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예상은 했지만 공식화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일본 도쿄 돔에서 열렸던 메이저리그 개막 2연전을 끝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치로는 20일과 21일(이하 한국 시각)에 열렸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개막 2연전에 모두 9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20일 경기에서는 팀이 그랜드 슬램을 포함하여 크게 앞섰던 5회초 볼넷 출루 이후 교체되었고, 연장 12회까지 갔던 21일 경기에서는 8회말 수비에서 교체됐다(2경기 무안타 1볼넷).

경기가 끝난 뒤 이치로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경기들을 끝으로 일본프로야구 9년과 메이저리그 19년을 포함하여 28년의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2001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할 때 계약했던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게 됨이 영광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이치로가 이번 시즌에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던 이유도 이 기자회견에서 밝혀졌다. 이치로의 마이너리그 계약 조항에는 도쿄 돔에서 열리는 개막 2연전 로스터에 들어간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정확한 계약 내용은 이 2경기를 치르고 은퇴하는 것이었다.

중장타 능력도 뛰어났던 일본 시절의 이치로, NPB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1973년 10월 22일 생으로 일본 아이치 현 출신의 이치로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1991 NPB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41순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즈 전신)에 지명됐다. 1992년 1군에 데뷔하여 2000년까지 일본 퍼시픽리그에서 9년을 뛰었다.

원래 이치로는 오른손잡이였고 투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입단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는데, 왼손 타석에 서게 된 것이 그의 선수 인생에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다만 그의 시계추 타법을 당시 소속 팀 감독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1992년과 1993년에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1994년이 되어서야 풀 타임 주전이 된 이치로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200안타를 넘어섰다(210안타). 이후 단일 시즌 안타 갯수는 조금 떨어졌지만, 1995년에는 소속 팀 퍼시픽리그 챔피언에, 1996년에는 일본 시리즈 챔피언에 기여했다.

2000년까지 이치로의 일본 통산 타율은 0.353에 이르지만 통산 기록 규정 타수인 4000타수를 채우지 못하여(3619타수) 공식 기록 인정은 받지 못했다. 현재 이 부문 통산 타율 1위는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아오키 노리치카(0.329)이다.

이치로는 1994년 0.385 타율을 시작으로 2000년(0.387)까지 7시즌 동안 모두 0.34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퍼시픽리그 MVP를 차지했다. 7시즌 동안 리그 타격왕을 지켰는데, 그 때마다 리그 2위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고, 만 28세 시즌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단타 위주의 타격 폼 수정, 메이저리그에서도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 수립

이치로는 자신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고수해왔던 타격 폼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았다. 구속의 차이 때문도 있었겠지만, 공의 회전부터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정도였다.

이에 이치로는 타격 폼 수정을 선언했고, 새로운 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매리너스와 계약했고, 일본에서 달았던 등번호 51번을 그대로 달게 됐다.

메이저리그 첫 시즌인 2001년 이치로는 242안타에 타율 0.350, 56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의 안타왕, 타격왕, 도루왕을 석권했다. 개인상 부문에서도 외야수 실버 슬러거,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에 MVP까지 동시에 수상했다.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은 1920년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였다. 그리고 이치로는 2004년에 이 기록을 경신하며 262안타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당시 258번째 안타를 허용한 투수가 박찬호(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로만 보면 2004년이 이치로의 최고 시즌이었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2001년을 마지막으로 만년 하위권의 길을 걸었고,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는 서부지구 우승에 기여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명예의 전당 헌액 외야수)에게 밀리고 말았다.

2001년 이후 MVP 수상 이력은 없었으나, 이치로는 2007년 올스타 게임에서 역대 최초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스타 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며 또 하나의 영예를 챙겼다.

10년 연속 메이저리그 200안타, 메이저리그 공동 1위

이치로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 200안타 이상을 달성했다. 이 부문에 있어서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타자인 피트 로즈와 동률이다. 로즈는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4256안타를 기록했지만, 신시내티 레즈 감독 시절 승부조작 이력으로 인해 제명되어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등 커리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이치로는 184안타에 타율 0.272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처음으로 200안타와 3할 타율에 실패했고, 올스타 게임 출전도 불발됐다. 만 38세 시즌이었으니 그 힘든 기록을 이어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였으며, 경기력에 있어서 서서히 노쇠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이치로는 매리너스의 리빌딩을 위해 자신의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공교롭게 이적 첫 경기가 그대로 세이프코 필드 원정 경기였고 이치로는 매리너스 팬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양키스로 떠났다.

