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아인 오방 간다>의 김용옥 교수.

<도올아인 오방 간다>의 김용옥 교수. ⓒ KBS

 
마당극 형식으로 강의와 음악을 결합시킨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 11회가 논란을 일으켰다. 해방 정국에 관한 도올 김용옥의 강의가 역사 왜곡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3월 16일 방송에서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를 상대로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1945년에 일본이 물러간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게 됐다. 미국이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을 꺾은 것과 거의 동시에, 소련도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두 강대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됐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남과 북을 분할 점령하면서,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이승만과 김일성이라는 괴뢰를 각각 세웠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 귀환을 막고 김구를 비롯한 임정 인사들의 개인 자격 귀국만 허용했다. 미군정의 견제로 행동반경이 제약된 김구는 그해 12월부터 전개된 신탁통치 국면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반탁운동을 거국적으로 주도했다.
 
반탁 진영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신탁통치를 추진한 쪽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고, 미국·영국·소련의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합의된 바에 따르면 한반도는 신탁통치 5년 뒤 통일과 독립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정략적 의도를 갖고 진실을 왜곡하면서 거국적인 반탁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속에서 한민족은 단일정부 수립의 기회를 잃고 분단으로 나아가게 됐다."

 
위와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던 중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승만 무덤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김용옥 교수의 언급도 나왔다. 전체 취지를 놓고 볼 때, 김 교수의 강의는 역사학계에서 연구된 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 부정확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역사 왜곡 수준까지 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 교수는 미군과 소련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했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 장군이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포고문을 발포한 게 사실이므로, 김 교수의 주장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또 그는 김일성과 이승만을 외세의 괴뢰로 규정했다. 김일성은 무장투쟁 방면에서, 이승만은 외교활동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소련과 미국의 결정적 지원 하에 정권을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순히 외세의 협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외세한테 주도권을 내준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으니, 괴뢰로 평가한다 하여 사실관계의 오류를 범했다고는 볼 수 없다.
 
 더글라서 맥아더와 이승만.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자택)에서 찍은 사진.

더글라서 맥아더와 이승만.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자택)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그런데 김 교수는 미·소 양국이 처음부터 분할통치 목적으로 이승만과 김일성을 내세웠다고 말했다. 미·소 양국 군대의 점령군적 성격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들을 때 얼핏 문제없어 보이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한국인들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외세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외세에 대한 반감에 사로잡혀 사실관계를 냉철히 바라보지 못하다 보니, 이 대목에서 문제점을 느끼기 힘든 것이다.
 
미·소 양국이 처음부터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이승만·김일성을 내세웠다는 주장은 두 나라의 전략적 의도와 배치된다.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양국은 한반도 전역에 대한 신탁통치에 합의했다. 신탁통치는 한반도 분할을 전제로 하는 게 아니었다. 미·소가 저마다 한반도 전체에 욕심을 냈기에 그런 방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소 양국이 한반도 전역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승만·김구를 내세웠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결국에는 한반도 분단을 조장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한반도 전역에 욕심을 냈다. 좀 벅차기는 하지만 좌우합작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얻고자 했다. 1946년에 미국이 여운형과 김규식 같은 중도파의 입지를 살려준 것은 이들의 힘을 빌려 좌우합작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민족의 독립과 통합에 바친 삶, 김규식>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김규식과 여운형을 대표로 하는 중도파가 일방적으로 소련에 치우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고, 더 나아가서는 중도파의 진보적 성격을 잘 이용하면 미군정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개량주의적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좌익에 대신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 미국과 달리 이승만은 초기부터 분단을 획책했다. 1946년 6월 3일 이른바 '정읍 발언'을 통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 언급했다. 괴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그는 자기 나름대로 분단을 획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이승만 간에 갈등이 나타났다. 차상철 충남대 교수가 쓴 <미군정 시대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무부와 미군정 당국은 이승만의 단독 정부론을 당연히 용납하지 않았으며, 군정은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미국도 이승만과 함께 분단 고착화에 나섰다.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지자, 미국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결국 이승만이 아닌 미국의 힘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됐다.
 
 반탁 집회.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에서 찍은 사진.

반탁 집회.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또 김용옥 교수는 미·영·소 3상(相) 즉 세 외무장관의 합의대로 신탁통치가 실시됐다면 우리 민족이 분단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상당수 한국인들이 동의하는 대목이다.
 
해방 뒤에 보수진영이 주도권을 잡을 목적으로 '신탁통치=소련 주장'이란 가짜 뉴스를 생산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 신탁통치가 실시됐다면, 한반도가 쉽게 분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현대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신탁통치가 실시됐더라도 우리 민족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기는 힘들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만 보더라도, 신탁통치가 우리 민족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일본을 점령한 직후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중국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장졔스(장개석)의 국민당이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싸우도록 지원했다.
 
그러다가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리자, 전략을 수정해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전략 수정은 1948년 1월 6일 로이얄 성명으로 공고해졌다. 이날 육군장관 케네스 로이얄은 "자주적인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말로 미국의 전략 변화를 명확히 밝혀주었다.
 
신탁통치안이 합의된 1945년 12월만 해도, 미국은 중국을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전략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는 당연히 미국 편이 되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고 일본이 미국의 점령국이 된 상태에서, 중간에 있는 한반도가 일부라도 소련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의 구상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탁통치가 실시됐을 경우에 미국은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고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과 소련을 비롯한 반미 진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반미 진영과 미국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에도 분단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탁을 찬성하건 반탁을 찬성하건, 결과는 매한가지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신탁이냐 반탁이냐'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 민족이 우리 운명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역량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지킬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탁을 하건 안 하건 남의 의지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옥 교수도 '신탁이 실시됐다면 우리 민족한테 유리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방송에서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갖고도 그는 '신탁으로 갔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갖고 있는 역사인식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모순은 김용옥 교수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수정해야 할 역사인식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김용옥 신탁통치 도올아인 오방간다 이승만 미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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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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