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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남부 주요 항구도시 아가디르 대서양 전경. 수많은 한국인 마도로스들이 거쳐 간 바다이다.
 모로코 남부 주요 항구도시 아가디르 대서양 전경. 수많은 한국인 마도로스들이 거쳐 간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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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중심 제마엘프나 광장.
 "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중심 제마엘프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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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에서 만난 중국인 맥시 장

카사블랑카에서 남쪽으로 250킬로미터. 서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기점인 아틀라스 산맥 기슭에는 붉은 빛깔의 고도시 마라케시가 있다. 1062년 베르베르인들의 알모라비데 왕국의 수도로 건설된 이곳은, 페스 다음으로 오래된 역사 도시이고, 많은 여행자들이 사하라 사막 투어를 떠나는 출발점이다. 

온갖 사람들로 붐비는 '제마 엘 프나, 사자의 광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피리 소리에 몸을 흔드는 코브라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현지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해질 무렵이면, 광장은 마치 거대한 서커스 무대처럼, 원숭이와 독수리 조련사, 전통음악 연주가, 천연 염색제 헤나 화가, 피에로, 격투기선수 등등 별의별 기인과 상인들이 어우러져 시끌벅적해졌다.

마라케시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개중에서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숙소에서 만난 광저우 대학생 맥시 장(Maxxie Zhang)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네가 가진 남한 여권이 부러워. 유럽이나 아메리카 많은 나라를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잖아. 중국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주 많아. 미국이나 유럽은 중국인의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비자를 줄 때 직업과 재산 증명을 요구해. 가난한 대학생인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아. 모로코는 거리가 멀지만 비자가 필요 없으니까 중국인들이 많이 오지.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해. 부자는 아니지만 과외로 돈을 모어서 방학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있어. 중국 대학교 학비와 기숙사비는 아주 저렴해서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나면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사람들과 나누고, 여행하고, 혼자일 때 행복을 느껴. 단순하게, 마음이 가는대로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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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같은 페스보다는 덜하지만 마라케시의 메디나(구도심) 골목도 무척 복잡해서 처음 가는 장소에서는 늘 길을 잃고 헤맸다. 모로코 전통가옥인 '리야드'식 숙소의 직원들은 이슬람 사회의 휴일인 금요일을 맞아 전통음식인 '쿠스쿠스'를 요리해 숙박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입맛에 딱 맞지는 않았지만, 노란 옥수수 가루 위에 야채와 고기를 얹어 쪄낸 커다랗고 화려한 쿠스쿠스를, 혼자가 아니라 꼭 주변 사람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쿠스쿠스 프라이데이'를, 숟가락을 부딪혀가며 함께한 사람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제마엘프나 광장의 낚싯대 뽑기 놀이. 상품은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다.
 제마엘프나 광장의 낚싯대 뽑기 놀이. 상품은 코카콜라, 환타, 스프라이트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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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디르 마도로스

모로코의 주요 여행지는 카사블랑카, 마라케시, 페스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하라 사막이 펼쳐지는 남쪽으로 가면 여행자의 숫자는 부쩍 줄어든다. 버스를 타고 마라케시에서 아가디르로 이동하는 동안, 곳곳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사막과 희뿌연 모래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틀라스 산맥에는 눈이 덮여 있고, 서늘한 비가 쏟아져 건조한 땅이 흠뻑 젖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맞는 비였다.

이 지역은 미승인 국가 서사하라와 모로코의 영토 다툼이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다. 서사하라 국경으로부터 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모로코 남부의 주요 항구도시 아가디르가 있다. 이곳에서 수산물 수출업을 하는 친척 형이 살고 있어서, 일주일 동안 머물며 쉬어가기로 했다.

촌수로는 형이지만 나이는 내 어머니보다 한 살이 더 많은 형이다. 정확히 모르지만 따지자면 삼촌, 사촌보다 몇 걸음 더 먼, 그러니까 꽤 먼 친척이다. 고향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면 종종 보았지만 최근 십 년 쯤은 마주친 적도 없다.

평생 동안 안부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다가, 내가 필요하다고 불쑥 연락을 하고 신세를 지기가 무척 겸연쩍었지만, 나는 지금 세계 여행자니까 뭐든 기회가 오면 피하기 보다는 부딪혀 보자고, 없던 용기를 냈다. 이 머나면 타지에서, 촌수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초이든 팔초이든 친구 아이가! 아니, 아따 친척 아니냐아!'
 
모로코 남부 주요 항구도시 아가디르 전경. 수많은 한국인 마도로스들이 거쳐 간 곳이다.
 모로코 남부 주요 항구도시 아가디르 전경. 수많은 한국인 마도로스들이 거쳐 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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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저 늘샘입니다. 지금 마라케시인데요, 괜찮으시면 월요일쯤 아가디르로 가려고요. 제가 핸드폰에 유심이 없어서 통화를 못해요. 주소 알려 주시면 버스 타고 집 앞까지 찾아가서 현지인 전화기 잠시 빌려서 연락드릴게요. 오후 대여섯 시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형은 나를 위해서 세계 최고로 친다는 대서양 문어와 아르간 오일의 원재료인 아르간 열매를 먹고 자란 염소, 대추야자며 온갖 과일을 대접해 주었다. 여행 중에 못 먹던 기름진 음식을 배 터지게 먹으며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한율 형은 젊은 시절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마도로스였다.
 
