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6 07:44최종 업데이트 19.04.16 07:44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기관으로부터 안전과 인생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되었던 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사과 없는 국가를 대신해 스스로 자신을 기념하는 '이상한 집'을 지으려 합니다. 그 이상한 집의 이름은 '수상한 집'. 지금 제주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일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이번 회는 '수상한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가 쓴 글로 집을 지으면서 겪은 일화와 감상을 적었습니다.    [편집자말]
 

수상한집 강광보 ⓒ 문화방송 캡쳐화면

 
'지금여기에' 기억발전소팀과 처음 만나 국가폭력피해자기념관을 만들겠다는 설계 의뢰를 받았을 때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폭력+피해자+기념관 


이 단어들의 조합만으로 느껴지는 부담감과 무거움에 내심 어떻게 정중히 거절해야 하나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유대인 박물관이나 기타 기념관들의 웅장한 이미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실 기념관 같은 상징적 건축물엔 영 관심도 재주도 없어서 학교 다닐 때 본 것이 전부였고, '실용미'를 거꾸로 한 '미용실'이란 팀을 운영하는 동안엔 일상적인 생활공간만 만들어왔던 터라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처럼 첫 질문을 했습니다.

"국가·폭력·피해자·기념관이 뭐하는 곳인가요?"

그렇게 시작된 첫 회의에서 얻은 우리의 결론은 첫인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이 건물은 무거운 추모만을 목적으로 한 기념관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더불어 일반인들도 편하게 드나들고 느긋하게 쉬면서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그 분들은 경찰에게 전기고문 당한 이야기를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처럼 하시는 유쾌한 분들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기념관 분위기가 아닌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앞으로 만들어질 (기념관이라 쓰고 사랑방이라 읽힐) 그 공간의 생활 감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만들어야 할 것은 기념관만이 아니다

뭔가 신선한 분위기의 기념관을 상상하고 있던 중에 지금여기에의 변상철 국장이 얘기를 덧붙입니다.

"그런데 기념관이 오래도록 자체적으로 유지되려면 수익구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유지만이라도 할 수 있게 일부 공간에 카페와 게스트 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본인 집과 보상금을 내어주신 강 선생님이 사실 공간도요."

아, 국가+폭력+피해자+기념관의 난해함을 어찌저찌 받아들이고 나니 기념관+카페+게스트하우스+주택이라는 숙제가 더해졌습니다.

"네? 공사비 예산이 얼만인데요? 땅 면적은요?"

제주도라는 변방에 지어지는 보통 건물의 평당 공사비로 대략 계산을 해보니 165.289256㎡(50평) 내외의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50평에 그 내용을 다 담아야 하는 것이군요. 네, 일단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산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집 주인은 혼자 사신다니까 주택은 10평 정도만 만들고, 카페는 20평 정도는 해야할 것 같고, 게스트룸도 2인실 하나 4인실 하나에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니 10평 정도 하면 되려나… 그러면 50 빼기 10 빼기 20빼기…

"대충 보니 그 내용을 다 넣고 나면 10평 정도 남을 것 같은데 그 규모로 기념관을 어떻게 만들죠?"

즉석 제안 "사시던 집 그대로 놔두죠"

몇 달 후 집주인인 강광보 선생님과 다른 피해자분들을 만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 강 선생님이 살아왔고 기념관이 될 현장을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현장에는 제주의 전통적인 돌집이 아니라 80년대에 지어진 보급형 서민주택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보던 지겹기도 정겹기도 한 70·80년대식 빨간 벽돌집들처럼 제주에는 이 정도의 비슷비슷한 단층 주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집장사 집'이라 저평가 당하기도 하는 이런 집들은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에게 이런 집들은 남길 만한 전통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역사적 가치도 없는, 조만간 허물고 요즘식 건물로 대체해야 마땅할 퇴물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 의견에 완전히 반대할 순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집들에서 당대에 가장 저렴하고 보편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합리성을 보기도 합니다.

또 대충 지은 곳과 나름대로 애쓴 곳을 구분해서 보다 보면 만든 이의 귀여움이 느껴지기도 하죠. 그리고 한 건물이 한자리에서 최소한 수십 년의 세월을 버티다 보면 한 건물을 넘어서 장소가 되어 버리고 이런저런 인간사와 물리적 풍화작용이 잔뜩 묻어서 그 나름의 멋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릿속으로 집을 스캔하고 있었습니다.

