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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벚나무에 맺혀있던 꽃망울이 마침내 톡 터졌다. 연분홍 예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벚꽃을 보니 정녕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 무렵에 밥을 챙겨 나가니 차 밑에서 기다리던 녀석들이 폴짝 뛰어나와 발밑을 돌며 인사를 건넨 뒤 다시 차 밑으로 들어간다. 그 곳이 밥 자리라는 것을 녀석들도 잘 알고 있다.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어 밥을 챙겨주게 된 지도 이년째다. 이제는 혹시라도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아이들을 위해 차 뒤 트렁크에 사료를 싣고 다닌다. 그동안 지지난해 봄, 태어난 네 마리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과 그 해 가을,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두 마리 중 살아남은 한 마리,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 이렇게 세 마리를 챙겨왔다.
 
지지난해 봄에 태어난 네 마리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 2년 가까이 
밥을 주다보니 녀석도 나도 정이 많이 들었다.
 지지난해 봄에 태어난 네 마리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 2년 가까이 밥을 주다보니 녀석도 나도 정이 많이 들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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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 가을에 태어난 두 마리중 한 녀석. 두 마리가 꼭 붙어다녔는데 
그해 겨울 추위에 형제를 떠나보내야 했다.
 지지난해 가을에 태어난 두 마리중 한 녀석. 두 마리가 꼭 붙어다녔는데 그해 겨울 추위에 형제를 떠나보내야 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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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의 어미. 사람들 눈치를 봐가며 차밑으로 밥을 넣어주는 것도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지만 차밑에서 불편하게 밥을 먹는 녀석들도 안쓰럽기만 하다.
 녀석들의 어미. 사람들 눈치를 봐가며 차밑으로 밥을 넣어주는 것도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지만 차밑에서 불편하게 밥을 먹는 녀석들도 안쓰럽기만 하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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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 년쯤 지나고 어느 날부터 다른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에 매일 밥 때만 되면 주위를 둘러보며 찾던 중 보름 만에 다시 나타났다. 그 뒤로도 영역을 옮겼는지 가끔 한 번씩 보이곤 한다. 평소 식성이나 행동으로 볼 때 사람손을 탄 게 분명한데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녀석들의 어미는 지난 가을에 또 세 번째 새끼를 낳았다. 꼬물꼬물 네 마리가 어미곁에 모여있는 걸 봤는데 결국 한 마리만 남아 어미와 같이 다닌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넷이다. 국물을 우리고 건져내어 말린 멸치와 사료를 섞은 밥을 녀석들은 맛있게 먹는다.

두 번째 녀석을 볼 때면 지지난해 겨울, 혹독한 추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형제앞에 앉아 어서 일어나라는 듯 툭툭 치던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고 안쓰럽다. 까만 털이 예쁘던 녀석이었다. 전날에도 내가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비내리는 날이면 사료가 젖을까봐 지붕을 만들고 돌을 얹어 놓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내게 온전히 전해져 온다.
 비내리는 날이면 사료가 젖을까봐 지붕을 만들고 돌을 얹어 놓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내게 온전히 전해져 온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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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나운 추위가 몰아친 다음날 돌덩이가 되어 풀밭에 누워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다시 아파온다. 그래서 더욱 겨울을 두 번이나 견디고 버텨준 녀석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예전에 밥을 주던 집 앞 작은 공터 구석에 누가 냥이집을 가져다 놓았다. 빈 상자에 비닐을 야무지게 입혀 드나들 문을 내고 바닥에는 짚을 깔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정말 고마우면서도 불안했다. 길냥이 밥을 왜 주느냐며 녀석들이 먹고 있는 밥그릇을 뺏어 집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공터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노인이 또 내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발, 제발 치우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제가 꼭 치울께요'  어떤 사람이 차마 내다 버릴 수 있으랴.
 "제발, 제발 치우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제가 꼭 치울께요" 어떤 사람이 차마 내다 버릴 수 있으랴.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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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제 녀석들 밥을 주며 슬쩍 공터에 가서 구석에 놓인 냥이 집 문을 들추니 간절한 마음을 담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발, 제발 치우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제가 꼭 치울게요.'  

녀석들 밥을 주며 알게 된 한 아주머니는 캣맘 5년째라고 했다. 주문한 사료가 집으로 배달되는 날은 남편이 엄청 눈치를 준다며 웃었다. 하얀 털을 가진 큰 녀석은 누가 중성화수술을 해주었는지 어느 날 보니 귀 한쪽 끝이 잘려있다. 이젠 어미 차례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을 전쟁처럼 살다가 3년도 못 되어 스러지는 가여운 생명들. 사람도 동물도 똑같은 생명이다. 길고양이를 괴롭히지 말고 그저 바라봐 주기만 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태그:#길고양이, #겨울을 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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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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