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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놓인 수많은 계단

어제도 오늘도산에는 계단이
19.03.22 21:2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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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등산로마다 계단이
 
  언젠가부터 전국의 산에 부쩍 계단이 많아졌다. 갈 때마다 숲을 가르고 드러난 새로운 계단을 마주하고 당황하기 일쑤다. 주변이 숲이어서 그 곳이 산인줄 알지, 무수한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걷는내내 내 몸은 산을 오르는지 빌딩을 오르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예전에는 우회하는 길 없이 위험한 구간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을 때에만 계단이 설치되었는데 요즘은 바위를 지나가야하거나 조금만 가팔라도 어김없이 계단이 연속된다.
  등산로에 놓인 계단을 오르다보면 사람들의 고마워하는 말보다 불평불만을 더 자주 듣게된다.
  경관을 해쳐서, 혹은 힘들어서 계단을 우회하는 꼬불꼬불한 좁은 길로 다니는 사람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산에 갈 의미가 무엇일까. 울퉁불퉁한 바위와 그 틈에서 자라는 작은 풀꽃, 다양한 토양으로 마주하는 자연이 계단으로 인해 일정한 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비탈진 곳은 주의를 하며 산을 오르는 동안 집중력을 키울 수 있고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동안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게 된다. 산을 한번이라도 올라본 사람은 안다. 평소에 쓰는 근육과 등산할 때 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것을. 그런데 빌딩의 계단과 똑 같은 계단을 오르니 더 이상 산을 오르는 묘미가 없다.
   더구나 국도립산은 물론이고 동네 야산도 어김없이 등산로 절반 이상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계단이 놓여지고 있다. 마치 전국의 모든 산을 계단으로 이어놓겠다고 작정한 것 같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하면 등산객들의 안전과 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단을 더 설치할 것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구태여 돈을 들여 철제 혹은 목제의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의문이 든다.  
 
1등산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는데,
 산을 다니다보면 적절한 곳에 밧줄이나 계단이 있어서 등산객의 안전을 확보한 곳을 만날 수 있다. 작은 배려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최근 그것이 지나쳐 온 산이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함이라지만 실제로 산에서의 사망 사고는 정작 심정지가 가장 많고, 그런 경우를 배제한 추락사고의 경우에도 대부분은 현재 계단이 놓인 등산로를 벗어난 바위구간에서 일어나고, 발목 삠 등은 주의력 부족이라 그곳이 계단이어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설혹 그런 사고조차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위험을 아예 제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조금의 비탈진 등산로에조차 마구잡이로 계단을 놓는다는 것은 그 구간을 직접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탁상행정이라고밖엔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없다.
  안전을 이유로 계단을 설치한다면 얼마나 많은 위험으로부터 등산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 완전한 안전이 있을까. 비탈이 심한 곳은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지그재그로 우회길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단속하려는 자와 계단을 피하려는 자의 불필요한 다툼은 내버려두고라도.  
  오히려 가장 짧은 동선의 계단을 놓아 등산객들은 어쩔 수 없이 가파르게 산을 오른다. 자신에게 적당한 보폭을 선택할 수조차 없다. 저마다의 보폭은 무시한 채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수백 개의 계단을 반복해서 오르내리다보면 관절이 좋은 사람도 무릎에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계단은 자연 그대로의 비탈보다 더욱 가파르고 무릎 또한 직각으로 구부려야해서 무릎에 체중이 더 많이 실린다. 이는 결국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어 조직에 손상을 가져오고 조직 손상이 누적되어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하산할 때 쯤이면 어느 누구할 것 없이 무릎에 통증을 느낀다. 계단이 많아진 뒤로 산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도 많고 더러는 등산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헬스장 등 다른 운동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차라리 접근이 쉬운 빌딩을 오르 것이 낫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등산은 단지 숲에 있는 계단을 오르는 것뿐이다.
 
  2 산 보호.
산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거미줄처럼 깔린 계단이 최선일까.
등산길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등산객의 무수한 발길에, 지난 폭우에 흙이 쓸려내려가 나무는 가지 같은 뿌리를 휑하니 드러내고 더러는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쓰러지기도 한다. 나마저 나무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최대한 뿌리를 밟지 않으려고 걸음폭을 조절한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계단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산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만이라면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예전처럼 금줄을 쳐놓으면 될 일이다. 오히려 가파른 계단을 피해 등산객들은 더 숲으로 들어가고 샛길을 만든다. 그들을 무조건 비난할 일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이렇게 계속하여 계단을 놓는 것만이 능사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자연에 사람의 손길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언젠가는 놓여진 계단을 도로 철거하느라 산을 들쑤시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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