아르간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는 염소들. 아르간 오일로 유명한 아르간 나무는 아가디르 지역에서만 자라는 특산물이다.
 아르간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는 염소들. 아르간 오일로 유명한 아르간 나무는 아가디르 지역에서만 자라는 특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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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 선원이 많을 때는 여기 아가디르에만 한국인 2천 명이 살았다. 모로코 바다가 지중해랑 대서양이 만나는 곳이라서 세계적인 황금어장이고. 70, 80년대에 여기서 일했던 한국 선원들이 모로코 어업을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 지금은 고생스럽게 배를 타려는 사람이 없으니까, 선원은 아무도 없고 선장들만 몇 명 남아 있다."

1960년대, 70년대에 독일에서 일한 남한의 간호사와 광부들, 중동에서 일한 건설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적이 있는데, 모로코에서 원양어선을 탔던 남한 선원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생소하고 놀라웠다.

"전에는 한국 선원들이 돈 벌려고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이제 한국에서 동남아나 중국인 선원들을 쓰니까, 시대가 완전히 바뀐 거지. 여기는 이제 선장들도 몇 명 안 남았으니까 다 사라지기 전에 그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잘 아는 선장한테 내 스마트폰을 하나 맡겨서 촬영을 좀 부탁하려고. 유튜브에 올려서 사라져가는 역사를 소개하고 싶다."
"저같이 시간 많고 카메라 다루는 사람이 한 번 배에 따라 타면 좋은데, 배는 워낙 멀미가 심해서 아무나 못 탄다 그러더라고요."
"그럼. 그건 못 하지. 보통 사람들은 원양어선 못 탄다. 배가 얼마나 흔들리는데. 바람이 좀 불면 커다란 배가 바다 밑으로 잠수하다시피 해서 간다."


저 광대한 바다에는 얼마나 수많은 뱃사람들의 노동과 고독, 오랜 세월이 깃들어 있을까. 달팽이관과 비위가 약해서 버스만 타도 멀미가 잦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선택과 포기의 연속, 여행자의 길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특별히 새로운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 많지 않다. 세계 여행자의 시간은 머무름보다는 떠남과 낯섦이 잦아서 선택과 포기의 순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여행을 떠나기 전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는 막연히 아프리카를 일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아프리카를 여행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부 아프리카 여행을 말렸다. 전쟁 중이거나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가 많고, 국경을 넘는 교통수단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은 멘탈리티(정신체계)가 달라서, 나이키 신발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었다. '카더라'는 말은 온전히 믿을 수 없고, 그런 편견에 직접 부딪혀 보고 편견을 깨는 것도 내 여행의 목적이므로 보통은 크게 걱정하지 않을 터였다.

모로코에서부터 서부, 중부, 남부 아프리카를 돌아 동부까지 가려면 어림잡아 스무 개 이상의 나라를 지나야 하고, 나이지리아, 카메룬, 콩고민주공화국 등 특히 위험하다고 알려진 나라들을 지나야 한다. 비행기로 위험 국가를 건너 뛸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에는 비행기 이용객이 적어서 저가 항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50여 개 나라 중에 무비자로 여행 가능한 국가는 모로코, 남아공, 보츠와나 뿐이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적게는 25달러, 많게는 80달러의 비자 비용이 든다. 돈을 낸다고 모든 국경에서 바로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도 아니다. 인근 국가 대사관 찾아가 서류를 제출하고 며칠을 기다려야 비자가 나오는 나라들도 많다.

위험과 비용과 복잡함. 그 모든 핑계를 바탕으로 나는 서부 아프리카를 포기하고, 동부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동유럽 헝가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발칸반도의 나라들과 터키를 여행한 뒤, 이집트로부터 남쪽으로, 다시 아프리카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다.

나는 좀더 무식하고 더 몰라서 용감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친척 형은 수 년 전 선원들 몇 명과 함께 승용차를 운전해 남아공에서부터 모로코까지 서부 아프리카를 종단했다고하니, 그 모든 경고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일주는 어떻게든 가능한 모양이다. 포기와 선택에 뒤따르는 아쉬움을 여행기로나마 기억해둔다.

서부 보다는 동부 아프리카가 덜 위험하고 관광지도 많다고 들었지만, 동부 아프리카 종단도 결코 쉽지는 않으리라. "서아프리카는 지난 삼십 년 간 지속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동아프리카는 최근 테러와 영토 분쟁으로 서쪽 보다 다섯 배 쯤 더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강대국들이 입맛대로 국경을 그어놓은 뒤로 줄곧, 아프리카가 위험하지 않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겨지던 때가 과연 있기나 했을까. 여행이 쉽지 않다는 인도와 남미에 갈 때 보다 동아프리카행을 앞둔 지금이 조금은 더 떨린다. 이곳 모로코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뎠지만 아직 미지의 아프리카 세계로 가야할 모험의 길은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메디나(구도심) 시장, 퇴근 시간의 야채 가게 모습.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모로코를 떠난다.
 메디나(구도심) 시장, 퇴근 시간의 야채 가게 모습.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모로코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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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에서 동유럽으로 지중해를 건너가는 길. 모로코 건조지대의 마을(위)과 아래 이탈리아 항구의 야경(아래). 불빛의 차이에서 확연히 다른 삶의 차이가 느껴진다.
 서아프리카에서 동유럽으로 지중해를 건너가는 길. 모로코 건조지대의 마을(위)과 아래 이탈리아 항구의 야경(아래). 불빛의 차이에서 확연히 다른 삶의 차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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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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