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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떨어져도 결혼은 계속된다

산책길 모녀의 잡담을 엿들으며 깨달은 결혼의 목적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동네 하천에서 벚꽃 축제가 열리는 날 아침이었다. 나는 집을 나와 하천으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공용 운동 기구가 늘어선 하천 체육공원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두 여성이 오른쪽 건너편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이 든 중년 여성은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흰머리가 가득했고, 그를 '엄마'라고 부르는 젊은 여성은 이른 아침부터 생기가 넘쳤다.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스트레칭하는 자세로 고개를 젖혀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는 데, 귓가에 모녀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딸은 시집간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얘기를 듣자 하니 친구의 결혼생활은 그리 좋지 못한 듯했다. 딸은 시집간 친구가 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비밀을 화제 삼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부부가 세 들어 거주하는 다세대 주택 위층 집주인이 건넨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딸이 엄마에게 말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데 집주인이 그러더래. '허허. 요번 달은 달세가 좀 늦네~" 이러더라는 거야" 
"그런데?" 
"친구는 그 집이 그때까지 전세인 줄 알았다는 거야. 근데 알고 봤더니 월세였다는 거지" 
"어머나! 그래서 어떻게 했대? 따졌어?" 


엄마에게 딸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말 못 하지. 왜냐면 시부모가 (시집간) 친구 몰래 내주 던 거니까. 따지게 되면 그 달부터는 친구 부부가 내야 하잖아. 이젠 숨길 필요가 없어지니까" 
엄마도 어이가 없어 웃으며 '그 달부터'라는 말에, "그렇지, 그 순간부터" 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런데 친구가 당한 사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구 남편이 그래도 전문대는 나온 줄 알았다 했거든? 근데 고등학교 중퇴라는 거야. 고졸도 아니고 중퇴. 근데 그것도 있잖아. 어떤 여학생이랑 바람이 나서 그랬다는 거야. 여자 데리고 집 나와서 도망가느라 학교 안 가서 잘렸대" 
"어머나, 망했네 망했어."


점입가경으로 접어드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헐" 하는 소리를 뱉고 말았다. 당황해서 모녀를 봤더니 중년 여성은 나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고, 딸은 웃고 있었다. 나는 엿듣고 있는 것이 뻘쭘해져 벤치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켰다. 딸의 친구는 어찌해서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일까. 이어지는 얘기가 궁금했지만 더 들을 순 없었다. 

나는 벚꽃이 가득 핀 하천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딸의 얘기 속에 등장한 젊은 부부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가져온 전셋집은 사실은 월세였다고 했다. 그리고 전문학사는 되는 줄 알았던 남편은 사실은 고교 중퇴였다. 그리고 여자랑 바람나서 학교를 그만둔 적도 있다고 한다. 조건을 따지는데 익숙한 요즘 세상에 남편감으로 괜찮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새댁을 속이는데 시댁까지 동참했다는 걸 보면, 결혼 자체에 신뢰와 존중이 결여되어있었다. 그 불쌍한 여자의 사연에 하천에서 만난 어머니가 "망했다"라고 말한 건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새댁의 처지에 마음 아프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애초에 그는 지금 남편의 무엇을 보고 결혼했을까. 새댁이 (아마도) 사랑했던 남자는 월세를 전세라고 속인 남자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생김새와 달콤한 말들에 속은 것일까. 남편의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새댁은 행복했을까. 시댁에 불만은 없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진실을 알게 된 건 퍽 불행한 일이다. 그날 아침, 나는 새댁의 복잡한 심경을 상상해보면서 흐린 봄날의 벚꽃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 산책로에서 올려다본 흐린 하늘과 만개한 벚꽃 ⓒ 나명화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가

결혼은 남녀가 같이 사는 거다. 그래서 서로 택할 때 우선 이성으로서 이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엔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서로가 지닌 조건들이 중요하다. 상대의 벌이와 직업적 전망은 내 운명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식구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날더러 가족이라 하고, 날 낳지도 기르지도 않은 그의 부모는 내게 노후 지원을 기대한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연락처를 지우는 걸로 끊을 수 있었던 서로의 관계도 법적인 구속 아래 놓인다. 이렇듯 결혼은 무겁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잠재된 것이기 때문에, 남녀는 서로의 조건을 보험 삼아 따지게 된다. 결혼 정보 업체가 난립하며 성업 중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전문 업체가 발급해준 보증서만으론 충족되진 않는 거 같다. 외모 성격만 따지고 남자를 만나 사귀다 그의 조건이 못 미더워 결국 중매업체를 통해 결혼한 친구를 안다. 남편이 벌이도 좋고 집안도 부유한데 그 친구는 결혼을 후회한다고 했다. 남편이 수 억짜리 집을 해와서 결혼한다며 자랑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가 결혼 후에 시댁의 간섭과 무시 때문에 고생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전문가들이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이상형은 없다"는 것이다. 흔히 결혼상대란 내가 확정해둔 조건을 충족시켜줄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 있다고 한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듯이 결혼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대방에겐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리는 각자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결혼함으로써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고, 때문에 혼자일 때 보다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날 아침에 들은 사연 속의 여자도 상대방의 신뢰와 존중만 있었더라면 조건 따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 불행한 결혼이 지닌 문제점은 월세나 신랑의 졸업장 따위가 아니다.

올해 봄에도 많은 남녀가 결혼할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것은 만족하고 또 어떤 것은 푸념하면서 한 이불에 눕게 되겠지. 엊그제 소식이 뜸하던 친구한테서 결혼한다며 연락이 왔다. 앞으로 펼쳐질 그 들의 삶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결국 봄비를 맞아떨어져 버렸던 그 날의 벚꽃처럼 친구의 결혼이 덧없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태그:#결혼,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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