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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벚꽃이 활짝 피고 바람에 꽃잎이 나비처럼 춤을 추며 날아다닌다. 꽃비가 내리던 주말 지인을 만났다. 갱년기는 꽃 피는 봄도 힘겨운가 보다. 꽃 마실과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나이 듦을 잠시 잊기로 했다.

느지막이 막내아들의 입학 축하 인사를 건네자 지인은 산더미 같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지인에게는 늦둥이 아들이 있다. 누나 둘은 대학 졸업 후 밥벌이를 하고 있고 막내인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누나들이 대학에 갈 때랑 지금은 입시 제도가 달라 본인이 원하는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는 것 말고는 엄마로서 도울 길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입학식 날, 아들에게 고등학생이 된 소감을 물었다고 한다.

"신에게는 이제 열두 번의 시험이 남아있습니다."

윤신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녀의 아들 이름은 윤신이다. 윤신이를 비롯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열두 번의 시험이 생긴다. 이 시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시험 결과로 줄을 서야 한다.

이 열두 번의 시험이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의 인생을 재단하는 날이 선 가위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시작해보려는 아이들에게 1등급은 가능하고 5등급은 안 되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른 아침 등고하는 학생
 이른 아침 등고하는 학생
ⓒ 도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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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다 망해가던 조선을 위해, 자신을 질시하던 임금을 위해 열두 척의 배로 거대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윤신이는 누구를 위해 열두 번의 싸움을 한단 말인가. 고작 열두 번의 시험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은 꽃 피는 봄도 모르고 사는 청춘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등급을 정량화하여 평가하지 않고 있으며 학업역량, 전공 적합성, 발전 가능성, 인성, 잠재력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이다.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본다지만 학업성적은 학생들에게 가장 큰 고려의 대상이다. 학년별 학업 성취도의 등락 추이 및 정도, 전공 관련 교과, 원점수, 평균, 표준편차 등 여러모로 학생의 성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이 아니다. 대학 말고도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일은 많다. 하지만 학생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닌 곳이라고는 학교밖에 없다. 다른 꿈을 꾸고 싶어도 꾸는 방법을 잘 모른다. 남에게 말할 꿈이 아직 없는 학생은 나태하고 모자라고 한심한 낙오자처럼 취급된다. 

이순신은 남은 열두 척의 배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병과 백성과 힘을 모아 명량에서 대승했다. 이순신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잘 파악했다. 비록 적은 수의 배와 군졸이지만 서로를 격려했다. 전술에 불리한 지형도 때를 맞춰 자신의 편에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윤신이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와 두 명의 누나가 있다. 흡족할 정도의 성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재능으로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 간다면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듯 열두 번의 시험 또한 윤신이에게 열두 줄의 경험의 나이테가 될 것이다.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 나라의 고등학생들이 냉장고 속의 얼어버린 꽃송이 같다고 느끼게 했다. 아름다움을 한껏 품은 채로 얼어버린 차가운 꽃송이들에 생명을 되찾게 해주어야 한다.

학교 밖으로 나와야 꿈을 이룰 수 있다. 시험의 결과가 꿈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통해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또한 열두 번 시도해보고 열두 번 좌절하고 다시 용기를 얻는 연습을 하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가는 곳이다. 부디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나비 꿈을 꾸는 번데기로 봐줬으면 좋겠다.

태그:#중간고사, #학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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