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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N]은 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면N]입니다.[편집자말]
"제가 교도소 생활 한 27년 정도 한 것 같은데... 저한테 면회 온 사람은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그의 왼쪽 검은 눈동자 가운데엔 커다란 흰색 '구멍'이 나있었다. 그는 왼쪽 눈이 아예 안 보인다고 했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난 수염은 오랫동안 정리가 안된 듯 삐쭉삐쭉했다. 왼쪽 다리가 불편한지 그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연갈색 교도소복 차림을 한 그의 앞엔 두꺼운 투명 벽이 놓여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벽에 설치된 음향 장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교도소가 더 편해" 출소 2달 만에 범죄 또 저지른 전과 62범 (중앙일보)
"교도소 보내달라" 전과 62범 출소 2달 만에 또 구속 (SBS)
무전취식으로 교도소行 50번 (문화일보)


지난 3월 5일, '전과 62범'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지 두 달밖에 안 된 이 남자가 다시 교도소에 돌아가고 싶어 일부러 무전취식을 했고, 결국 다시 구속됐다는 보도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월 26일 광주 서구 상무지구의 한 주점에서 34만원 가량 술을 마신 뒤 술값을 내지 않았다. "교도소가 편하다"며 영장심사를 포기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무전취식' 전과만 50범이라고 했다.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인 박아무개(49)씨 얘기다.

설날, 경찰서에서 먹은 라면
  
 박씨가 체포됐던 광주서부경찰서 형사과. 광주서부경찰서 경찰들은 박씨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가 체포됐던 광주서부경찰서 형사과. 광주서부경찰서 경찰들은 박씨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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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광주로 갔다. 이 사건을 맡았던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들은 박씨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은 갸가 체포된 날보담 한 20일 전에도 한번 우리 경찰서에 왔었어. 그때가 설날 연휴였는디. 아 그때도 무전취식이지. 야는 다 그거야. 근데 그땐 인자 술 먹고 여자 부르고 돈 안 낸 거지. 근디 며칠 이따 지가 파출소 가서 자수를 해부렀더라고. 불러다 놓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좀 딱하더라고. 명절에 뭐 아무도 없는 거야. 연락되는 가족도 없고, 주변에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고, 지갑도 없고, 10원짜리 한 장도 없어. 밥 안 먹었다 그러길래 컵라면 두개 끓여서 줬더니만, 캬 진짜 얼마나 밥을 못 먹었능가, 그냥 허겁지겁 먹더라고 막. 고맙다믄서."

이남열 광주서부경찰서 형사2팀장의 말이었다. 그에 따르면 설날 전날이던 2월 4일 광주에서 무전취식을 한 박씨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경찰에 자수했다. 앞선 지난 1월말 역시 무전취식으로 경북의 한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얘기였다.

박씨는 조사를 마친 뒤 풀려났다. "전과는 많은데 이런 식으로 다 소액 범죄길래, 내가 '아야, 나이도 50도 안 됐고 젊은데 이러지 말고 나가서 막일이라도 혀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고 가더라고. 워낙에 돌아다니는 애니까 그게 끝인 줄 알았지." 이 팀장이 말했다.

그러나 이 팀장과 박씨는 불과 20일만에 다시 만났다. 보도된 것처럼 지난 2월 26일 박씨가 수갑을 찬 채 무전취식 현행범으로 체포돼 또다시 경찰서에 붙잡혀온 것이다. "아니 영장실질심사도 안 받겠다는 애가 있다는 거여. 그래서 대체 누구여 하고 봤더니 저번에 라면 끓여줬던 그 놈이더라고." 이 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당시 박씨를 인솔했던 경찰은 "박씨가 신안 염전에서 일주일 정도 일하다 다리를 다쳐서 그만 뒀고, 다시 광주로 와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면서 "술집 사장은 박씨가 '나 돈 없으니 경찰에 신고하시라'고 진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 애들은 빵집(교도소)에서 빵이나 먹어야 돼. 빵에 산 시간이 밖에서 산 시간보다 긴데 사회에 어떻게 적응을 하겠어?", "그냥 배고프고 추우니까 계속 들어가는 거야. 그런 애를 왜 취재하는 거야?" 지나가던 형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냉소 섞인 말들을 뒤로 하고 이 팀장이 말했다.

"두 번째로 보니까 좀 더 그렇더라고. 지가 나와서는 노동하고 살 수가 없으니까 그냥 교도소에서 살겠다는 거여. 그래서 그냥 나도 그랬어. 아휴 그래, 자네는 차라리 교도소 가서 쉬어라. 자네는 그게 낫겠다. 나와봐야 아는 사람도 없고, 몸도 불편하고..."

"확 불 질러버릴까"
  
 박씨가 현재 수감 중인 광주교도소.
 박씨가 현재 수감 중인 광주교도소.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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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있다는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수용자 번호 OOO번. 그에겐 하루에 단 한번 10분간의 외부인 접견이 허용되고 있었다. 접견 신청을 마친 뒤 40분 정도 기다리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여길 어떻게... 주변 사람요? 없죠. 광주에도 아는 사람이 있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어떻게 돌아다니다가..."

