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이번 세기에 있었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는 그날을 목격한 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변화시켰다. 그날의 기억은 하나의 근원처럼 곳곳에서 소환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사건이 다른 대형 사고들과 가장 달랐던 건, 누군가의 죽음을 많은 국민이 동시에 목격했다는 데 있다. 미디어를 통해 모두가 배가 서서히 잠기는 모습, 희망과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걸 보고 있었다. 그 잠식하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 무기력했던 산 자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순간을 견뎠고, 이는 훗날 모두의 트라우마로 돌아왔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영화 <생일>의 한 장면 ⓒ NEW 제공

 
이 사건을 소환하는 <생일>은 마주하기 힘든 영화다. 객석에 앉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며,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아픈 영화다. 국내 평점 사이트 키노라이츠에서 95.2%라는 높은 지수를 기록 중인 <생일>은 세월호 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카메라는 세월호 희생자 수호(윤찬영)의 가족, 친척, 이웃, 그리고 친구들을 담으며 그 사건과 수호의 부재가 만든 일상의 균열을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엔 수호의 기억과 흔적이 묻어 있고, 영화 속 모든 인물은 떠도는 망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부재는 현실에 큰 공백을 만들 것 같지만, 오히려 부재한 자의 환영은 모든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남겨진 자는 어디에서든 그의 부재를 인지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수호는 없지만, 엄마인 순남(전도연)은 수호의 방을 그의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직도 수호의 새 옷을 사오는 등 그녀는 아들의 부재를 그의 물건으로 대신하려 한다. 수호의 동생 예솔(김보민)은 좋아하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맘 편히 다 먹지 못한다. 일부는 수호의 것이라며, 늘 오빠를 챙기고 있다. 여전히 그의 몫을 두는 것, <생일>의 가족은 망자를 그렇게 붙잡고 있다.

수호의 친구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떠난 자를 기억한다. 그들은 수호의 공간에 머물며, 수호가 하던 행동을 한다. 그들은 수호 대신 살아남았다 생각하고, 그처럼 살면서 떠나간 친구의 삶을 연장시키고 있다. 그렇게 <생일>은 떠난 이와 이어지려는 살아있는 자들의 발버둥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영화 <생일>의 한 장면 ⓒ NEW 제공


타인의 일로 머물 수도 있던 <생일>은 전도연과 설경구의 얼굴을 경유하며, 모두가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두 배우의 연기는 유족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관객을 큰 감동으로 안내한다. 순남과 정일(설경구)이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사뭇 다른데, 순남은 수호가 여전히 있다는 듯 행동하고 감정의 변화가 크며 이를 잘 숨기지도 못한다.

이와 비교해 정일은 무심하게 아들의 죽음을 잊은 듯하면서도, 홀로 아들과의 추억을 마주할 때면 갇혀 있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시간을 흘려 보내는 가족을 통해 <생일>은 세월호 사건이 모두에게 상처를 안겼고,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견디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의 쓰라린 일상을 비추며, 그날 바다엔 피해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인생 일부도 가라앉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영화의 가장 뜨거운 장면은 마지막 생일 파티 장면이다. 죽은 수호의 기억과 함께 살아왔던 이들이 결국엔, 그를 산 자의 자리로 데려와 쌓였던 감정을 모두 쏟아낸다. 따뜻함 속에 슬픔이 있고, 이를 통해 다시 삶을 이어갈 힘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안다. 모두가 아팠고, 지금도 아프며,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다시 힘내서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마주하기 힘든 영화임에도, 그 한 걸음을 응원하기 위해서 보게 되는 영화다. 4월 3일 개봉.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브런치, 네이버 포스트, 그리고 키노라이츠 매거진 등에 함께 게재되는 글입니다.
생일 세월호 설경구 전도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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