'6인치 브로꾸(시멘트 블록)에 시멘트 미장을 양쪽으로 해서 벽두께가 200mm인가? 그렇다면 단열은 없나보구나. 현관과 뒷마당 출입문이 같은 크기로 마주보고 있어서 복도가 대청마루처럼 느껴지네. 지붕은 개량형 슬레이트 강판인데 저 속에 발암물질인 기존의 석면슬레이트가 그대로 들어있는 거 아닐까? 방문과 창문들은 옛날식 라왕 목재에 니스칠이라 역시 예쁘군. 천장을 걷어내면 지붕 구조 목재들은 깔끔할까? 상량문 적힌 종도리가 꼭대기에 걸려있을까. 죽은 쥐 시체 세 마리쯤 있는 거 아냐?'

그러다보니 벽면 하나가 책으로 가득한 서재(그 중 많은 수가 왕년에 불온서적의 명예를 차지했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들이 많았습니다)와 침실 벽에 붙은 주변 동네 지도, 한 장씩 뜯어내는 옛날식 일력, 간결하게 정리된 주방, 몇 안 되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오면서 집주인의 성격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 선생님이 억울하게 감옥에 있을 때 부모님이 이 집을 지었고, 본인의 자식들이 이 마당에서 뛰어 놀았을 때 함께 있지 못했으며, 출소 후 가족들과는 멀어지고 부모님과 이 집에서 함께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20년 정도 혼자 사신 이야기를 들으며, 집에 대한 선생님의 애환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녁 지금여기에 기억발전소팀과 간략히 정리하던 자리에서 그날 느낀 여러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마치 미리 계획했다는 듯이 즉흥적인 말을 꺼냈습니다.

"강 선생님이 사시던 집을 그대로 놔두고 새 건물은 마당에 좁게 지으면 어떨까요? 어차피 우리 공사비도 없는데 이 집을 기념관으로 쓰면 돈을 아낄 수 있잖아요?"

  

그날 밤에 숙소에서 그려본 그림. 혼자 살아왔던 집과 더불어 살아갈 집이 대비되게 하고 그 사이 외부공간에서 사람들이 노닥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지금여기에

 
'수상한 집'의 탄생

공간 만드는 일을 짧은 시간 해오면서 건물 지을 땅을 보고 일필휘지로 계획안 스케치를 그려내고 그것을 엇비슷하게 현실로 만드는 대가들은 항상 로망이면서도 한편으로 '저 스케치는 고민고민 끝에 설계를 다 해놓고 나중에 그렸을 거야 아마'라고 냉소하는 스케치 알못('알지못하는'의 줄임말)의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역시나 저의 첫 스케치는 잘 풀리지 않아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일단 집주인 어르신의 연세를 생각하면 1층에 주택이 있어야 하는데, 기존 건물과 주차장을 제외하고 15평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1층에는 주택 외에도 휴게공간, 게스트하우스 출입 동선이 필요했습니다. 면적 퍼즐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강 선생님은 자신에게는 작은 방만 하나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 이상은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편 초기 계획안대로라면 기존 건물의 보존이 아니라 방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작은 건축 면적으로 50평을 확보하다 보니 3층이 될 수밖에 없는 새 건물에 비해 기존 집이 너무 빈약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등의 고민으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중에, 기억발전소에서 이상한 연락이 왔습니다.

"실장님, 좀더 구체적으로 조작간첩전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 집의 이름을 지었어요. '수상한 집'이요."

수상한 집이라니! 수상한 사람으로 조작된 말 못할 개인사들이 사실은 이런 내용이라고 대놓고 말하자는 배짱이었습니다. 수상한 것과 수상하지 않은 것의 기준을 국가가 정하던 시절이 과거가 돼버린 지금은 '수상하다'를 어떻게 쓰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제 이 건물은 기념'관'이 아니라 '집'이 되었습니다.

집 위의 집

'수상한 집'이라는 희대의 이름에 발맞추어 설계안을 이리저리 해체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 1층에 필요한 기능을 확보하려면 주택 부분만 최소한으로 구획하여 적절한 위치에 놓고 기존 건물과 주변 마당 등 나머지 대지 전체를 휴게 공간과 전시공간으로 쓸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기후나 날씨 변화에도 큰 무리없이 사용하려면 완전한 실내 공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지의 많은 부분이 지붕으로 덮여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 그러려면 좁게 3층으로 지으려고 했던 건물의 상부층을 대지의 공중으로 넓게 펼쳐서 1층의 지붕이자 2층의 바닥이 되게 하면 어떻게 되려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편 이름에 걸맞게 대충 보면 이 동네에 원래 있던 집들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보면 볼수록 이상해 보이고 궁금해지는 집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내용은 공사가 진행되며 만나게 된 동네 이웃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분들 중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옥살이 하던 이가 보상금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다소 비아냥거리는 분들이 있었는데, 무시하고 싶다가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해보이기도 아니기도, 배가 아프기도 아니기도
한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짜깁기해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필로티 구조가 아니라 위의 내용들을 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필로티 구조를 생각했다. ⓒ 지금여기에

 
평범한 집 위에 떠있는 평범한 집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기존의 집과 마당은 휴게 및 전시공간이 되고, 주인 어르신의 새로운 거주 공간 상자는 2층으로 올라 갈 수 있는 발판이 되며, 2층은 손님들의 집이 됩니다.

