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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더 북한의 현대 판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니 문득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만약 지금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정권이라면 가능한 전시였을까" 싶은 생각과 "아마도 그런 정권이라면 나도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고무 찬양했다고 오라를 지워 잡아 가뒀겠지"란 생각이다.

미국의 욕망에 따라 남북의 교류양상이 좌지우지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가 가능하게 된 건 천만다행이다. 물론 그 중심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했던 국민의 깬 정신이 있고, 그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있어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입니다"라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미소 만연한 얼굴로 막걸리 한 잔 들고 "자, 우리 이제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을 향하여 함께 잔을 듭시다"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에게 권한다. 이젠 그만 종북이니 좌파, 빨갱이란 말 입에 올리지 말고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을 찾아 북한의 판화 전시를 보라. 상대를 알아야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뭔지 알고, 평화통일을 준비할 역량을 키울 것 아닌가.
  
김준권·이광균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5월 31일까지 전시되는 북한의 현대 판화를 협조한 중국의 이광균 교수와 전시를 주관한 김준권 작가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김준권·이광균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5월 31일까지 전시되는 북한의 현대 판화를 협조한 중국의 이광균 교수와 전시를 주관한 김준권 작가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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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대 판화를 한국에서 볼 기회를 마련한 김준권 작가에 대한 얘기를 그동안 두 번 했다. 김준권 작가에 대한 이야기라기엔 북한의 판화에 더 방향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분명 전시를 마련한 이의 수고까지 외면하지 않았음을 거듭 밝힌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독자와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이들에게 보다 사실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영상을 준비하는 중이란 걸 미리 밝혀둔다. 영상이 완성되면 직접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만큼은 못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1985년 여름부터 한동안 인사동에서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한 덕에 화랑에 걸린 작품을 보면 대충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준은 됐었다. 어떤 일이나 평생 해야 보다 깊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는데 역시 취미는 취미일 뿐 생업이 먼저라 미술은 다시 거리를 두게 됐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어떤 일을 할 때 '구도'나 '구성' 등 미술적인 감각이 필요한 경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표출된다. 가령 촛불집회가 불붙었을 때 광화문미술행동과 함께 '차벽 넘어 광장으로'란 프로젝트의 한 부분 '바람 찬 전시장' 설치에 참여하게도 했다. 대략적인 설명만 듣고 이동과 설치가 용이하고, 보관도 가능한 벽체 제작을 의뢰 받았을 때 설계도면 하나 없이 맡았고 짧은 시간에 해결했다.

그런 인연이 강원도 동쪽 끝 양양이란 지리적 여건을 극복하고 충북 진천에서 이뤄지는 '평화, 새로운 미래-북한 현대판화전'을 준비 단계부터 거의 모든 자료를 받아 소개하는 힘이 됐다. 도록 편집단계에서 먼저 받아 본 도록 편집본은 전시된 작품을 촬영한 사진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생거판화미술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들.
▲ 생거판화미술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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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시는 도록이나 판화를 드럼스캐닝 한 원판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동이 있다. 종이의 질감에 따라 판화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시각을 넘어 촉감까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정도라 할까. 한지의 질감이 다르고, 아트지나 모조지의 질감이 다르기에 같은 판각을 안료를 바르고 찍었다 하더라도 관람자가 받아들이는 감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으로 들어가 전시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김준권 작가를 만나 전시장을 둘러보자.
  
김준권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들을 이광균 교수와 둘러보는 김준권 작가.
▲ 김준권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들을 이광균 교수와 둘러보는 김준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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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평에 이르는 210.8㎡라는 규모의 전시장 면마다 민속, 생활, 여가, 체제홍보 등 북한의 현대판화 나름의 분야를 나눠 전시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김준권 작가는 이번에 전시를 마련한 동기에 대해 "예술은 동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여는 이제는, 문화예술계도 작품을 통해서 상호간의 삶을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교류를 해야" 한다며 "판화작품의 교류를 통해 남과 북의 주민들도 서로 한 발짝씩 다가가서 정서와 생활과 사회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교감 하고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덧붙여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한 판화와 출판미술문화의 상호간의 이해와 연구를 도모하는 단초 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의 바라는 바에 대해선 "기회가 된다면 우리 판화도 북쪽의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몇 개의 조각도로 고무판이나 작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고 파낸 뒤 잉크나 먹물을 바르고 도화지에 찍어 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가장 기초적인 판화를 그렇게 배웠다. 조각도라고 해야 끌칼(평도)과 창칼(창도)에 삼각도 하나, 반달로 된 칼(환도)가 작은 것과 조금 큰 거 하나씩인 5개로 덜 마른 찰흙 느낌의 고무판에 뒤집어 붙인 그림을 요령껏 파냈던 기억이 선명히 살아난다.
  