박씨는 광주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을 비롯해 성남, 춘천, 인천, 수원, 대전, 부산, 창원, 제주를 넘나드는 전과 기록들은 그가 떠돌며 살아온 흔적이었다. 미혼인 그는 집도 없고 가족은 물론 친구도 없다고 했다. 실제 박씨의 마지막 주소지로 돼있던 광주 북구 운암동 일대와 그가 술값을 치르지 않은 광주 서구 상무지구 주변을 수소문 해봤지만, 그에 대해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박씨가 무전취식을 한 주점이 있는 광주 상무지구. 박씨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박씨가 무전취식을 한 주점이 있는 광주 상무지구. 박씨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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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자 그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동그란 백태가 들어찬 왼쪽 눈은 특히 병세가 심각해 보였다. 그는 자기가 예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머리를 다쳤다고도 했다. "여기저기 아파요. 오래 전이긴 하지만 머리를 다쳤어요. 머리를 다쳤으니까 장애를 가진 거죠. 그렇다고 장애인은 아니에요..." 초면의 그는 다소 횡설수설했다.

"요즘 뉴스에 보면... 하도 안 좋은 일들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거 보면 나도 그냥 확 불 질러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안 되긴 하는데. 그러면 안 되긴 하지만..."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2남 5녀 중 다섯째였다는 그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고향인 강원도 태백을 떠났다고 했다. 가족과 근근이 연락만 이어가던 23살쯤 자신의 엄마가 친모가 아니란 걸 알고 그때부터 아예 연을 끊었다. "한 10년 전인가 엄마가 죽었다는 것도 서류를 보고 알았고..." 그렇게 30년을 홀로 살았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얘기가 시작되려는데 접견이 끝났다. 10분은 너무 짧았다.

"여기선 내 몸을 더 쉴 수가 있어요, 밖에선 뭐"
  
 광주교도소. 박씨는 "27년 교도소 생활 중 면회 온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광주교도소. 박씨는 "27년 교도소 생활 중 면회 온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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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3월 26일 아침, 다시 광주교도소를 찾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죠 뭐. 가출하고 나서 성남에 있는 인형공장이나 서울 송파구에 있는 식당에서 그릇 닦이도 해봤는데... 객생활을 한 거죠, 쉽게 말하면. 이렇게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에요. 노가다도 하고 배도 타고. 주로 노숙 생활을 많이 했어요. 서울 빌딩 이런 데에 그냥 박스 깔고 자고요. 근데 교도소 생활을 한 27년 했으니까... 이번에 어쩌면 30년 채울 수도 있겠네요."

얘기를 전해듣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된 걸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교도소가 더 편하다고 했다.

"교도소에 자진해서 온 게 맞냐고요? 맞죠. 교도소가 더 편해요. 여기선 내 몸을 더 쉴 수가 있어요. 밖에선 뭐 아무것도 안 되고 대접도 안 해주니까. 아프다고 해도 거들떠도 안 보고. 춥고. 에이, 그래, 이럴 거면 술이나 한잔 먹고 들어가자. 그래서 이렇게 된 거죠. 스스로 들어온 거 맞죠."

전날 접견 때도 그렇고 그는 '엄마' 얘길 유독 반복했다.

"술이야 뭐... 엄마가 친모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제가 훅 돌아버려서... 술도 더 많이 먹게 됐죠. 근데 하, 참 나중에 엄마 죽은 것도 모르고... 가족이랑 연락이요? 26살 땐가 집에 한번 전화해보니까 아버지가 '너 왜 안 죽고 아직 살아있냐'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아예 전화 걸 생각도 안 했어요."

그의 이야기는 전날보다 훨씬 차분했다. 그래도 10분은 또 너무 짧았다. 속절없이 접견이 끝나갈 무렵, 그가 뜻밖의 말을 전했다.

"27년 교도소 생활 동안 저한테 면회 온 사람은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어제 기자님 뵙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더라고요. 왜냐고요? 음... 나의 얘기를 들어주니까? 행복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좀 정에 굶주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나이는 49살인데. 어떨 때 보면 마음은 애 같다는 생각을 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곧장 답이 돌아왔다.

"커피가 좀 먹고 싶어요. 따뜻한 커피. 믹스 커피..."

그의 최후 진술 "어떤 벌을 주셔도 항소 안 하고..."
  
 지난 3월 26일 재판을 받으러온 박씨가 서있던 광주지방법원 법정.
 지난 3월 26일 재판을 받으러온 박씨가 서있던 광주지방법원 법정.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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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를 통해 마침 3월 26일 오후에 재판이 예정돼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광주지방법원을 찾았다. 수갑을 찬 박씨가 다리를 절며 법정에 들어왔다. 방청석에 그를 보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씨가 기자를 알아보고 눈으로 인사했다.

검사는 박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박씨의 최후 진술은 여타 피고인들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가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피해자 분한테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판사님께서 제게 어떠한 벌을 주셔도, 항소 안 하고 죄에 대해 참회하면서 돌아보겠습니다."

박씨는 이달 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박씨는 재판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했다. 검찰의 구형대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떨어지면 그는 1년 6개월 동안의 새 안식처를 구하게 되는 걸까? 재판을 마치고 경찰에 이끌려 나온 박씨가 기자를 보고는 연신 허리를 꺾으며 인사했다.

박씨의 얘기를 더 듣지 못하고 광주를 떠났다. 더 많은 얘길 듣기 위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직 답장이 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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