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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빠 자식들 입학식이나 졸업식 한번 가지 못했다. 군대 생활하던 아들 면회도 한번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작은 아들은 젖배까지 곯아 몸이 약하다. 고등학교를 진주고로 진학해 일찍이 자취생활을 했다. 한창 잘 먹여야 할 나이에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다. 늘 마음이 짠하다."

경남 함양읍 지리산함양시장 내 함양닭집 이경애(73)씨.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며 살아온 지난 세월보다 자식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스물두 살에 결혼해 50여 년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부잣집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며 변변한 집도 없어 마을 뒷산 문중 재각(齋閣)에서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밤이면 적막강산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살아갈 날이 암담하기도 해 혼례를 올리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했다.

이경애씨는 지리산함양시장에서 청춘을 바쳤다. 2남1녀의 자녀도 훌륭히 키웠다. 가난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편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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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씨는 병곡면 송평마을에서 태어났다. 2남5녀의 맏이로 결혼 전까지 송평마을에서 살았다. 수동면 우명리 나주임씨 대종손 집안의 건실한 총각과 결혼했다.

당시는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양가 어른들 사이에서 혼담이 오간 뒤 곧바로 혼례가 치러졌다. "친정아버지는 선비 가문에 9대 독자로 태어나 외롭게 지내셔서 그런지 뼈대 있고 자손이 번창한 집안과 사돈 맺기를 원했다. 사윗감이 나주임씨 대종손 집안 둘째 아들이라는 중신아비의 말만 믿고 결혼을 서둘렀다"고 했다.

하지만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여섯 살 위였던 남편은 육남매(5남1녀)의 둘째였다. 하지만 시아주버니는 이미 친척집에 양자를 간 상태여서 남편이 맏이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없는 살림에 8대조까지 제사를 모셨으니 돌아서면 제사였다"고 했다. 9대 독자였던 친정집과는 달리 챙겨야 할 집안 어른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거기에다 논밭도 없어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들 부부는 충남 서산으로 갔다. 친척의 소개로 나무상(나무로 만든 상) 장사를 했다.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으니 당연히 점포를 차릴 형편도 못됐다. 동가식서가숙하며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평생 장사라고는 해본 일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타향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듬해 설날 돌배기 아들과 세 식구가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으로 왔다.

그는 "서산으로 돌아가 봐야 벌이도 시원찮고 그럴 바에 고향에서 뭐든 하자 싶어 그 길로 주저앉았다. 함양시장에서 장사를 한 지 벌써 50년이 됐네"라며 고단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3년 전부터는 친구들하고 노래교실도 가고, 요가도 배우고, 여행도 가고 재미있게 산다"는 그는 고생의 흔적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일흔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곱고 평온한 낯빛이다.

그는 1987년 110cc 오토바이로 닭을 배달하기 위해 원동기 면허를 땄다. "87년 당시 원동기 면허 시험 칠 땐 함양군에서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다"며 "나보다 먼저 원동기 면허를 딴 여자가 함양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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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부터 닭집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작은 과일가게로 시작했다. 10년 동안 과일가게를 하다 현재 위치(용평4길 9-3)에 '함양닭집'을 개업했다. 벌써 40년 전이다.

직접 닭을 잡아 생닭으로 팔거나 기름에 튀겨 통닭으로 팔았다. 그야말로 시장표 옛날 통닭의 원조 격이다. 2000년대 들어 통닭 체인점이 함양에도 속속 진출하면서 옛날 통닭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16년 전 평생을 같이할 것 같았던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넓은 점포를 놀려둘 수 없어 건어물 등 여러 가지 상품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월세 맞추기도 버겁다"는 이경애씨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순 없지만 함양시장이 다시 한번 번성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정세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312- 함양닭집 이경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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