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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 <이팔청춘 덧없이 지나고 백발에 듣는 정선아라리>에 약속한대로 이번 얘기로 정선아라리는 끝을 맺도록 한다.
 
우리 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엮음아라리로 정선아라리 가운데 맛이 다르게 들렸던 이 대목을 처음엔 전혀 다른 노래를 정선아라리란 이름으로 부르는 줄 알았다. 이런 엮음조가 상당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이 사설이 유독 특별하게 여겨진 건 '노가지나무 지게' 때문이다.

노가지나무는 '노간주나무'로, 지게를 엮을 정도로 가지가 생겨 먹은 걸 설악산에서도 못 봤다. 가지가 원 둥치에서 나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곧장 하늘을 향해 자라는데… 여하튼 나무는 질기고 색이 고우니 지게를 걸 재료만 구한다면 정말 멋지고 튼튼하겠다.
  
산골 아낙에게 "백봉령 넘어가 강릉 삼척에서 소금 사 오마" 약조하고 노가지나무 지게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나간 곰보 남편 과연 소금 사러 나갔을까?

이 사설의 참 맛은 바로 이 멋부림에 있다는 걸 눈치 채는데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노간주나무로 지게를 엮어 놓았다면 그걸로 똥장군을 질 일도 아니고, 지게 소쿠리 매달아 소똥거름을 밭에 내려고 하지도 않았을 노릇이다. 틀림없이 한껏 멋을 부릴 무언가에 작정하고 쓸 생각이었겠다.
 
세상에 못할 장사는 막걸리장사
들어 달란다 부어 달란다 마세까지 달라네
 
노간주나무지게로 제 딴엔 한 것 멋을 부리고 나간 남편이란 인간이 어디 눈여겨 봐둔 술집이 있었지 않았을까. 거기서 몇 잔은 얌전히 제 손으로 따라 마시더니 슬그머니 수작을 걸기 시작하진 않았을까. 술병 집어 달라더니 그 참에 한 잔 따라 보라 시키고, 아예 장사 접고 같이 마시자 말이다.
 
옥양목 석자가 없애졌다고 집안이 덜렁하는데
눈치야 없는 애 저 남아야 새 버선 신구 왔는가
 
봄바람에 겉멋이 든 남자는 고작 저지른다는 짓이 아내 눈 속이고 엽전 몇 냥 들고 나가 술이나 퍼마셨다. 사 온다는 소금은 몇 됫박 외상 달고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금값이 금값이여. 겨우 요만큼 주기에 내 한 줌 모르게 더 담아왔어"라 하얀 거짓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도 있다.
  
산철쭉 5월 초, 영서지방은 냇가 바위에 붉게 피는 산철쭉이 그림 같다. 개꽃, 수달래 등으로도 불리는데 개꽃은 사람이 먹는 참꽃의 반대되는 말로 사람이 못 먹는 꽃이란 뜻이다. 그리고 수달래는 철쭉과 다르게 꽃잎의 크기나 두께감은 진달래 같은데 색이 더 붉고 냇가나 강변에 피어서 붙은 이름이다.
▲ 산철쭉 5월 초, 영서지방은 냇가 바위에 붉게 피는 산철쭉이 그림 같다. 개꽃, 수달래 등으로도 불리는데 개꽃은 사람이 먹는 참꽃의 반대되는 말로 사람이 못 먹는 꽃이란 뜻이다. 그리고 수달래는 철쭉과 다르게 꽃잎의 크기나 두께감은 진달래 같은데 색이 더 붉고 냇가나 강변에 피어서 붙은 이름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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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뉘집 처녀인지 상당히 대차게 일 저지른 여자가 지금 가족들 눈치 챌까 안절부절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옥양목 석자라면 바지 하나도 못 만들 길이지만 알맞게 말라놓은 옷감에서 석자를 잘라 연정을 품은 총각 버섯을 만들어 줬다. 집에서 옥양목 석자가 없어졌다고 온 집안을 뒤집어 찾는데 하필이면 그 옥양목으로 만든 버섯을 신고 찾아왔으니…
 
달룽개 캐러 간다구야 달루꿍 달루꿍 하더니
양지짝에 앉아서 시집 갈 공론만 하네

울타리 밑에다 호박줄 전화 놓고
애동호박 뚱딴지 조화로 임소식 듣네

무정한 기차야 소리말구 가거라
산란한 이내 마음이 더 산란하구나
 
옥양목 둑 끊어 연모하는 청년 버선 만들어 준 정도는 이쯤 되면 얼른 짝 지어 줘야 되겠다. 나이 스물만 넘어도 어느새 마을에서 서서히 자는 만나는 남자 없나? 왜 시집갈 생각을 안 해"란 말들을 몇이 모이면 하는 모습 1970년대 시골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스물 너덧 살 되면 어디 문제 있냐는 말까지 수근 거렸는데, 당사자인들 어찌 그런 말 듣고 싶었겠는가. 짚신도 짝이 있다지만 제짝을 못 만나 속만 태울 분이었을 터.