양키스로 이적한 첫 해 이치로는 2001년 이후 2번째로 소속 팀의 지구 우승을 경험했다. 물론 2012년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당시 주장이던 데릭 지터의 발목 부상이 겹치며 타선이 침묵했고, 4경기 모두 한 번도 리드를 잡지 못하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스윕패했다.

이후 이치로는 통산 부문 대기록 수립을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양키스와 연장 계약을 했고,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인터리그 홈 경기에서는 당시 선발 등판했던 류현진을 상대로 홈런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미일 통합 최다안타 + 메이저리그 3000안타, 명예의 전당 가능성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도쿄EPA/연합뉴스

 
2013년 8월에 이치로는 미일 통합 4000안타를 넘어섰다. 세계 프로야구 역사에서 4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피트 로즈, 타이 콥을 비롯하여 이치로까지 3명 뿐이다(각 리그 1군 기록 기준). 다만 이 때 로즈는 자신이 마이너리그에서 427안타를 쳤다고 말하며 이치로의 일본 기록(1278안타)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이치로가 일본에서 안타를 치기 더 힘든 환경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메이저리그의 정규 시즌은 팀당 162경기이고, 일본은 당시 144경기(현재는 143경기)였다. 게다가 이치로는 첫 2년에는 감독의 눈에 들지 않아 출전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점도 감안 요소다.

이치로는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갔다. 말린스에서는 기존 주전 외야수의 부상으로 인해 다소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2016년 6월에는 미일 통합 4257안타로 로즈의 4256안타 기록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3000번째 안타를 3루타로 만들어냈다. 3000안타와 500도루 그리고 3할 타율까지 동시 달성한 선수는 이치로가 역대 4번째(타이 콥, 에디 콜린스, 폴 몰리터)로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다.

2017년까지 말린스에서 뛰었던 이치로는 2018년 매리너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누가 봐도 현실적으로 경쟁에서 뒤쳐지는 모습이 성적으로 드러났고, 5월에는 선수 로스터에서 빠지면서 프런트 특별 고문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물론 해당 시즌 한정 특별 고문이고 경기 전 훈련도 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진 않았다.

매리너스 팀 역사에 있어서 이치로는 켄 그리피 주니어(명예의 전당 헌액 타자)와 함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위해 매리너스는 2019년 도쿄 돔 개막전 일정이 잡히면서 스프링 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일본에서 은퇴전을 치를 수 있게 배려했다.

이치로의 은퇴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뛰었던 선수는 이제 모두 은퇴하게 됐다. 이치로가 2019년 경기에 출전하고 은퇴했기 때문에 규정에 의하면 2020년부터 5시즌을 건너뛰고 2025년이 되어야 명예의 전당 투표에 최초 입후보할 수 있다.

미국 출신이 아닌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서 이치로는 가장 많은 안타(3089안타)를 치고 은퇴하게 됐다. 비미국 출신 3000안타 타자는 이치로를 포함하여 로드 커류(3053안타), 라파엘 팔메이로(3020안타) 그리고 로베르토 클레멘테(3000안타) 뿐이다. 약물 이력으로 투표에서 탈락한 팔메이로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클레멘테는 자선활동 중 사망으로 바로 헌액됨).

아시아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노모 히데오가 첫 투표에서 득표율 저조로 후보 자격을 잃었고, 박찬호는 예비 심사에서 탈락한 적이 있다. 현재로서는 향후 사고만 없다면 이치로가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의 기록이 될 추세다.

일정한 경기력 유지를 위해 경기 직전의 식사를 매번 같은 음식으로만 먹을 정도로 꾸준한 관리를 했던 이치로는 자신의 공약인 50대 선수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만 45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선수로서는 안타 부문에서 큰 업적을 이뤄낸 이치로가 향후 명예의 전당에서 얼마나 많은 지지율을 받을지 후대 기자단의 평가를 지켜봐도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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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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