이것은 증축인가 신축인가

위의 수상한 계획안을 내부적으로 공개하자, "와, 너무 좋네요"라는 관계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숨어있는 '좋긴 좋을 것 같은데 이게 진짜 되긴 되는 거냐?'는 반신반의를 느끼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또한 대략적인 감만 있을 뿐 엄밀하게 법적, 구조적,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이것이 증축인지 신축인지, 기존의 집을 그대로 놔두고 기초와 주요 구조부를 시공할 수 있는지, 우리가 가진 예산 안에서 과연 지어질 수 있을지 검토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기존 건물이 존재하는 상태로 일어나는 건축행위이므로 법적으로는 증축이지만, 공사 규모는 주요 구조부가 기존 건물과 독립되어 있는 신축으로, 신축 같은 증축이 됩니다. 그리고 기존 건물의 손상없이 그 상부로 긴 스팬의 슬래브를 만들 수 있는 철골 구조를 채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기 계획안보다 커진 규모를 같은 예산으로 만들기 위해 저렴한 건축 재료의 대명사, 일명 샌드위치 패널 구조를 고려하게 됩니다.

"저기… 선생님, 집을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마 공사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 짓는 게 아니고 무슨 창고를 짓나보네'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런 얘기에 너무 흔들리지 마시고 저를 믿어 주세요."

샌드위치 판넬은 각종 단열재에 약 0.45mm의 얇은 철판을 양쪽으로 접착하여 강성을 가지게 한 재료로, 생산단가가 저렴하고 조립이 간편하여 각종 창고, 공장, 상가 등에 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는 건물은 전체 공사비도 낮기 마련이고, 따라서 샌드위치 패널 공법이 가지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못한 채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샌드위치 패널이라는 재료가 사람 사는 주택에선 사용하지 못할 몹쓸 재료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샌드위치 패널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재료의 최종 표피가 철판이라 창호주변, 건물 코너 등 각종 연결 부위에서 내외부의 열이 쉽게 전달되어 결로, 단열 손실 등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 수만 있다면 예산을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릇처럼 해오던 생각이 있습니다.

'재료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사람이 문제다.'

현장에서
 

외장 마감재가 설치되기 전 샌드위치 판넬 공사중 2019.2.12 ⓒ 지금여기에

 
한 편의 글로 다 말하기 힘든 우여곡절의 시간들을 넘어와 현재 약 70%의 공정률로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이 집은 왜 안 부숴요? 언제 부숴요? 이 오래돼서 보기 싫은 집 철거하고 깨끗하게 새 건물 올리는 게 훨씬 낫지 않아요?"
"아니, 샌드위치 패널 건물에 뭘 그렇게 과하게 단열을 신경 써요?"
"2층 건물인데 높이는 3층 높이네. 이러면 냉난방비 많이 나와서 안 좋은데."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듣게 되는 각종 비평에 일일이 대답할 재간이 없어서 그냥 허허실실 농담을 주고 받곤 합니다.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의 수많은 결정은 오만가지 사연과 고민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어서, 마치 누가 저에게 '너는 왜 그런 사람이 되었니'라고 물으면 엄마 뱃속부터 얘기해야 할지 학창시절부터 얘기해야 할지 막막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의지로 이렇게 된 것인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집이란 것도 사람이 '만들어 내는' 부분보다 어떤 시간을 거치면서 '나오게 되는' 부분이 훨씬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 집의 시작이 어디인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와 강 선생님의 결정부터라고 할 수도 있고, 그보다 오래된 얽힘부터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과정 중 2017년 말부터 합류해 '수상한 집'이 나오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열흘간은 제주에서 건설 노동자로 사는 오랜 친구 한 놈과 함께 직접 외벽과 지붕의 마감재를 붙였습니다. 예상보다 다소 초과된 공사비를 만회하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외장재 또한 칼라 강판이라는 저렴한 재료인지라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데 저 멀리서 광보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걸어오십니다.

"선생님, 밖에서 보면 어때요? 괜찮아 보여요?"
"응. 이제 좀 집같이 보이네. 허허허."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원일은 건축사무소 '미용실'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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