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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철모 화성시장이 3월 2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방문, 헌화하고 있다.
 서철모 화성시장이 3월 2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방문, 헌화하고 있다.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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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km.
건장한 성인 남성도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다.

1919년 3월 1일 화성 주민 약 2500여 명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일본군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서로에 의지해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목숨을 걸고 그 길을 걸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화성시(시장 서철모)는 선조들의 고귀한 투쟁과 희생이 어린 이 만세길 31km 전 구간을 정비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되살렸다. 화성시는 오는 6일 오전 10시 화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화성 3.1운동 만세길' 개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개통식이 끝나면 학생, 시민 등 450여 명이 치열했던 '화성 3.1 운동'의 역사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릴레이 걷기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투쟁과 희생이 어린 만세길,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되살려

화성 3.1 만세 시위는 독립운동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직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마을과 마을이 연합해 모인 약 2500여 명의 대규모 군중은 일본군의 총칼에도 물러서지 않고 장안면 사무소, 우정면 사무소, 화수리 경찰관 주재소 등을 차례로 공격해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안내센터 전경
 화성 3.1운동 만세길 안내센터 전경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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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부터 만세길 조성사업을 시작한 화성시는 역사적 고증 작업을 거쳐 31km에 달하는 '화성 3.1운동 만세길'을 복원해냈다. 독립운동가 차희식, 차병혁, 백낙열, 김연방, 최진성 선생의 유적지와 횃불 시위 터, 쌍봉산, 한각리 광장 터, 옛 장안면·우정면사무소 터, 화수리주재소 터 등 총 15개의 항쟁지를 하나의 길로 연결한 것.

화성시는 각 항쟁지마다 이정표와 안내문을 세우고 화성 3.1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만세길 스탬프북도 제작·배포해 시민들이 자신의 탐방 기록을 간직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는 6일 열리는 '화성 3.1운동 만세길' 개통식에는 청소년 만세꾼 100명과 일반 참가자, 국가보훈처 주관 '독립의 횃불' 주자 100여 명 등 총 450여 명이 참석해, 만세길 개통 테이프 커팅식과 풍선 세리머니 등을 진행한다.

개통식 이후에는 옛 우정보건지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방문자센터'에서 출발, 이틀간 구간별로 나눠 총 31km를 걷는 만세길 걷기체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3월 1일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 중 전국 동시 제암리 만세 행사 모습
 3월 1일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 중 전국 동시 제암리 만세 행사 모습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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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체험 1일 차는 ▲차희식 선생 집터 ▲차병혁 선생 생가 ▲수촌교회 ▲옛 장안면사무소 터 ▲쌍봉산 근린공원 코스로 구성됐으며, 2일 차에는 쌍봉산 근린공원에서 집결해 ▲김연방 선생 묘소 ▲옛 우정면사무소 터 ▲최진성 선생 집터 ▲방문자센터로 돌아오게 된다.

기존의 '힐링' 위주의 걷기여행길과는 달리 축사와 농로, 공장지대를 옆에 두고 걷는 만세길이 불편하고 험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각 주요 항쟁지에서 전문 해설사의 역사해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화성 3.1운동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주요 거점 안내문

(1) 차희식 집터
이곳은 1919년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주도적으로 만세 운동을 이끌었던 차희식이 만세 운동 당시에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차희식은 주곡리의 주민들과 함께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하고 전부 불태웠으며, 일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하는 등 격렬하게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차희식의 공훈을 기려 1968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2) 차병혁 생가
이곳은 장안과 우정 지역에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차병혁이 만세 운동 당시에 살았던 곳으로, 화성 지역 독립운동가의 생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차병혁은 장안면 석포리 출신으로 만세꾼들을 인솔하여 어은리의 장안면사무소로 가서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정부는 차병혁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3) 개죽산 횃불 시위터
이곳은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화성 지역민들이 밤마다 산에 올라가 횃불을 피우고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1919년 4월 1일 개죽산을 시작으로 쌍봉산, 남산, 천덕산, 무봉산 등 화성 지역의 각 산봉우리에서는 일제히 횃불이 치솟았다. 산상 횃불시위는 화성 지역민들의 독립 의지를 드높이고 장안면과 우정면 사람들이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4) 수촌리/수촌 교회
이곳은 화성 지역 3.1 만세 운동의 주요 근거지 가운데 하나이다. 수촌리의 주민들은 1919년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수촌리의 많은 주민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는 수촌리 주민들에게 대대적인 보복과 탄압을 가하였다. 수촌리 마을의 가옥 42채 중 38채가 남김없이 불에 탔고 수촌 교회도 파괴되었다.

