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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소설'이란 더 이상 거대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담아내는 도구가 아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소설은 더 작은 것, 더 평범한 것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가치의 방향은 인간을 향하고 있다.

과거의 작품들이 거대한 사회담론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면 현재의 작품들은 외롭고 소외된, 그리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인간의 감정을 그려낸다. 이런 시선의 변화는 소재의 다양성을 가져왔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더 넓은 소통의 장을 열어주었다.
 
<비둘기> 표지
 <비둘기> 표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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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도시라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이런 사소한 감정을 잡아내는 탁월함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마치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자신처럼 사회에서 (그것이 자신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남에 의해 그런 것일 수도 있는) 외곽으로 벗어난 존재이다.

<비둘기>의 주인공 조나단은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젊은 시절 조그마한 방을 하나 임대했고 그 방에 차곡차곡 자신의 역사를 새겨왔다. 방 안에 책을 가득 채우고 싱크대도 두고 조그마한 가스레인지도 설치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그 방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고 계약을 끝마친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눈을 뜬 그는 공공화장실로 향하려는 순간 복도에서 비둘기를 보게 된다. 비둘기와 마주한 순간 조나단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조나단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세면대에 소변을 본다. 그는 우산을 편 채 필사적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저 비둘기를 쫓아내지 않으면 복도에는 비둘기 똥으로 가득할 것이고 조만간 비둘기가 낳은 새끼들이 복도를 점령할 것이라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자그마한 방은 망가질 것이라고 말이다.

조나단의 행동은 과민반응처럼 여겨진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세상이 무너진 듯 반응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소한 '변화' 하나가 그 삶을 무너뜨리는 순간이 있다. 조나단은 거지와 스핑크스, 꼭두각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거지를 보며 한심함과 공포를 느낀다. 그가 기억하는 거지의 가장 강력한 인상은 하수구에 똥을 싸는 장면이다. 볼일이 급했던 거지는 바지를 내리고 하수구에 대고 볼일은 본다. 이때 사방으로 튀는 똥이 그의 신발과 바지를 적시는 모습을 보며 조나단은 생각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그처럼 비참해질 거라고 말이다.

헌데 비둘기를 본 후 바라본 거지의 모습은 기존의 그의 인식에서 변화를 유도한다. 번듯하고 단정한 복장을 한 자신은 불안과 초조에 떠는 반면 더럽고 가진 것이 없는 거지의 모습은 행복하고 편안해만 보인다. 그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스핑크스라는 상징으로 투영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스핑크스를 지키기 위한 상징으로 스핑크스를 만들었다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작품이 스핑크스일 것이다. 헌데 실제로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스핑크스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조나단은 은행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경비원이라는 칭호와 상반되는 느낌이다.

그의 생각은 꼭두각시까지 이어진다. 누군가의 움직임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형술사의 손가락에 따라 사지가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사소한 일상 역시 자신의 의지와 또 살아온 노력의 순간과 비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왜 조나단은 비둘기의 등장에 자신의 일상이 무너질 것이라 느낀 걸까. 그의 생각은 과장되고 급진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집에 바퀴벌레나 쥐가 나타나면 절망하고 두려워하지만 그 현상을 일상의 붕괴까지 연결하지는 않는다. 그 이면에는 조나단이 과거에 겪은 전쟁과 결혼이 연관되어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동생과 함께 친척 집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결혼 생활 중 파혼을 겪으며 두 번의 상실을 경험한다. 그는 인간에 대해 염증과 고통을 느꼈고 도시에 와 인간의 숲에 자신을 숨긴다. 조나단에게 방과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인간을 멀리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는 조그마한 방에서 일부러 남들이 없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향한다. 그는 다른 경비들과 소통하지 않고 인사말만 한 채 자신이 할 일만 한다. 방이란 공간은 그가 소유한 전부이고 경비원이란 직업은 이 소유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조나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감추었다. 그는 더 이상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작은 행복을 성취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비둘기는 남들이 보기에는 작지만 조나단에게 있어서는 전부인 행복이란 일상을 망치는 존재로 작용한다.

<비둘기>는 현대인들이 지닌 아주 작은 변화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조명한다. '비둘기'라는 사소한 존재가 만들어낸 일상의 붕괴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기묘한 스릴감과 독특한 감정으로 읽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2000)


태그:#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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