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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이들은 대부분 부조리한 세상의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상태였다. 22년간 그들을 봐왔기에 스스로 고통의 얼굴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집 안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불행을 보자, 나는 아무것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해 5월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대장암이래. 발견이 많이 늦었다고 하네." 놀란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대변에 피가 묻어나온다 했을 때 흘려듣지 말 것을, 평상시보다 많이 피곤해했을 때 눈여겨볼걸. 병원 가길 재촉할걸... 비난이 가슴 위로 쏟아졌다. 세상 구한다고 돌아다니며 정작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담담히 말했다. 

"지난 일 후회해봐야 소용없잖아.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우리 생활은 달라졌다. 줄달음만 치던 삶의 일정을 조정했다. 남편은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2주에 한 번 항암 주사를 맞는 투병 생활 중심으로 삶을 재배치했다. 남편은 하고 있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쉬어본 적도 놀아본 적도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치료하면서 제주도에 좀 살아보고 싶어. 한 달살이 같은 거." 

남편의 말에 나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삼달리에 사는 친구 이상엽.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에 대한 것이다.

소외받은 이들의 친구가 되어준 이 남자
 
이상엽과 박옥순 장애운동하는 박옥순과 자원봉사자로 만난 이상엽은 선후배에서 부부로, 동지와 친구로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
▲ 이상엽과 박옥순 장애운동하는 박옥순과 자원봉사자로 만난 이상엽은 선후배에서 부부로, 동지와 친구로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
ⓒ 삼달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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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장애 인권운동을 하는 박옥순 선배의 남편이자 여러 시민단체에 도움 주는 사람이었다. 여성단체, 장애인단체, 문화예술단체, 야학이나 아동시설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발이 넓어 그를 통해 연결된 인연도 많았다. 또 그런 인연을 통해 도움받은 사람도 많았다. 

다산인권센터 20주년을 앞두고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던 시절, 나는 그를 처음 만난 날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마음만 앞선 요청이었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20주년 인권 콘서트를 치렀다. 많은 음악가가 찾아와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20년 인권운동을 되돌아보는 자리는 감동으로 넘쳐 흘렀다. 그의 덕이 컸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연결되었다. 

송전탑에서 농성 중이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으로 희망 버스가 떠나던 날, 세월호 가족들이 처음 광화문 광장에서 둥지를 틀 던 여름 무렵에도, 우리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파산 지경에 놓인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위한 일에도 그는 언제나처럼 거절하지 않았고 거칠고 험한 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간 살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을 듣자마자 대뜸 그에게 전화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라면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든 알려줄 것만 같았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삼달리로 향했다. 우리는 그가 제주에 땅을 사고, 삼달다방 터를 닦고, 다방 기초를 세워 집을 올릴 때마다 들렀었다. 남편과 찾아갔을 때 다방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를 소개했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난 우리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해주었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들이 좋기만 하다면, 삼달다방에서 묵어요. 언제라도. 기다릴게요."

삼달다방을 지은 이유 
 
삼달다방 전망 무지게색 숙박동과 파란색이 고은 다방 두채
▲ 삼달다방 전망 무지게색 숙박동과 파란색이 고은 다방 두채
ⓒ 삼달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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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퇴직금과 경기도 안양시의 아파트를 모두 처분한 후 제주도로 내려와 장애인, 비장애인,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무지개색 알록달록한 숙박동과 파란색 고운 다방동을 건립했다. 말만 다방이었다. 돈을 받아 영업하는 영리 활동은 만년 대기 중인 채로 공짜 차 나누는 날들만 이어졌다.

민박 요금은 언제 정할 것인지, 다방 영업은 언제 시작할 것인지 생각날 때마다 물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직은 버틸 만해요. 지금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몇 년 동안 사생활 공간도 없었다. 친구들이 오면 방을 모두 내주고 다방 2층에서 잠을 청했다. 그곳이 좋다고 했다. 몇 년간 대부분 그의 잠자리였던 2층에선 삼달리의 밝은 해가 떴고, 삼달다방으로 스며든 저녁 햇살이 수많은 책 사이로 졌다.