북한의 풍속 판화 작품들 낯설지 .않은 풍속을 다룬 북한의 현대 판화는 같은 겨레임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 북한의 풍속 판화 작품들 낯설지 .않은 풍속을 다룬 북한의 현대 판화는 같은 겨레임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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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대판화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 북한의 현대판화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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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생활 판화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 속에서 북한의 생활상을 다룬 작품도 있어 어렵지 않게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북한의 생활 판화 생거판화미술관에 전시된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 속에서 북한의 생활상을 다룬 작품도 있어 어렵지 않게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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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어느 시기에 그런 교육을 학생들이 받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10살이 넘으면 가르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초등학교 4학년은 돼야 선생님이 학생들을 믿고 조각칼을 쥘 수 있게 시간표를 준비하리라 본다.

동족끼리 서로 총질을 해댄 전쟁을 치르고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기위해 몸부림 친 세월이 무섭다. 입에 풀칠도 못 시키며 "북한의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보다 총싸움을 연습을 우선한다"는 것도 모자랐다. "북한 어린이는 부모님이 밤에 몰래 수령을 욕하면 신고하게 교육받는다"고 우린 교육 받았다.

과연 그런 교육을 받던 우린 어땠을까. 난 1971년 초등학교 입학하고 1977년에 졸업했다. 졸업하던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는데 졸업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이번에 졸업하는 졸업생들은 오색국민학교가 개교한 이래 가장 많이 학교를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란 말씀을 할 정도로 혹독하게 많은 일에 동원됐다.

체육시간은 제식훈련과 수류탄던지기 같은 거의 군사훈련 수준인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 어린이들을 그렇게 학교에서 일을 시키면 학부모들이 당장 교장실로 몰려가 행패를 부리겠지만, 그땐 그게 너무도 당연한 걸로 여겼다. 심지어 삽과 괭이는 물론이고 곡괭이나 해머까지 아이들이 손에 들고 10리길을 걸어 학교를 가는 풍경이라니.

북한만 수령을 욕하면 안 됐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아버지들이 술자리에서까지 대통령을 욕하면 안 되던 시절이었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정말 "그때를 아십니까" 수준의 '막걸리 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대였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체제에서 서로 "내가 더 좋다"고 주장했을 일이고, "저놈들은 나쁜 놈"이라고 국민의 눈을 가렸으리란 얘기다. 굳이 상대를 직접 안 보더라도 충분히 우리가 산 과정을 통해 이해되지 않겠는가.

다만 북한의 판화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북한의 미술은 시장에 유통하기 위해 창작자가 스스로 작업하는 게 아니란 부분이다. 개개인의 취미와 학습을 통해 습득한 재능을 활용해 작업하는 우리의 창작자는 자유직업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가 이를 직접 개입해 필요에 의해 지시하리라 본다.
  
북한의 판화 김경훈의 <조국을 위하여>와 김도선의 <황천의 새 주인들> 이나 강선향 <초병>은 북한의 군대와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 북한의 판화 김경훈의 <조국을 위하여>와 김도선의 <황천의 새 주인들> 이나 강선향 <초병>은 북한의 군대와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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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풍경 판화 금강산과 백두산 등 북한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룬 작품들은 한 점 집에 걸고 싶은 욕심이 난다.
▲ 북한의 풍경 판화 금강산과 백두산 등 북한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룬 작품들은 한 점 집에 걸고 싶은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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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권 전시장을 찾은 송기섭 진천군수(좌)와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우)와 함께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 앞에 선 김준권 작가.
▲ 김준권 전시장을 찾은 송기섭 진천군수(좌)와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우)와 함께 북한의 현대 판화 작품 앞에 선 김준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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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미술의 핵심인 수령의 형상' 이나 '항일혁명의 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에 대해 도록을 제작한 김진하 아트디렉터는 "항일혁명미술은 주체미술의 시원이었다.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지도하면서 투쟁한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내용이 중심이 된다"고 밝혀 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분야로는 리석상의 <전사들 1963>이나 박현주의 <승리한 고지에서 1993>와 같은 '한국전쟁(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 함)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고, '인민군대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 김영남의 <사랑의 콩나물 1992>과 같은 작품도 있다. 또한 북한의 사회주의적 계급교육을 주제로 한 작품도 북한의 체제에 대한 홍보용으로 보인다.
  
김도선 판화 해금강의 아침 풍경으로 보이는 김도선의 <해금강의 파도>는 이곳 양양의 하조대나 고성의 옵바위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강원도인 까닭일까.
▲ 김도선 판화 해금강의 아침 풍경으로 보이는 김도선의 <해금강의 파도>는 이곳 양양의 하조대나 고성의 옵바위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강원도인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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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판화미술관 전경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판화 전문 미술관이다. 이번 전시를 알리는 걸개그림들이 보인다.
▲ 생거판화미술관 전경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판화 전문 미술관이다. 이번 전시를 알리는 걸개그림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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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의 판화가 반드시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홍보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진 건 분명히 아니다. 이미 <북한 작가 60여명의 판화, 남한에 내걸린다> 기사와 <북한사람이라고 빨간 얼굴은 아니었네> 기사에서 공개한 작품들은 풍경판화와 기타 풍속이나 장식용 판화로, 따로 북한의 판화작품이란 걸 밝히지 않았다면 거실이나 안방에 걸어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분명히 홍춘웅의 '백두의 봄'이나 황인제의 '고향의 봄'과 같은 작품들은 요즘 평양에 많이 건설된 북한주민들의 거주공간인 아파트를 장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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