터 신전에서 총 3마리를 찾았던 이집트 스핑크스는 이곳 전시실 안에도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물론 이교도들에 의해 머리가 처참하게 잘린 스핑크스는 몸통의 뒷부분만 애절하게 남아 있었다.

전시장 안에는 해상무역도시 스플리트를 지키려 노심초사했던 귀족들이 실제 사용한 칼과 총, 창, 방패, 투구들이 가득하게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스플리트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시에 이토록 수많은 무기들이 필요했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 만난 날개 달린 사자상, 피에타상, 천사의 조각상은 베네치아 지배 당시의 종교적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차와 귀부인의 드레스, 장식장들은 이 저택에 살던 귀족들의 화려했던 영화를 눈 앞에 보여주는 듯 하다.
 
강한 태양을 받고 있는 빨래가 정겹고 포근해 보인다.
▲ 빨래 말리기. 강한 태양을 받고 있는 빨래가 정겹고 포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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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물관 계단을 내려가다가 우연히 박물관 창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순간, 나는 동작을 멈추게 되었다. 화려한 박물관 내부와는 달리, 성벽 안에서 살아가는 스플리트 시민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로마의 궁전 성벽 안에는 주민들이 지금도 집을 지어 살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고 있었다.

시민들의 허름한 집 건물벽에는 힘들게 고정시킨 빨랫줄이 곡예를 타듯이 연결되어 있었고,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빈틈 없이 널려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집들은 마치 박물관의 외부 전시인 양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었다.

빨래를 바라보는 마음이 왠지 포근했다. 빨래는 한낮의 강한 태양을 잘 받아들이며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스플리트, #스플리트여행,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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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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