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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봄은 푸르고 또 붉다. 1박 예정으로 고창 여행에 나선 길. 꼬박 네 시간을 달려 제일 먼저 학원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의 드넓은 보리밭에는 푸르름이 가득했고 나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눈을 깨끗이 씻은 뒤 다시 고창읍성으로 갔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 나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온뭄으로 받아들였다.
고창 공음면 학원농장에서는 4월 20일부터  청보리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는 5월 12일까지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 나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온뭄으로 받아들였다. 고창 공음면 학원농장에서는 4월 20일부터 청보리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는 5월 12일까지이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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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성벽을 따라 붉게 피어난 철쭉은 온몸으로 봄을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 목적지인 선운사로 향했다. 지금 동백은 어떤 모습일까. 이젠 꽃이 많이 졌을지도 모른다. 가는 내내 조바심과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

절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주문을 향해 바삐 걸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섰다. 석조에 흐르는 물 한 모금으로 가쁜 숨을 고르고 대웅전 뒤편에 있는 동백숲으로 갔다. 
 
모양성이라고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봄이면 성벽둘레에 붉은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연출한다.
 모양성이라고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봄이면 성벽둘레에 붉은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연출한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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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은 여성들의 성벽밟기(답성)풍습이 유명한데 성벽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해마다 답성놀이가 진행된다.
 고창읍성은 여성들의 성벽밟기(답성)풍습이 유명한데 성벽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해마다 답성놀이가 진행된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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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오백 년이 넘는 우람한 동백나무들이 언덕에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이미 떨어져버린 꽃으로 나무 아래는 붉게 변했지만 짙푸르고 윤기 흐르는 잎새 사이로 붉은 꽃송이가 아직도 점점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반가웠다.

동백숲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다가 오늘은 눈으로 먼저 보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다시 와서 마음으로 보리라 생각하며 절집 바로 아래에 있는 숙소로 갔다. 들를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던 노부부 대신 젊은 자매가 반갑게 안내해준다. 온기가 느껴지는 숙소의 밤,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감미로운 객창감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어둠이 걷히자마자 선운사로 향했다. 봄날 이른 아침의 절집은 고요하고 맑다. 나는 도솔천을 따라 자유롭고 느긋하게 걸었다. 생태공원에 이르자 작은 못에서 물안개가 자오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운사 대웅전과 영산전 뒤쪽으로 수령 500 여년의 동백나무 3000 그루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선운사 대웅전과 영산전 뒤쪽으로 수령 500 여년의 동백나무 3000 그루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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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져버렸지만 그나마 남은 동백꽃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선운사 동백은 개화시점이 우리나라 최북방 한계점에 걸쳐있어 가장 늦게
꽃을 볼 수 있다. 동백(冬柏)이라기보다 춘백(春柏)이 더 맞을 듯하다.
 대부분 져버렸지만 그나마 남은 동백꽃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선운사 동백은 개화시점이 우리나라 최북방 한계점에 걸쳐있어 가장 늦게 꽃을 볼 수 있다. 동백(冬柏)이라기보다 춘백(春柏)이 더 맞을 듯하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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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져 누운 동백.  동백꽃은 반드시 송이째 떨어진다. 그래서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두 번 핀다고들 한다.
 땅에 떨어져 누운 동백. 동백꽃은 반드시 송이째 떨어진다. 그래서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두 번 핀다고들 한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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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고 못가에 서서 마치 꿈을 꾸듯 몽환에 젖어 잠시 세속을 잊었다. 극락교에 이르러 다리 위에 서니 무르익은 봄의 푸르름이 그대로 담겨있는 도솔천이 내려다 보였다. 나는 곁에 있는 천왕문을 지나 인적없는 절집 경내에 들어서서 곧장 동백숲으로 다가갔다.

선운사 동백은 송이가 작은 토종 홑동백이다. 나는 그런 홑동백을 좋아한다. 한껏 꽃잎을 열어 화려한 색깔로 풍성하게 피는 겹동백이 수다스러운 모습이라면 꽃잎을 다 열지 않고 고혹적인 붉은 빛으로 피어나는 홑동백은 조신하고 지조있는 모습이다. 마지막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극락교를 지나면 차밭이 나온다. 봄날 이른 아침, 막 떠오르는 햇빛이 
눈부신 차밭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극락교를 지나면 차밭이 나온다. 봄날 이른 아침, 막 떠오르는 햇빛이 눈부신 차밭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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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숙한 아름다움에 온전히 마음을 뺏긴 채 잎새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있는 동백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순간 바라보던 꽃송이가 눈 앞에서 송이째 똑 떨어졌다. 내 가슴도 따라 무너져 내렸다.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했던가. 꽃다운 나이에 적장을 유인하여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처럼 동백의 장렬한 낙화에, 또 그 섬뜩한 아름다움에 시린 가슴이 그저 떨려왔다.

어디선가 동박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절집의 아침을 깨웠다. 바로 곁, 대웅전에 앉아계신 부처님께서도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영화로운 인생도 찰나일 뿐이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듯했다.

땅 위에 핀 동백을 다시 마음에 피워올리고 극락교를 지나 차밭으로 갔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차밭에는 눈부신 아침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 그 청신함이라니... 온몸의 불순물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듯했다. 시려웠던 마음에 푸른 물을 들이고 만세루에 앉아 스님들께서 키운 차로 마음을 다스렸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 꽃 말이에요...'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가락은 들을 수 없었지만 봄날 선운사 여행은 참으로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태그:#고창여행, #선운사, #동백꽃,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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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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