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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갈려고?"

응급의학과 의사, 강서구 PC방 사건의 담당의로 알려진 남궁인의 <지독한 하루>를 읽고 있던 내게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글쎄요… 딱히 이유가 있어서 읽는 책은 아니에요!"

이 짧은 대화는 어쩌면 한국 응급 의료계, 의료 시스템 전반의 현실이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교수님의 물음에도, 내 답변에도, 그리고 우리가 나눈 대화의 뉘앙스에도.
 
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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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가는 까닭

우리 의대생들은 여러 이유와 사명, 목적을 가지고 의대에 진학했다.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누군가는 가업을 잇기 위해, 누군가는 안정적인 전문직을 갖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

의대에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학생과 의사들이 단지 높은 수입을 보고 의사를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안정성이나, 근래 유행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측면에서는 공무원 같은 나은 선택지가 있고, 금전적 수준에서는 의사는 다른 직종들에 견주어 더 이상 많은 수익을 올리는 직종이 아니다. 이미 대기업, 사업가, 공학자, 수학자 들과 소득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의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멘토-멘티 활동의 일환으로 실제 개원가에서 일하고 계신 선배님과의 만남에서 그 해답을 유추해볼 수는 있었다.

개원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환자를 돈으로 바라보고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사는 방식은 금방 지칠 뿐더러, 그런 방식으로는 의사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을 살린다는 사명감, 학회 등을 통해 의학에 기여하고 있다는 성취감, 완쾌된 환자들에게서 오는 충만감 같은 복합적인 것들이 모여 의사를 할 수 있게 만든다고들 하셨다.

이것은 환자의 바이탈(vital)을 다루는 선배(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들을 보면서 느낀 것과도 유사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종, 진료 과목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다.

"나, 사람 살리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프라이드가 당신들 삶의 자존감이었고, 그것이 그들을 다른 의미로 '먹고 살게' 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의대생이 응급의학과를 망설이는 사연


사실, 나는 응급의학과를 가고 싶었다. 연구를 하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고, 성형술이나 안과, 정신과 등을 통해 다른 의미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정말 육신 그 자체를 '살려내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바이탈(Vital)을 다루는 의사의 프라이드에서 오는 눈빛을 본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꿈을 꿀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물론 아직 과를 선택하기까지는 4년이 넘는 기간이 남았지만, 아마 그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이 땅에서 내가 응급의학과를 가기는 아마도 힘들 듯하다..

어떤 직업이 가지는 프라이드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맞다. 사명감이 인간 삶을 추동하는 큰 동기인 것도 맞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첫째, 그런 사명감을 꺾이게 하는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둘째, 사명감이 먹고 살 만한 최소한의 물질적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샌드백인가요?" 폭력에 노출된 응급의학과 의사들
 
"그리고 불시에 주먹이 날아온다. 코뼈가 무너지고 눈앞이 몽롱해진다. 취객은 분이 풀릴 때까지 그를 때린다. 그는 맞서 싸울 수 없다. 제지할 수도 없다. 보통의 인간처럼 맞선다면 곧 그는 만인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폭력에 몸을 내주고 그것이 멈추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도 만류하거나 제지하지 않는다. 응급실 바닥은 의사가 흘린 피로 흥건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자세로 엎드린다. 공권력이 도착해도 사내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머리채를 잡은 채 욕설을 하고 마지막 발길질을 내린다. "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치료했던 의사이자, <지독한 하루>의 저자인 남궁인의 글 일부이다. 같은 글에서는 응급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에게 의자 모서리로 머리를 가격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이후 벌금 100만 원을 선고 받았다고 전해진다.

응급실 폭력은 2018년 기준, 893건(대한의사협회)였다. 의사나 경찰관을 폭행해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폭력은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최근에 징역형을 추진하는 법률이 제안되는 등 개선의 여지를 보이고 있지만,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의사를 환자를 치료해 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닌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사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의사를 조선시대 중인 취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의료인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떤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이국종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사명감의 저하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부분에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기에 망설여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 의료보험 구조상, 복지부의 공식 자료에서도 우리나라는 의사 급여의 보장률이 80% 안팎이다. 즉, 수술 한 건을 할 때마다 그 수술의 20%를 손해 보는 것이다.(매일경제)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라섹, 성형, 피부관리, 비만관리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에서 다수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것을 '비급여'라 한다.

웰빙(Well-being)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이런 수익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비급여'를 믿고 건강보험의 보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산부인과에서도 이제는 비만 클리닉을 한다는데, 이런 비급여 수단이 없는 응급의학과는 병원에게 손해를 안겨주는 과가 될 수밖에 없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서 선장 치료로 유명한 이국종 교수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권역외상센터는 한 해 10억 원이 넘는 손해의 원흉이 되었다.(연합뉴스) 정부의 지원은 부실하고, 그 빈자리는 몇 안 되는, 사명감을 가진 의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국종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사명감'만'으로는 일할 수 없다.

의사를 늘리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렇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사 증가률은 이미 OECD평균인 0.5%를 상회하는 3.1%이다.(메디게이트) 의사를 늘린다 한들, 이런 시스템과 환경 속에서 그들이 과연 응급, 외과 계열에 남을 것인가.

우리 모두가 이국종이 되는 날을 꿈꾸며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국종 교수님이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당신의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시설과 지원 속에서 홀로 싸우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을 것이다. 의사에게는 허무함과 울분은 이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 한 가지로 충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좋은 사회란 선한 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라고. 더 이상 응급의학과의 사람들이 사회적 시스템과 사람들의 폭력, 구조적 취약성에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더해서 이 나라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교수님이 '응급실 가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이국종"이 될 수 있는 날이.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스무 살 청년기자입니다.
대전 소재 의과 대학교 의학과 본과에 재학중입니다.


태그:#응급실, #응급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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