노랫말을 보아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정선아라리는 봄꽃 피어나듯 발달되어 가지 않았나 싶다. 전화를 그 이전이라면 어디 쉽게 볼 물건이었으며, 정선에 기차가 다니는 풍경까지 노래에 등장하니 이 추측이 타당하다.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디로 갈라고 이 배에 올랐나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앞 남산 실안개는 산허리를 돌구요
우리 님 양팔은 내 허리를 감네

앞 남산 살구꽃은 필락말락 하는데
우리 둘이 정이야 들락말락 하네

오릉촉단 능라주로 날 감지 말고
대장부 긴 긴팔로 날 감아주게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정선읍내야 백모래 자락에 비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안에 잠자나 마나

앞 남산에 황국단풍은 구시월에나 들구요
이내 몸에 속 단풍은 시시때때로 든다
 
정선아라리는 남자들이 노랫말을 지었음직한 사설은 극히 적다. 대체로 여성들이 우물가나 빨래터, 혹은 몇몇 여인네들이 모여 밭일을 하며 왁자하니 웃으며 각각 아는 대로 부르지 않았을까. 혹여 남자라도 지나쳐봐야 "부르는 내가 부끄럽냐. 듣는 네가 부끄럽지"란 당찬 생각으로 도전도 했을 성 싶다.
  
홀아비바람꽃 5월 초까지 홀아비바람꽃은 깊은 산 습한 자리면 무리지어 핀다. 그런데 왜 홀아비바람꽃이란 말인가.
▲ 홀아비바람꽃 5월 초까지 홀아비바람꽃은 깊은 산 습한 자리면 무리지어 핀다. 그런데 왜 홀아비바람꽃이란 말인가.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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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누군가는 조혼풍습에 어린 남편을 얻은 모양이다. 어린 가장 품안에 안겨봐야 속만 탄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남편은 왜 자신을 안을 줄도 모르냐 넋두리도 한다. 그런 남편이니 정이 들락말락 감질만 난다는 상당히 성숙한 여인네의 하소연에, 어린 남편은 "저 누나가 나 무섭게 왜 저러지"하며 지레 겁부터 집어 먹었겠다.
 
담뱃대 모가지 똑 떨어진 거는 분사루나 때고
우리 둘의 정 떨어진 거는 때워 줄 수가 읎느냐

천지야 운기로 눈비가 올라면 땅이 눅는 법이요
가셨던 님이 되 돌아올라면 내 몸이 산란하네

눈비야 오너라 눈비야 오너라 눈비야 오너라
오셨던 낭군이 못 가도록 눈비야 푹푹 오너라

사모잽이 메물에 국죽은 오골박짝 끓는데
당신은 어둘루 갈라고 새보선 신발 하나

눈깔이 사탕은 입에다 물믄은 세 밑이 살살 녹구요
참나무 장직에 매를 맞으면 눈알이 팽팽 돌어요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도 풀은 풀이 아니냐
하루 밤을 자고 가도 임은 임일세

이삼사월 긴긴 해는 점심 굶어 살아도
동지섣달 긴긴 밤이야 임 그리워 못 살겠네

괄세를 할래서 괄세를 하였나
어찌 어찌 하다가 보니 괄세라 하네
 
이 노랫말들은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아낙네들이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지 않았을까. 또는 탄광이 정선 관내 도처에 형성되는 시기에 노두(露頭)를 찾아 온 산을 휘돌아 치는 남편, 덕대(德隊) 하나 꾸려볼 생각에 바깥으로만 나가는 남편을 그리워 읊은 들 이상할 까닭은 없다.

이슬 내리면 이슬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노천(露天)에 널린 탄만 찾으면 하루 아침에 가난뱅이에서 사장님 소리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덕대 한 팀만 꾸려도 어깨 힘은 줄 시절이었다. 요즘 말로야 덕대는 하청쯤으로 이해하면 되지만, 그것도 폭약을 만지는 기술부터 굴진과 채탄에 이력이 붙은 쟁쟁한 실력을 갖춰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남아 어린 자식 거두며 남편만 기다려야 하는 여인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 아닐까.
  
얼레지 ‘바람난 처녀’란 꽃말을 지닌 얼레지는 이른 봄부터 5월 중순까지 제법 길게 만날 수 있는 백합과의 들꽃이다.
▲ 얼레지 ‘바람난 처녀’란 꽃말을 지닌 얼레지는 이른 봄부터 5월 중순까지 제법 길게 만날 수 있는 백합과의 들꽃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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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리까지 갔다 여량에서 산판차를 얻어 타고 저물어 정선읍에 들렸던 날, 올림픽을 치른 이듬해로 기억된다. 봄이 깊어 산자락이 제법 만삭의 여인네처럼 한껏 부풀어 갈 때였는데 종일 비가 내려 하루 정선읍에서 날이 개기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숙소를 잡고 누웠으나 빗소리에 잠이 쉬 들 거 같지 않아 한 잔 마실 생각으로 나섰다.

