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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최종 선고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모습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최종 선고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모습
ⓒ JT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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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명성은 결코 헛되이 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진단' 말이다. 그는 헤겔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계사의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사족이 필요하다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프랑스대혁명을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킨 데 이어 유럽의 침략전쟁과 황제등극, 이후 몰락의 과정은 '비극'으로, 그의 조카 루이의 집권과 국정농단은 '희극'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를 한국현대사에 대입하면 영락없이 박정희의 쿠데타는 비극, 박근혜의 집권은 희극이라 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뒤 이틀이 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뒤 이틀이 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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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불허전, 20세기의 대표적인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진단한다.

"어디선가 마르크스는 역사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지만, 더 불행한 유형은 처음에는 비극이고 나중에는 절망이다."

마치 박정희 - 박근혜 부녀를 상정하는 듯한 진단이다. 박정희의 5ㆍ16쿠데타는 헌정사의 비극이었고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민주주의 역행은 절망이었다.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 시민들 소망 담은 "촛불"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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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겨울 전국에서 촛불항쟁이 계속되고 박근혜가 국회의 탄핵을 받아 퇴진에 몰리게 되자 세간에서는 그럴듯한 숫자풀이가 나돌았다. 국회의 탄핵과정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1명이 투표에 불참하고, 234명이 탄핵찬성, 56명이 반대, 7명이 무효,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탄핵인용하면, 9는 박근혜 구속, 0은 박근혜 영창(123456910)이란 기발한 풀이였다.

또 박정희가 18년간 집권하다가 암살되고, 박근혜는 18년간 청와대 생활, 부친의 암살 후 18년간 칩거, 정계투신 18년 만에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숫자 풀이도 따랐다.

박근혜는 5ㆍ16쿠데타 후 51년 6개월 만에 51.6%를 득표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막힌 우연성을 보였다. 세상사는 가끔 우연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역사학자 EㆍHㆍ카는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라 말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의 표결을 앞두고 열린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든 '박근혜 탄핵'이라 적힌 촛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의 표결을 앞두고 열린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든 "박근혜 탄핵"이라 적힌 촛불.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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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3만 명이 모여 박근혜를 비판하는 촛불을 들면서 시작된 촛불혁명은 연말ㆍ연초까지 계속되면서 6개월 동안 연인원 1,700만 명이 훨씬 넘었다. 중고생들로부터 노인 세대들까지, 경향 각지에서 집회당 평균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로써, 이것은 세계혁명사에 첫 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비폭력 평화적인 촛불시위로 시종되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혹한에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광장으로 모였다. 1919년 3ㆍ1혁명 이래 최대 규모였다. 시민들은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함성을 질렀다.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 ‘박근혜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박근혜 즉각퇴진 8번째 촛불집회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 ‘박근혜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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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정농단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함성이 지축을 울렸다. 물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반동세력의 집회도 있었지만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촛불혁명의 목표는 1차적으로는 무능 부패한 박근혜와 그 측근들의 추방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박정희 군사독재로부터 파생한 총체적인 적폐의 청산에 있었다. 초헌법적인 권력자, 범죄적인 정경유착, 정보기관ㆍ검찰ㆍ경찰ㆍ사법부 등 공권력의 사유화, 족벌신문의 패악, 방송장악, 지역 편중과 차별 등 반민주ㆍ반공화국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명예혁명이다.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역까지 행진한 뒤 ‘박근혜 탄핵’ 요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헌법재판소 앞으로 간 촛불시민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역까지 행진한 뒤 ‘박근혜 탄핵’ 요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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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린 박정희로부터 전두환ㆍ노태우가 남긴 군사문화의 잔재와 이명박ㆍ박근혜의 반민주ㆍ부패 청산에 있었다.

박근혜의 몰락은 자신의 무능과 반민주 국정농단에서 기인하지만 측근과 족벌언론 '기레기'의 맹목적 감싸기 등에도 책임이 따른다.

현직 검사로서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법무장관 때는 대선 과정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초원복집 사건의 장본인으로 "우리 대통령이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 하고 차밍하다"는 아첨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재임 중 수많은 문학ㆍ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묶는 등 반민주 행각을 주도하다가 쇠고랑을 찼다.

족벌TV는 '100개의 형광등' 운운하고, 족벌신문은 3쪽에 이르는 박근혜의 의상을 특집으로 꾸몄다. 이같은 아첨과 칭송에 박근혜 대통령은 여왕으로 자리바꿈했다. 광복절 전날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 오찬에 불러 kg당 수백만 원 호가하는 송로버섯,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등 호화파티를 열었다. 하룻밤 묵는 어느 지방 호텔 욕조를 갈도록 하고,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받아 1년에 몇억 원의 의상비를 지출했다.

박근혜는 민주공화주의에 전혀 소양이 없는 위정자였다.
세월호사건이나 통합진보당 해산, 개성공단 철수, 정부 기관보다 측근 최순실에 의존하는 등 반민주적인 행태와 공권력의 사유화는 공화정 대통령이 아닌 유신시대나 왕정시대의 여왕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행세했다.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기표소에서 나와 투표함으로 이동하고  있다.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기표소에서 나와 투표함으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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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2016년 12월 9일 자신이 속한 여당의원 다수가 포함한 국회에서 탄핵되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전원일치로 탄핵안이 인용됨으로써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이승만 대통령이 1925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한 이래 두 번째이다. 그는 현재 재판중이다.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때 국군기무사령부 일각에서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었다. 헌재에서 기각될 경우에 대비하여 계엄령 선포와 이에 따른 병력 및 장갑차 등을 투입하여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는 음모였다.
  
10일 오전 부산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TV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10일 오전 부산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TV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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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30사단의 1개여단, 1공수여단, 헌법재판소에 20사단의 1개중대, 광화문에는 30사단의 2개 여단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한다. 박정희의 유신쿠데타나 전두환의 5ㆍ17쿠데타의 방식이다.

기무사는 각급 정부기관 장악과 언론통제 방안까지 마련했다. 탱크 200대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여 명, 특전사 병력 1,400명의 동원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도 따른다. 완벽하고 철저한 쿠데타 음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에서 취합된 '계엄령 문건'을 19일 제출받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일부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 청, "계엄령문건" 내용 발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에서 취합된 "계엄령 문건"을 19일 제출받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일부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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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하마터면 또 한 차례 군사쿠데타를 겪을 뻔 했다. 촛불집회가 시종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폭력사태가 없어서 저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의 주모자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종적을 감추고, 인터폴은 범인 체포와 인도를 거부한 채이다. 웬일인지 정부기관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쿠데타 시나리오가 박근혜나 측근들과 모의한 것인지, 기무사 핵심의 과잉충성 또는 정권야욕인 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현대사_100년의_혈사와_통사, #박근혜_탄핵, #촛불혁명, #피고인_박근혜,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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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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