(5) 옛 장안면사무소터
이곳은 장안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1919년 4월 3일 장안과 우정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하던 만세꾼은 주곡리를 출발하여 석포리, 수촌리를 지나 어은리에 있는 장안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장안면사무소에 모인 사람들은 장안면장에게 만세 운동에 함께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는 면사무소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웠다. 만세꾼들이 면사무소를 모두 불태운 것은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이후 만세꾼은 장안면사무소에서 쌍봉산으로 이동하였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구간(상세모습)
 화성 3.1운동 만세길 구간(상세모습)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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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쌍봉산
쌍봉산은 해발 117m이며, 장안면과 우정면을 아우르는 산이다. 1919년 4월 3일 주곡리를 출발하여 석포리, 수촌리를 거쳐 어은리의 장안면사무소에 도착한 만세꾼들은 면사무소를 전부 불태웠다. 이후 쌍봉산 남쪽 봉우리에 올라 만세를 부르며 독립 의지를 다졌다. 쌍봉산은 화성 지역 3.1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7) 조암리
조암리는 우정면과 장안면 주민들의 생활 중심지였다. 1919년 4월 3일 쌍봉산에서 내려온 만세꾼들은 조암리를 거쳐 우정면사무소 이동하여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일제는 만세 운동에 보복하고자 조암리 마을에 있는 큰 집들만 골라 불을 질렀다. 이에 가옥 10여 채가 불에 타는 등 크게 피해를 입었다.

(8) 김연방 묘소
이 묘소는 고종 42년(1905) 을사늑약 때 낙향하여 교육 운동에 참여하고 3.1 만세 운동을 지원했던 김연방의 묘소이다. 김연방은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산리 일원동에서 태어났다. 고종 39년(1902)에 시종원 시어(侍御)*로서 광무 황제를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김연방은 1919년 4월 13일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으며, 가옥은 모두 불탔다. 그의 묘역에는 '삼일독립운동순국추모비'를 세워 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시어(侍御): 구한말에, 궁내부 시종원에서 임금을 가까이에서 받드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좌시어와 우시어가 있는데, 주임관 직위로 각 1명, 판임관 직위로 합 9명이 있었다.

(9) 옛 우정면사무소터
우정면사무소는 1919년 4월 3일 우정면과 장안면의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항쟁지이나 현재는 없어져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만세꾼들은 쌍봉산에서 독립하려는 결의를 다진 후 조암리를 거쳐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하여 46㎡14평 정도 규모의 초가집인 면사무소를 부수고, 집기와 서류를 불태움으로써 일제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였다.

(10) 각리, 죽리
이곳은 1919년 4월 3일 만세꾼들이 화산리에 있는 우정면사무소에서 만세 시위를 마친 후 화수리 주재소로 이동할 때 한각리 광장 방향으로 나아가며 거쳤던 마을이다.

(11) 한각리∨광장터
이곳은 만세꾼들이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한 후 각리와 죽리를 거쳐 이동해 온 한각리 광장이 있던 곳이다. 한각리 주민들은 한각리 광장으로 들어오는 만세꾼을 맞이하고 화수리 주재소로 이동하고자 대열을 정비하였다. 만세꾼의 한 무리는 오른쪽의 솔밭 길을 넘어서 이동하고 다른 무리는 왼쪽의 한각리에서 화수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화수리 주재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구간 안내도
 화성 3.1운동 만세길 구간 안내도
ⓒ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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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최진성 집터
이곳은 화성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한각리 주민들과 함께 뒷동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며 만세를 불렀던 최진성이 살았던 집이 있던 곳이다. 최진성은 고종 40년(1903) 한각리에서 출생하였다. 면사무소가 파괴되고 일본 순사가 죽임을 당하는 등 만세 운동이 격렬해지자 일제는 주모자를 체포하고 마을에 여러 차례 불을 질렀다. 최진성이 일제의 검거망을 피해 달아나자 일제가 보복으로 최진성의 집에 불을 질렀으나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불을 껐다.

(13) 화수리∨주재소터
이곳은 화성 지역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항쟁지인 화수리 주재소가 있던 곳이다. 1919년 4월 3일 만세꾼들은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모두 불태우고 화수리에 도착하여 주재소를 에워싼 다음 만세를 불렀다. 이에 놀란 가와바타 순사는 만세꾼들에게 총을 쏘면서 달아났고 시위대는 주재소를 모두 불태운 후 가와바타를 처단하였다. 화수리 마을은 주재소가 파괴되었다는 이유로 가옥이 불타는 등 보복을 당하였다.

(14) 백낙열 집터
이곳은 화성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했던 백낙열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백낙열은 장안면, 우정면 지역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장안면 수촌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지역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화성 지역 만세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촌리 구장이었던 백낙열은 1919년 4월 3일 수촌리 주민들에게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우정면 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할 때 앞장서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백낙열의 공훈을 기려 2002년에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15) 가와바타 참살터
이곳은 만세꾼들이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처단한 곳이다. 1919년 4월 3일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우정면과 장안면 주민들은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러자 화수리 주재소에서 근무하던 순사 가와바타는 만세꾼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이경백을 비롯한 만세꾼들이 부상을 입고 희생당하였으며, 만세꾼들은 달아나던 가와바다를 붙잡아 처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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