고만고만한 술집들이 불을 밝히고, 길거리엔 자동차도 제법 늘어 세월이 변했음을 정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끼겠구나 싶었다. 정육점과 같이 술도 파는 가게로 들어섰다. 드럼통 위에 둥근 스테인리스 원판을 얹은 테이블이 댓 개 놓였는데 두 팀이 먼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 팀은 남자들끼리 목 줄기에 낀 탄가루 빼는 덴 돼지기름이 최고란 생각으로 고깃집을 찾은 광부로 보였다. 그리고 한 테이블은 남자 혼자 다방에서 불렀음직한 여자와 앉아 있는데, 커피통을 싼 걸로 보이는 보자기는 풀지도 않았고 마주 앉아 소주잔을 부딪치며 뭔가 소곤거리고 있었다.

갈매기살에 소주를 시켰다. 소주 한 잔을 따라 입에 털어 넣고 기름장 찍어 안주를 하는데 남자끼리 온 팀에서 "아따 그 아가씨 술이 많이 고팠우? 내가 한 잔 줄게 합석하자우"라며 수작을 걸어왔다. 장발에 얼굴 하얗고 몸매는 뒤에서 봐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른다는 걸 알지만 조금 기분은 나빴다.

하지만 그들 기분까지 상하겐 하고 싶지 않아 손짓으로 사양하겠단 의사표시를 하고 다시 소주잔에 술을 따르는데 덥석 손을 잡는 바람에 벌떡 일어섰다. "여보슈, 내가 여자로 보이나 왜 이래요" 한 마디 하자 손을 잡았던 사내가 엉거주춤 물러섰다.

쉬는 날이면 산을 찾아다니거나, 그날처럼 또 새로운 정선아라리 한 자락 얻어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나서곤 하니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었다. 차가 없어 걸어갈 때면 세우지 않아도 뒤에서 차를 세우고 타란 경험도 많았고, 밭둑에서 막걸리로 새참을 먹던 산골 농부도 "도대체 남자요? 여자요"라 물어 남자란 걸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손부터 다가와 잡으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 발 물러서 멀뚱하니 서 있는 사내에게 "술을 마시면 입으로 마시지 왜 남의 손은 붙잡고 난리여"라 쏘아붙였다. 그때 다방에서 배달 온 아가씨로 보이는 여자가 한 마디 했다. "내가 저 오빠 언제든 저럴 줄 알았어. 어지간히 해야지. 맨날 그렇게 껄떡거리면 누가 관심이나 가지나"란다. 월급 타면 다방에 들려 수작을 걸었던 모양이다.
 
살개바우 노랑 차조밭 어느 누가 매느냐
비 오고 날 개는 날에 단둘이 매러 갑시다

수수밭 삼밭을 다 지내 놓고서
빤빤한 잔디밭에서 왜 이렇게 졸라

시누야 올캐야 말 내지 말게
삼밭 속의 보금자리는 내가 쳐 놓았네

호박은 늙으면 단맛이나 나지
사람은 늙어만진다면 단맛도 없네

사랑방에 시아버님은 일 읎는 것도 변이지
울타리 밑에야 개구멍이는 왜 그리도 막는지
 
비 그치고 날 개는 날에 단둘이 김을 매러가자고 하면 눈치껏 나설 것이지 일 하기 싫은 놈팡이는 이때 꼭 일 안 할 꾀를 낸다. 다른 일이 있노라 말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곁다리로 친구를 불러 몇이 어울려 나서니 맘을 주려던 여자가 돌아서버릴 수밖에.

그리고 또 다른 이 사내는 뭘 몰라도 한참 모자라는 바보천치다. 수수밭 지나치고 삼밭도 다 지나친 뒤 몸 하나 숨길 곳 없는 훤히 트인 잔디밭에서 왜 조르는 건지?

그런데 남편인지 다른 남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인은 참 뻔뻔해 보인다. 하기야 시누이나 올케나 같은 여자 아닌가. 그러나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뻔뻔함이 아니라 같은 동성의 여인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이해 해 달라는 애원이 담겨있다. 아마도 서로간의 비밀은 일생 간직하였지 싶다.

문제는 늙은 시아버지다. 눈치도 정도껏 없어야지. 청상과부 며느리가 울타리 밑에 개구멍 뚫어, 사립문짝인지 솟을대문이지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빗장을 질러버리는 시아버지 잠 깨실까 염려하는 그 깊은 속을 몰라도 한참 몰라준다.

정선아라리는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담았다. 그렇게 역사와 함께 발전하여 무한한 노랫말을 지닌, 그리고 학문적인 가치가 큰 살아 숨 쉬는 소리의 문화다.

압제에서 해방과 전란을 겪으며 때로는 직유법으로 그 시대를 반영한 노래를 불렀다. 더러는 은유적으로 자신의 인생과 먼 길 나서야 하는 남편의 무운과 명성을 정선아라리 가락을 빌려 노래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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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