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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만화책을 즐겨 읽다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됐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져 정년까지 책 관련 일을 했다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보다 쉽게 접근해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만화의 장점 중 하나일 게다. 

여러 분야,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곤 한다. 내가 종종 즐기곤 하는 만화의 장점은 '내용이 무겁거나, 어려운 책들을 읽는 틈틈이 만화책을 읽는 것으로 머리도 생각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다 싶은 만화가 보이면 선뜻 구입해 읽곤 한다.   
 
<죽음에 관하여> 1, 2권 책표지.
 <죽음에 관하여> 1, 2권 책표지.
ⓒ 영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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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1.2>(영컴 펴냄)는 여러 유형의 죽음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들려줌으로써 바람직한 삶을 묻는 책이다. 저마다 다른 죽음들, 이야기들은 드라마틱하다. 이중 가장 뭉클하게 와 닿았던 것은 '한 소방관의 죽음'이다.

윤현희 소방관은 화염으로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 큰 화상을 입고 실신해 동료들에게 끌려나온다. 그가 동료들의 만류와 팀장의 무전 지시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불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던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멀리 떨어진 불속에 어떤 형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람이라면 4~5살은 되었을 그런 작은 형체가. 

화상으로 실신했던 그가 깨어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그 화재에 사상자가 있었냐는 것. 사상자가 없었다는 동료들의 확인에도 그는 어쩌면 자신이 사람을 불속에 두고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으로 십여 년을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결국 또 다른 화재 현장에서 위험에 처한 부하 직원을 살리다 죽는다. 

그런 그가 죽어서까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십여 년 전 그날 불속에 쓰러지던 그 형체가 '정말 사람이 아니었는가?'라는 것. 만에 하나 사람이었다면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에게 죽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인 '신'은 "물건이었어. 그날 집 주인이 장봤던 물건들. 야채, 과일….뭐 그런 것들이 든 봉투였지"라고 확인해준다.

그제야 그는 마음의 짐을 벗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죽음의 문을 향해 간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신, 그 옆 작은 꼬마. 신은 꼬마에게 말한다.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얼마 전 고성 산불 현장 소방관들의 투혼 소식에 다시 생각났던 만화다.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를 비롯하여 지난해(2018년)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수습하던 중 참사당한 아산 소방서 소속 소방관 3명의 죽음 등, 그동안 크고 작은 화재 소식과 소방관 관련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곤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 읽을 당시 '소방관이란 직업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몇 장의 그림과 몇 마디만으로도 이렇게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거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아마도 그래서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곤 했으리라.  

최근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종종 이야기되곤 했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방관 처우 개선.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관련 국민 청원 동참자가 27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문득 매몰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이 6명의 사고자 중 5명은 구했지만 1명을 구조하지 못하고 숨지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던 충격과 자책으로 괴로워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2015년)가 떠오른다. 그 소방관의 가족들은 법정 싸움 끝에 지난해(2018년)에야 순직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받았다던가. 

그곳이 화재현장이든 사고현장이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일선에 있는 소방관들. 사회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건에서 일하게 되어도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 그렇다면 그 나마의 보장인 국가직으로의 전환이 이젠 더 이상 머뭇거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안일하거든. 굳이 어렵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 자신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긍정적이지. 너무나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42세. 초등학생 딸이 있고 출근길에 사고가 나서 현재 의식불명…. 누굴까? 불과 30분 전에는 너와 완벽한 남이었지. 너로 인해 사고가 난 그 버스 기사야. 곧 이리로 올 것 같군. 혼자 조심하기보다 중요한 건 '서로' 조심하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게 되는 거거든."
-54~56쪽(2권, 오토바이로 질주하다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로 죽은 청소년에게)  

외에도 과로사로 인한 죽음, 밑바닥 삶을 전전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사고를 유발하고 죽은 중년 남자, 스스로의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한 (아마도) 취준생, 에베레스트에 죽음으로 새겨진 다섯 친구의 우정, 삶과 죽음과 복수가 교차하는 고통스러운 연쇄살인범의 윤회, 부모의 불화로 방치된 어린 아이의 죽음과,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한 채 버려지는 생명 등,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는 다양한 죽음들을 들려준다.

죽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신'은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혹은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한다. 위에 인용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까지 죽이는 사고를 내고 죽는 것으로 한 가정을 파탄 냈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르는 청소년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깨닫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이 그처럼 하는 이유는 그나마의 삶을 제대로 정리하고 다시 태어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위해서다. 이와 같은 신의 역할을 보며 그 신은 다름 아닌 '내 안의 무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죽고서야 가족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져 후회한다. 과로로 죽은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 팍팍하게 살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죽게 만든 사고를 유발하며 죽은 한 중년 남자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한다. 자살한 한 젊은이는 부모에게 빚만 지우고 왔음을 죄스러워하고 아파한다. 어떤 이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열심히 살겠다고 신에게 다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후회나 슬픔, 뉘우침과 다짐들은 부질없으며 공허할 뿐이다. 이미 죽어버려 어떤 무엇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보다 덜 후회스러운 삶을 위해 노력하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거나, 그러자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과 의지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웹툰으로 연재될 당시 업데이트 되는 시간을 기다려 읽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다는 지인의 권유로 읽었는데, 그는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만화책, 두고두고 펼쳐볼 만화책"이라며 권했다. 아마도 이 만화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이 만화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윤현희 소방관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빼곤 주인공 이름을 거의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죽음은 늘 내 앞 혹은 우리 곁에 있다는 것, 만화 속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누군가의 죽음은 훗날 내 경우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자 아닐까 짐작해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그곳엔 누가 있을까...'-(뒷표지)
 
이처럼 자신만의 대답으로 해석해가며 읽는 것도 이 만화를 보다 의미 있게 읽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미처 못 봤던 것들이 유독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떠오를 때면 다시 펼쳐 읽고 죽음과 삶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하고… 이런 만화책이다.

죽음에 관하여 1~2 세트 - 전2권

시니 글, 혀노 그림, 영컴(YOUNG COM)(2013)


태그:#죽음에 관하여, #웹툰, #소방관, #시니 혀노(만화가),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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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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