그런 그에게 도전할 만한 일이 찾아왔다. 자신의 친구이자 박옥순의 동료이기도 한 장애인 인권운동가 이규식이 전 재산을 송금했다. 주택청약 통장을 해약해 보낸 500만 원이었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길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장애로 인해 오랜 시간 시설에서 생활한 이규식은 이상엽이 있기 전까지 제주로 여행을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귀한 돈이면서 무서운 돈이었다. 이미 퇴직금과 살던 집까지 팔아 공간을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인데, 다시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엽은 이상엽다운 결정을 내렸다. 

"이러려고 내가 여기 온 거였지! 장애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누구라도 한 달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제주도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익활동가들이 긴 시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만들어 보자."
 
친구 이규식과 이상엽 이규식은 전재산을 이상엽에게 줬다. 무섭고 무거운 돈이었다.
▲ 친구 이규식과 이상엽 이규식은 전재산을 이상엽에게 줬다. 무섭고 무거운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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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의 힘을 빌려 공사를 시작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직접 노동을 하고, 자재를 실어 날랐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렇게 '이음동'이 세 번째 건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상엽은 남에게 도움 주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제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대출을 얼마나 받은 거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물을 때도 말하지 않았다. 답답한 친구들이 모여 닦달하고 나서야, 그에게 꽤 큰 빚이 있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은 함께 도모하기로 했다. 삼달다방에서 얻은 희망과 이음동에서 얻게 될 휴식을 나 몰라라 하지 않기로 말이다. 그가 우리에게 베푼 선행처럼, 다시 다른 많은 이들에게 나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힘들면 언제든 여기서 쉬어가세요"
 
이음동 공사하는 모습 이음동을 공사하는 이상엽과 친구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1억가까운 공사비용은 빚으로 남았다.
▲ 이음동 공사하는 모습 이음동을 공사하는 이상엽과 친구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1억가까운 공사비용은 빚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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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투병 생활이 1년째가 되어간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우리 앞에 닥친 불행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함께해야 할 고통이라면, 소란할 필요 없이 삶 가까이서 맞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제주도에 내려와 어수선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키다리 아저씨 이상엽은 "언제라도 와요. 여기서 쉬어가면 돼요. 내 집처럼 찾아와 줘요"라고 했다. 우리는 이 말에서 힘을 얻었다. 

그 힘을 어떻게 우리만 가질 수 있겠는가. 용기와 희망을 나누어 주면 더 커져 돌아올 텐데. 제주 삼달에 사는 키다리 아저씨, 이상엽을 이제는 우리가 응원하자. 

얼마 전 이상엽에게 사생활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양에서 데리고 내려온 동생 '초코'와 함께 조용하게 잠을 깨니 좋다고 했다. 그의 삶이 오늘 하루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삼달다방 전경 다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짜 차만 나르는 아름다운 삼달다방의 전경
▲ 삼달다방 전경 다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짜 차만 나르는 아름다운 삼달다방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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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달 다방 내부 전경 2층은 그가 손님들에게 방을 내주고 머무는 그 만의 공간. 삼달다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삼달 다방 내부 전경 2층은 그가 손님들에게 방을 내주고 머무는 그 만의 공간. 삼달다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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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기금 모금 삼달살리기 프로젝트 이음동을 함께 짓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남에게 도움 못 청하는 그를 대신해 친구들이 먼저 나서기로 했다.
▲ 건축기금 모금 삼달살리기 프로젝트 이음동을 함께 짓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남에게 도움 못 청하는 그를 대신해 친구들이 먼저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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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달다방 이음동 건축기금 마련 프로젝트> 

길동무가 되어주시는 모든 분께는 앞으로 삼달다방이 우리 사회에서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간다운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약속과 함께 준비한 작은 마음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 https://forms.gle/DdEQjHBxh6L43HCM6

덧붙이는 글 | 4월 1일부터 본격적인 모금 활동에 들어갑니다. tvN <리틀빅 히어로>에서 방영되는 삼달다방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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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right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